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문화 유적지 관광지
남명 조식 유적지 탐방 24.04.04
singingman
2024. 4. 5.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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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 부부와 함께 가다.
남명은 조선 시대의 고집 센 선비를 연상시킨다.
남명은 1501년에 합천군 삼가면에서 태어나서 5~6세경에 문과에 급제한 아버지를 따라 한양으로 와서 20년간 살았다.
20세 때 생원시,진사시,문과 초시에 모두 합격했다.
이후 과거는 포기하고 성리대전을 읽다가 안연처럼 사림으로 살기로 결심한다.
1528년에 부친의 삼년상을 마치고 28세에 성운의 친형인 성우와 함께 지리산을 유람했다.
30세인 1530년에 처가가 있는 김해로 가서 처가의 도움으로 신어산 밑에 산해정을 짓고 학문에 침잠했다.
45세인 1548년에 모친의 삼년상을 마치고 김해로 가지 않고 고향 삼가에 계부당.뇌룡정이란 집을 짓고 살았다.
61세 되던 해에 삼가에서 현재의 산청군 시천면 사리로 들어가서 산천재를 짓고 살았다.
이곳으로 들어간 이유는 천왕봉이 아름답게 잘 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58세에 쌍계사 방면을 유람하기 전까지 지리산을 11번 유람하고 1558년에 쌍계사 방면 유람이 12번째였다.
1552년 첩에게서 아들 셋을 얻었다.
산청에는 그가 61세에 와서 죽을 때 까지 살았던 산천재와 덕천 서원이 있고 그의 무덤과 사당 그리고 기념관이 있다.
사당은 몰라서 가 보지 못했고 나머지 다른 곳은 다녀왔다.
산청 덕천서원 24.04.04 (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