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향교 23-04-28
나주 향교는 1407년(태종 7)에 창건되었다.
강릉향교, 장수향교와 함께 우리 나라 3대 향교로 불릴만큼 큰 규모를 자랑한다.
이 세 향교 가운데도 가장 큰 향교라고 한다.
나주 향교는 대성전이 앞에 있다. 공자 아버지의 위패를 봉안하는 계성사가 있는 향교는 대성전이 앞에 있다고 하는 설과 산지형은 명륜당이 앞에 있고 평지형은 대성전이 앞에 있다는 설이 있는데 어느 것이 맞는지는 잘 모르겠다.
호남지방의 향교 중 계성사가 있었던 곳으로는 나주향교 이외에 전주향교와 함평향교 등이 있다고 한다. 이 향교의 대성전은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으며, 5성(五聖), 송조4현(宋朝四賢), 우리 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는 점은 비슷하다.
임진왜란으로 성균관이 불타고 다시 지을 때 나주 향교를 참고했다고 한다. 이 향교 벽의 흙은 공자의 고향인 곡부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대성전이 대체로 맞배 지붕이지만 이 대성전은 팔작지붕인 점이 성균관과 같다.
동.서재의 크기가 서울의 성균관과 맞먹을만큼 크다.
나주향교는 부지가 엄청 넓다. 담장 바깥에도 향교의 부속 건물도 있다.
향교에서 나오면 골목에 이 그림이 있다. 신숙주가 나주 근처의 노안면 출신이라고 한다.
향교에서 나오면 영금문이 있다.
동학농민 운동 때 전봉준이 당시 나주 목사였던 민종렬에게 이 영금문으로 찾아와 싸우지 말고 성문을 열라고 했지만 목사가 성문을 열지 않고 목의 군민과 힘을 합해 동학농민군을 막아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