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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사람
밀양, 부산, 호미곶, 간절곶 여행 19-01-21~23 본문
성수,문목, 소목네와 함께 8명이 이미 예약된 부산 여행을 함께 하다.
성수네 차 한대로 다니니까 참 편안하고 좋다.
운전하는 사람은 힘들겠지만 성수가 천하장사라서 그나마 참 다행이다.
문목은 3일간 매일 만보 이상을 걸어서 2~3년치 걸을 것을 다 걸었단다.
월요일 아침 10시에 성수네 집에 모여서 출발~~~
밀양 영남루https://song419.tistory.com/m/1834에 들러서 구경하고 있었더니 문목이 청도에서 목회할 때 만났던 목사님이 찾아와서 우리에게
차를 대접하고 돌아갔다.
알고보니 고신측 목사님이어서 아버지도 잘 아는 목사님이셨다.
부산에 도착해서는 숙소가 해운대여서 해운대, 동백섬 19-01-22 (tistory.com)을 한바퀴 돌고 저녁을 먹은 후 숙소로 들어가다.
소목이 딸 하영이를 미국으로 시집보내고 우리에게 저녁을 대접했다.
소목 부부는 부산 출신이어서 이번 여행 내내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특히 동선 사모는 고향집 근처에도 가고해서 추억이 새로웠던 기간이었다.
둘째날은 아침 일찍 일어나서 동백섬을 다시 자세히 한바퀴 돌면서 일출 장면도 찍고 아침 운동을 마친 후
호텔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태종대로 가다.
태종대를 코끼리 열차 타고 한바퀴 돌고 유람선도 타고 나오니 또 문목이 잘 아는 미문교회 목사님이 찾아와서 우리에게 비싼 점심을 대접해 주었다.
그리고 문목에게 좋은(?) T.V를 한대 주어서 소중하게 잘 받아왔다.(좋은 용도로 잘 사용되었기를...)
미문교회를 갈 때 아미동을 지나갔는데 옛날에 최재균 목사님이 목회하시던 아미동 교회가 생각났다.
교회를 나와서 송도로 가서 케이블카도 타고 산길을 산책도 하고 난 후에 다시 해운대에 있는 숙소로 돌아오다.
이 날 저녁 우리 나라와 바레인이 아시안게임 16강전이 있어서 밤 늦게가지 중계방송을 보고 자다.
우리가 다행히 2-1로 이겼다.
오늘 아침 식사 후에는 간절곶 19-01-23 (tistory.com)과 구룡포 그리고 호미곶을 들른 후 서울로 돌아오다.
2박 3일간 상당히 빡센 여행을 한 것 같다.
다행히 아직 이 정도는 소화할 수 있으니 감사한 일이다.
우리는 호준이 덕분에 요즘 밥 살 일이 많아서 참 좋다.
오래 전 통영에서 보았던 밤바다의 달을 다시 보는 것 같아서 참 좋았다.
이번 보름달이 슈퍼문이라고 하던데...
신라 말기의 문신, 유학자, 문장가.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고운(孤雲)·해운(海雲).
최승우(崔承祐), 최언위(崔彦?)와 함께 문장의 대가인 '신라삼최'로 꼽힌다.
868년(경문왕 8) 12세 때 당나라에 유학하여 서경(西京, 長安)에 체류한 지 7년 만에 18세의 나이로 빈공과(賓貢科)에서 장원으로 급제했다.
879년 고변이 황소(黃巢) 토벌에 나설 때 그의 종사관으로 서기의 책임을 맡아 표장(表狀)·서계(書啓) 등을
작성했다. 이 무렵 지은 글들이 뒤에 〈계원필경(桂苑筆耕)〉 20권으로 엮어졌다.
특히 황소가 읽다가 말등에서 덜어졌다는 뻥이 만들어진 881년에 지은〈격황소서(檄黃巢書)>는 명문으로
손꼽힌다.
신라의 골품제 영향으로 관직에서 중용되지 못하자 전국을 유람하면서 살았고 말년에는 신선이 되었다는
전설이 만들어질 정도가 되었다.
오래 전 통영에서 보았던 밤바다의 달을 다시 보는 것 같아서 참 좋았다.
이번 보름달이 슈퍼문이라고 하던데...
점심 먹은 식당 이름이 목장원이었다.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한식 부페집이다.
대접하는 목사님이 너무 고급으로 대접해서 오히려 편안하지가 않다.
바닥이 유리로 되어 있어서 발 아래로 바다가 보이는 케이블카는 5,000원이 더 비싸다.
그래서 20,000원이다
자갈치 시장에서 생선들을 말리고 있다.
구룡포 일본인 가옥 거리에 왔다.
내가 고등학생 시절에 살았던 곳이고 아내도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잠깐 살았다고 한다.
“용생구자부동명(龍生九子不同名)”이란 말이 있다. 그 뜻을 풀어 쓰자면, “용에게는 아홉 아들이 있는데, 그들 모두가 다르다.”는 말로, 대개 갓 결혼한 부부에게 개성이 특출난 여러 자식들을 낳기를 빌어주는 덕담으로 사용된다.
일제 시대에 이 공원이 만들어질 때 일본인들이 돈을 모으고 그들의 이름을 새겼는데 후에 우리 나라 사람들이 다시 만들면서 일본인들의 이름을 시멘트를 발라 지운 후 이름이 적힌면의 돌의 방향을 뒤로 돌려서 안 보이게 만들었다.
잘못된 역사도 역사란 말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공원 위에 올라가면 큰 바위비석이 하나 있는데 그 비석은 일본인의 공덕을 치하하는 내용이어서 적혀있던 공덕의 내용도 시멘트를 발라 지운 상태로 서 있다.
돌아오는 길에 군위에 있는 휴게소를 들렀더니 휴게소 이름이 이렇다.
지자체들이 살아남으려고 눈물겨운 노력들을 하고 있다.
그래서 왜 이름이 이런가 살펴봤더니 삼국유사를 쓴 일연이 군위사람이라고 한다.
또 김수환 추기경도 이 곳 사람이라고 적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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