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부근당 24.09.26
10층 조집사님 부부와 우리 부부가 함께 가다.
강화 부근당은 교동도에 있다.
부근당이란 이름을 가진 곳은 전국에 여러 곳이 있다.
다른 곳에서는 부군당으로 부르는 경우도 있으며 한문으로는 여러 가지로 표현된다.
부군(府君), 부근(府根), 부근(府群), 부근(付根), 부강(富降), 부군(符君)등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곳은 미나리(芹)를 나타내는 부근(扶芹)으로 쓰고 있다.
종묘, 사직, 선농단 등 국가 제의에 미나리김치(芹菹)를 제물로 바쳤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왕에게도 진상했던 강화도의 특산물인 미나리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추측하는 분들도 있다.
『증보문헌비고』에 의하면
“본조 풍속에 도하 관부들에는 으레 수호신을 모신 한 작은 숲을 두고 그 사당에 지전(紙錢 : 종이돈)을 걸고 부군이라 일컫는다.
'부군’이란 본래 한(漢)나라 태수의 칭호였다고 하나, 부군당이란 옛날 관청 내에 두던 사당의 이름인 듯하다.
부군당에 봉안된 부군신은 마을을 보호해 주는 무신적(武臣的) 성격과 함께 풍요신적 요소도 지니고 있다."
부근당 옆에는 당목으로 생각되는 큰 오동나무가 서 있고 부근당 안에는 연산군과 폐비 신씨로 추정되는 두 사람의 초상이 걸려있다.
그 옆에는 남근목(男根木) 3개가 지전(紙錢)과 함께 걸려 있다.
현재 이곳은 주로 무속인들의 기도처로 사용되고 있는 것 같다.
관우나 재갈량, 최영 장군같은 위인들의 사당이 무속인들의 기도처로 사용되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되지만 연산군을 신격화해서 이렇게 기도하는 무속인들은 무엇 때문에 그렇게 할까?
마을 주민들은 “남근에게 기도를 하면 아들을 낳는다”고 믿었다고 한다.
남근 숭배 사상은 기원이 오래 되었다.
전국에 그 흔적이 남아 있으며 삼척 해신당에도 남근을 깎아 걸어 둔 것들이 있다.
또 가평 운악산이나 해남 천관산에는 자연석의 모양이 남근을 닮아서 시선을 끌기도 한다.
부근당 출입문이 잠겨 있어서 아래 두 장의 사진은 다른 사람의 블로그에서 복사해 왔다.
(https://m.blog.naver.com/jinsug9339/220594745847)
아래 사진들은 교동도 화개산 아래 있는 연산군 유배지를 재현한 것들이다.
조선의 왕들 가운데 반정으로 쫓겨난 광해군과 연산군은 종묘에도 들어가지 못했다.
연산군은 장녹수의 치마폭에 놀아나면서 사치와 방탕한 연회로 세월을 보냈고 그로 인해 흥청망청이란 말이 나왔다.
심지어는 친숙모를 궁궐에 불러들여 불륜을 저지르기도 했다.
광해군은 그래도 임진왜란 때 아버지 선조가 비겁하게 도망을 다니는 동안 나라를 돌보기도 하고 중국과의 외교도 지혜롭게 잘 처리하기도 해서 초기에는 정치를 상당히 잘 했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연산군은 별로 뚜렷이 내세울 것이 없다.
자신에게 비판적인 신하들을 숙청한 무오사화(1498년)와 어머니 윤씨의 죽음과 관련된 수많은 신하들과 학자들을 죽인 갑자사화(1504년)를 저지르기도 했다.
그로 인해 중종반정으로 쫓겨나고 결국 강화도로 유배를 와서 비참한 죽음을 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