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준 선생 기념 공원 19-07-17
몽골 단기 Mission trip 중 들르다.
이태준(李泰俊, 1883~1921)은 일제 치하에서 독립운동가로 활동했으며 몽골의 마지막 왕 복드 칸을 치료한
어의로도 활동했다.
당시 몽골은 러시아의 입김이 강했다.
몽골이 러시아의 말을 잘 듣지 않자 러시아인들은 몽골을 아예 없애버리려고 했다.
성병에 걸린 창녀들을 귀족등으로 속여서 몽골 왕실로 보냈다.
이 때문에 당시 몽골 왕실은 80% 가까운 사람들이 성병에 걸렸다.
이때 이태준이 그들을 치료해 주어서 최고 훈장까지 받고 라마교의 영향이 큰 동네이니 거의 활불 수준의 대우를 받았다고 한다.
당시 몽골은 병이 나면 라마교 승려들이 미신에 가까운 의료활동을 했기 때문에 세브란스에서 서양 의술을 배운 그는 뛰어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독립운동가로도 많은 활동을 했고 당시 여운형도 그의 업적을 높이 치하하는 글을 쓰기도 했다.
여운형은 1921년 가을 시베리아의 이르쿠츠크에서 개최될 예정이었던 원동민족혁명단체대표회에 참가하기 위하여 러시아로 가던 중 고륜에 체류하게 되었다. 이 때 몽골인들이 성산(聖山)으로 부르던 고륜의 남산(南山) 건너편 구릉 한복판에 위치하고 있던 이태준의 묘를 찾았다. 여운형은 앞서 소개한 「몽고사막 여행기」에서 “이 땅에 있는 오직 하나의 이 조선 사람의 무덤은 이 땅의 민중을 위하야 젊은 일생을 바친 한 조선청년의 거룩한 헌신과 희생의 기념비였다”라고 이태준을 애도했다. 여운형의 여행기는 이태준의 묘가 있었던 사실과 그 위치를 전해주는 유일한 기록이다.
안타깝게도 이태준은 잔인하기로 악명 높은 ‘미친 남작(Mad Baron)’ 운게른에게 38살의 젊은 나이에 살해되었다.
아래는 다음 백과사전에 기록된 그에 관한 글들이다.
이태준
"이 땅에 있는 오직 하나의 이 조선 사람의 무덤은 이 땅의 민중을 위하야 젊은 일생을 바친 한 조선청년의 거룩한 헌신과 희생의 기념비였다." 이태준(李泰俊, 1883~1921)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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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이태준이 미국에 있는 안창호에게 보낸 편지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