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 향교
일부러 시간 내서 갔지만 출입문이 잠겨 있어서 들어갈 수 없었다.
그냥 담장을 한바퀴 돌면서 밖에서 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었다.
명륜당 앞에는 동재,서재가 있고 대성전 앞에는 동무, 서무가 있다.
그리고 진사청도 옆에 따로 마련되어 있다.
바로 옆에 중남미 문화원이 담장을 이웃하고 있다.
한국 민족 문화 대백과 사전에 의하면
조선 숙종 때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의 유학교육과 지방민의 교화를 위해서 창건되었다. 1537년 중종의 계비인 장경왕후의 장지가 향교가 원래 있던 서삼릉으로 정해지자, 향교는 대자동의 고읍마을로 이전되었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고, 1625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겨 재건되었다. 담장은 1970년에 보수되었고, 명륜당은 1975년에 다시 건립되었다. 1983년에는 외삼문과 향교 정면의 홍살문이 새로 세워졌고, 1988년에도 대대적으로 보수작업을 해서 현재의 모습이 갖추어졌다.
현존하는 건물은 대성전(大成殿)을 중심으로 동재(東齋)·서재(西齋)·내삼문(內三門) 등이 있으며, 대성전 안에는 5성(五聖)의 위패가, 동무·서무에는 송조2현(宋朝二賢) 및 우리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서무의 뒤쪽으로 전사청이 비스듬하게 위치하고 있는데 이 건물은 제례 때 전사관이 집무하면서 제사 준비에 소홀함이 없도록 점검하는 곳으로서 현재 이 곳 향교에 남아 있는 건물로는 가장 오랜 것으로 추정된다. 건물 배치는 교육 공간을 앞쪽에, 제사 공간을 뒤쪽에 둔 전학후묘(前學後廟)의 형태를 따르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전답과 노비·전적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조선 후기 이래 향교는 교육 기능이 쇠퇴하고 대신 선현에 대한 제향을 통한 교화 기능을 주로 담당하였다. 봄·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奉行)하고 초하루·보름에 분향을 올리고 있으며,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수명이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 이 향교는 1985년 경기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태극문양은 어떤 경우에 있고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