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사 산책 1970년대편 1권 강준만 인물과 사상사 2002년 초판 2006년 초판 10쇄 291쪽 ~12.16
70년대는 내가 고등학생부터 2년 정도의 직장 생활을 거쳐 대학생활을 시작하고 군대 생활을 한 기간이다.
이 시대는 박정희의 독재가 절정을 이룬 시기였고 결국 부하의 총에 사라진 기간이다.
농촌은 급격히 붕괴되면서 도시로 몰려드는 젊은이들 때문에 도시 빈민과 노동문제가 큰 이슈였다.
전태일의 분신이나 도시산업 선교회등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수출이 아니면 살 수없던 시절이었다.
정인숙이라는 여자가 살해되고 그의 아들이 박통의 아이냐 정일권의 아이냐 하는 소문이 한창 떠돌았다.
요정 정치가 극심했다.
시인 김지하가 오적을 발표했다.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민족적인 자신감도 많이 생겼고 하면 된다는 정신이 강하게 일어났다.
어용 지식인들은 박정희를 강력하게 비호했다.
언론 통제가 극심했다.
선거를 위해서 서승 서준식이란 형제를 간첩으로 몰아 사형시켰다.
그린벨트와 산림녹화는 박정희가 가장 성공한 시책 가운데 하나다.
북파공작원들을 훈련시켰지만 이후락과 김일성이 만나면서 이들의 용도가 불분명해지자 학대했고 결국 이들이 버스를 탈취해서 시내로 돌진하게 되었다.
공화당 4인 체제라고 할 수 있는 인물들인 김성곤, 길재호, 김진만, 백남억의 세력이 강했지만 결국 박정희에게 토사구팽당한다.
4.27대선 이후 부정 선거에 대한 시위가 빈발하자 12.6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더 독재를 강화한다.
윤형주, 송창식 양희은등 포크 음악 가수들이 인기를 얻었다.
라디오 dj들이 인기가 있었고 대학생들의 미팅 문화가 활발했다.
7.4 남북 공동성명으로 평화분위기를 만드는 것 같았다.
하지만 10월 유신이 선포되고 독재는 더욱 강화된다.
조선일보는 외자로 코리아나 호텔을 짓고 통일벼가 증산에 성공하자 쌀부족에 한숨을 돌리게 된다.
하지만 혼식, 분식 장려는 학교에서도 강력하게 시행되었다.
새마을 운동이 일어났고 군대식으로 전국에 퍼져나갔다.
박정희가 스스로 새마을 노래도 만들었다.
이순신 숭배를 국민 의식 개조사업의 일환으로 사용했다.
한국 노총은 어용화되어 위원장은 국회로 진출할 수 있었다.
트롯에서는 남진과 나훈아가 인기를 누렸고 신중현과 김추자가 락음악에서는 인기를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