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춘추전국이야기 7권 전국시대의 시작 공원국 저 위즈덤 하우스 2017년 개정판 1쇄 299쪽 3/23~3/27

singingman 2023. 1. 26.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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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시대에서 전국 시대로 넘어가는 시점을 기원전 403년으로 잡는다고 한다.
사마광의 자치통감에
"위열왕 23년(기원전 403년)에 (천자)가 처음으로 명하여 진 대부 위사(위 문후), 조적(조 열후),
한건(한 경후)를 제후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다.
晉나라가 셋으로 한,위,조 세나라로 나누어지는 것을 말한다.
이를 두고 천자가 명분없는 짓을 했다고 후대의 사가들은 말하기도 한다 .
晉이 셋으로 나누어지기 전에 사실은 이 세 나라보다 더 힘쎈 지씨 가문의 지백요가 있었지만 지나친 욕심을
내다가 일찍 망하고 이 세 가문이 진나라를 나누어 가지게 된다.
이렇게 晉이 셋으로 나누어 지면서 힘을 잃게 되자 서쪽 구석에 있던 秦나라가 드디어 동쪽 중원으로 나올
기회를 얻게 된다.  
법가의 실행자로 알려진 상앙이 진을 다스리면서 진은 큰 힘을 기르게 되고 드디어 중원으로 나오면서 결국은
천하를 통일하고 중국 최초의 통일 국가를 이루게 된다.
춘추시대는 명분이라도 있었지만 전국시대는 오로지 힘이 지배하는 시대가 되고 권모술수가 판을 치고 속이고
배반하고 암살하는 것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위 나라의 지혜로운 군주 위 문후 시절에 위나라는 큰 힘을 기르게 된다.
위 문후도 훌륭했지만 이 때 개혁을 주도한 오자병법의 오기가 큰 역할을 하게 된다.
저자는 오기를 법가의 시초로 보는 것 같다.
하지만 그의 개혁은 귀족들로부터 미움을 받아서 위 문후가 죽자 위험을 느낀 그는 초나라로 도망가서
초 도왕을 도와 영윤의 직분을 얻어 개혁을 계속하지만 도왕이 죽자 역시 귀족들로부터 미움을 받아서 활에
맞아죽는다.

오기가 출세를 위해 아내를 죽였다는 기록이 있지만 저자는 다른 기록들을 근거로 그가 아내를 죽이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위나라 문후의 뒤를 이은 무후와 양혜왕은 오기를 알아보지 못했고 나라를 발전시킬 인물이 되지 못해 결국
위나라는 망하고 만다.

이때 동쪽의 제나라에는 손자병볍으로 유명한 손빈이라는 걸출한 인물이 나타나 개혁을 실행하고 제나라가
강국이 된다.
秦나라의 상앙은 오기의 사상을 발전시킨 법가의 대표적인 인물로 진나라를 발전시키기 위해 귀족과 농민들을
다 힘들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가 믿고 있었던 진 효공이 죽자 귀족들의 미움을 받아서 자기가 만든 법에 걸려 죽게 된다.
도망가다가 여관에 들어가려고 했지만 신분증이 없으면 들어갈 수 없게 자기가 만든 법 때문에 결국 죽게 된다.
개혁가였던 오기와 상앙은 섬기던 군주가 죽자 귀족들에게 죽임을 당하게 된다.

정치는 여러 사람이 잘 되게 해주어야 한다.
유가의 주장을 따르면 백성이 잘 살게 해 주는 것이 정치의 요체다.
하지만 법가는 군주권을 강화하기 위해 귀족들과 백성들을 힘들게 하는 것 같다.
이런 독제체제는 당분간은 힘을 발휘하지만 결국에는 힘을 잃게 되는 것이 역사의 가르침인 것 같다.
전쟁을 할 때는 주위 나라들을 살펴보고 전쟁이 끝났을 때 내가 강해 질 수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전쟁에 이기고도 국력이 약해져서 결국은 나라가 망하게 된다.
위무후와 양혜왕은 전쟁을 너무 많이 해서 이기고도 나라를 망친 사람들이다.

전쟁후 상대 나라가 약해지는 것만을 보면 안되고 내가 강해질 수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