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사 산책 1940년대편 2권 강준만 인물과 사상사 2004년 초판 2006년 초판 6쇄 316쪽
몽양 여운형은 좌우를 아우르면서 남북을 하나된 나라로 만드려고 노력했으며 김일성이나 이승만이 남북 단독 정부를 세우려는 것과 달리 통일 정부를 세우려고 많은 노력을 했다.
47년 7월 19일 한지근의 저격으로 암살당했다. 그는 11번째 테러에서 목숨을 잃었다.
미군정이나 이승만 정권에서도 친일파들은 여전히 정권을 잡았고 한민당은 이들 기득권 세력들이 득세했다.
제주 4.3 사건이나 여순반란에는 진압군들이 무자비하게 그리고 억울하게 죄없는 백성들을 너무 많이 죽였다.
청년단도 빨갱이를 색출한다는 미명하에 양민들을 너무 많이 죽였다.
미군정은 이런 사정을 무시하고 있었다.
김구는 이승만의 그늘에 가렸고 임정 사람들을 처음에는 기용하려다가 너무 늦은 48년에야 남북 합작 정부를 세우려고 한 주장이 이승만의 반공과 남한 단독 정부 수립에 밀렸다. 반공이 친일 청산보다 우선이었으며 초대 정부에는 대통령부터 김구등 개신교인들이 아주 많았다.
그러나 이들도 반공 이데올로기에 빠져서 억울한 사람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
김일성은 전쟁 준비를 차근차근하고 있었지만 이승만은 허풍만 치면서 전쟁이 일어나면 바로 평양을 점령할 수 있을 듯이 뻥을 쳤다.
여운형, 장덕수, 김구등 암살당한 아까운 인물들이 많다.
이승만은 청년단을 잘 활용했고 이들은 경찰보다 더 센 힘을 가진 초법적인 기관이었다.
미.소가 해방을 시켜준 것이었기 때문에 통일은 요원한 것이었고 남북에 주둔한 이들 강대국의 뜻에 맞게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이들의 이데올로기 전쟁에 우리는 대항할 힘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