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석, 백년의 지혜 김형석 21세기 북스 2024년 1판 5쇄 282쪽 ~9.25
우라 나이로 105세의 철학자가 전하는 인생론이라고 표지에 적혀있다.
중앙일보에 발표된 글들을 모은 책이라고 한다.
1920년생인 그는 기독교인으로 일제 시대와 6.25와 군사독재시절을 다 겪었다.
무엇보다 부러운 것은 안병욱, 김태길과 함께 평생 진한 우정을 나눈 것이다.
부인을 20년간 병간호했다.
그의 강의를 요청하는 사람들이 지금도 있다.
공산주의의 잔혹함과 거짓됨을 직접 보고 겪었기 때문에 좌파에 대해서 좋은 시선을 가지기가 어려웠던 것 같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를 별로 좋게 보지 않는 것 같다.
정직과 진실한 삶을 강조한다.
사회에 공헌하는 삶이 가치있는 삶이라고 주장한다.
자녀들이 다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다.
저자는 꿈에 어떤 전조들을 종종 보는 것 같다.
스스로도 그렇게 말한다.
인상적인 글들을 옮긴다.
나 같은 나이가 되면 자제력이 약해진다. 좋지 못한 옛날의 습관이 튀어나온다. 칭찬보다 욕하기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인정받고 싶은 잠재력 때문에 혼자서 대화를 독차지하기도 한다.
내 주장이 옳다는 자세다.
수준낮은 정치인과 근본주의 신앙을 가진 지도자도 실수를 한다.
대화의 분위기를 해치며 내 생각과 다른 사람을 존경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침묵과 겸손이 미덕이라는 예절을 지키지도 못한다.
역사의 과거는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는 미래 창출의 교훈이 되어야 한다.
그 의무를 방해하거나 포기하는 국가는 영광스러운 희망이 찾아오지 않는다.
100세를 넘기면서 얻은 결론은 인간은 일하기 위해 태어났다.
일의 목적은 더 많은 사람의 행복과 인간다운 삶을 돕는 데 있다.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한다면 더 큰 봉사의 기회가 주어진다는 인생관이다.
(김형석 교수의) 외할아버지가 동네 유지 중 한 분이었다.
외할머니는 칠골 강씨 집안이었다. 큰아들을 임신하고 친정에 가 있을 때 김일성의 모친 강반석도 김일성을 임신해 고향에 와서 같은 때 해산했다.
그때 김일성 어머니가 유방이 곪아 젖을 먹일 수 없어 외할머니가 3개월 동안이나 젖을 먹여주었다.
그런데 큰아들 영수, 둘째 영국이 반공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처형당했다. 막내 영훈은 형들의 원수를 갚기 위해 대한민국 국군에 입대해 춘천 북쪽에서 복무했다.
외할머니는 "그때 그놈 새끼를 젖꼭지로 콧구멍을 막아 죽였어야 했는데 원통하다." 라고 말하곤 했다.
나는 지금도 세 외삼촌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다.
일본인들은 78%가 100세 이상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 첫째 원인은 100세 이상의 삶은 신체적 부담과 고통이 동반하기 때문이다.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은 모르는 어려움이 있다.
나도 95세 이후부터는 내 정신건강이 신체적으로 노쇠한 육신을 업고 다니는 부담을 느낀다.
저녁 10시가 되어 잠드는 시간에는 편안한 안식을 느낀다.
하루에 짐을 풀어놓는 가벼운 자세다. 반대로 아침 기상 시간이 되면 일어나는 것이 싫어진다.
내 몸이 천근만근 같아 "30분만 더 자면 안 되냐"라며 누군가에게 물어보는 심정이다. 기상 자체가 주어진 부담이다.
서양의 격언 가운데 "성실한 사람은 악마도 유혹하지 못하며 하나님도 그를 버리지 못한다"라는 격언이 있다.
김형석 교수의 선배였던 박종흥 교수도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철학적 진리의 여신 옷자락을 찾아붙들고 눈물을 흘릴 수는 있어도 종교적 신앙을 받아들일 수는 없다"라고 제자들에게 말하곤 했다.
신앙이 선행하면 진리의 신은 떠나버리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진리를 위한 성실성은 종교신앙과 공존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한때는 세계 휴머니스트 협회가 우리나라에도 있었다.
그 회원 중에는 유신론자가 없었다.
종교적 실행을 배제했기 때문이다. 이랬던 박종흥 교수가 신앙인이 되고 새문안 장로교회에서 그의 장례식을 했다.
사랑이 있는 교육이 세상을 바꾼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이 무궁화 대흔장을 셀프 수상했다.
국회에서 생전이나 사고에 증정하는 것으로 알았다.
미국 대학에서 자기 대학 출신을 교수로 채용하는 것을 꺼리는 것은 대학의 목적이 국가를 위한 인재를 사회로 진출시키는 데 있기 때문이다.
동문들이 대학을 운영하면 동질사회로 굳어져 발전이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 밑에는 정의를 공익을 위한 방법으로 인정하는 사회 질서가 깔렸기 때문이다. 폐쇄적인 정의 관념보다 사회 공익을 위한 개방된 자유를 존중하는 사회 질서의 다양성이다.
정의는 평등을 위한 수단 가치이다.
정의를 가장해 사회적 공익성을 훼손하거나 억제하는 평등 위주의 정의관은 정의의 가치를 파괴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공익성에는 두 가지 성역이 있다.
다른 사람의 인격이나 인생을 헐뜯거나 파국으로 몰아넣는 일이다.
그리고 소수집단의 정의관에 붙잡혀 다수인과 사회의 선한 질서를 해치는 행위다.
민주 국가의 큰 나무에는 정의로운 평등과 창의적 자유가 함께 열매를 맺어야 한다. 그런 나무를 우리는 휴머니즘(인간애)의 나무로 키워가는 것이다.
운동권 출신 정치인이 등단하면서 수단과 방법만 잘 구사하면 승리할 수 있고 그 승리가 곧 정의가 된다라는 개념이 상식이 되었다.
거짓은 악 중의 악이지만 진실은 선의 출발이며 사회 질서와 가치의 분기점이다.
선이란 무엇인가.
사회 공익성을 위하는 삶이다.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실효 가치다. 악은 우리의 행복과 인간다운 삶을 훼손시키는 행위다.
자유도 있어야 하고 평등도 귀하다.
그러나 인간과 사회의 공익성에 위배되는 자유와 평등은 역기능의 주범이 된다. 소수인의 자유가 전체 국민의 불행을 초래해서는 안되며 평등을 강요하는 정의는 인간성까지 병들게 한다.
이런 사회 기능과 질서를 모르거나 무시하는 정치인들이 인간의 행복을 찬탈했고 인류의 희망을 소멸시키고 있다.
우리가 믿고 따를 수 있는 최선의 길은 거짓과 악을 버리고 진실과 선을 위하는 삶이다.
인간 사랑이 역사의 유일한 희망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민주당에는 미래가 없고 국민의 힘은 새로 태어날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실용주의 철학이란 무엇인가. 서구 철학자들은 '열매 많은 것이 진리'라는 정신으로 대변한다.
정치 경제와 같은 사회 문제에서 휴머니즘의 열매, 즉 많은 사람의 인간다운 삶의 가치 구현이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