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여행 3일째(임실 치즈축제)
오늘은 임실치즈 축제에 다녀왔다.
임실군이 어마무시하게 넓은 부지에 치즈 테마파크를 만들었다.
정원도 만들고 필요한 건물들도 준비하고 잘 했다.
그런데 관광객이 이렇게 많이 몰리는데 주차장은 잘 준비했지만 교통정리가 잘 되지 않았다.
테마파크 주변에 임시 주차장을 만들고 주차한 후 20분 가량 걸어가야 행사장에 도착한다.
셔틀버스도 그래서 운행한다.
하지만 사람이 너무 많다.
차량 통제가 안 된다.
주차장까지 들어가는데만 한시간 가까이 걸렸다.
오후에 우리가 나오는 시간에는 들어가는 차와 나오는 차가 뒤섞여서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이 되기도 했다.
어떻게 해결하는지 모르겠다.
교통 전문가가 나서서 일방통행을 만들든지 도로를 넓히든지 어떻게 해야 한다.
행사장 음식도 임실군 면단위로 포장을 치고 만들어 파는데 최악이다.
전라도 음식에 대해 나는 좋은 기억뿐인데 오늘 먹은 추어탕은 내 평생에 먹은 음식 가운데 가장 나빴다.
미꾸라지 내장을 제거하지 않았는지 냄새가 엄청 심했다.
도저히 먹을 수 없어서 몇 숫가락 먹다가 포기했다.
다른 음식도 마찬가지였다.
동네 할머니들이 만드는 것 같은데 음식 솜씨 좋은 사람들을 고르지 않은 것 같았다.
손자들 체험 코너라도 있었던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교통과 음식을 생각하면 다시는 오지 않을 것 같다.
임실치즈의 역사를 살펴보니 ai 가라사대
임실치즈는 한국 치즈 산업의 역사와 시작을 알리는 상징적인 특산물입니다.
그 역사는 벨기에 출신 선교사 **지정환 신부(본명 디디에 세르스테반스)**의 헌신적인 노력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다음은 임실치즈의 주요 역사입니다.
1. 탄생 (1960년대)
배경: 1959년 한국에 온 지정환 신부가 1964년 전라북도 임실성당 주임신부로 부임했습니다. 가난했던 임실 지역 주민들의 자활을 돕기 위해 낙농업을 통한 지역 경제 활성화를 계획했습니다.
시작: 1966년, 산양 두 마리를 도입하며 산양협동조합을 설립하고 치즈 생산을 시도했습니다.
최초 치즈 개발: 거듭된 실패 끝에 유럽에서 직접 치즈 제조 기술을 배워와 1967년에 산양유로 최초 치즈 제조에 성공했습니다. 이것이 한국 치즈의 원조로 알려져 있습니다.
초기 종류: 1968년 카망베르 치즈, 1970년 체다 치즈, 1972년 모차렐라 치즈 등을 개발하며 점차 종류를 늘려갔습니다.
2. 성장과 발전 (1970년대 이후)
대규모 생산: 1972년 조선호텔에 임실치즈를 납품하는 데 성공하면서 큰 전환점을 맞았으며, 이후 호텔과 피자 업체의 수요와 맞물려 대량 생산 설비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지역 특산물 정착: 지정환 신부는 일구었던 치즈 공장의 운영권과 소유권을 주민협동조합인 임실치즈농협에 전부 넘겼고, 임실치즈는 지역 특산물로 확고히 자리 잡았습니다.
다양화: 시간이 지나면서 최신식 설비를 도입하고 자연(숙성) 치즈 등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3. 지정환 신부의 공헌
지정환 신부는 임실치즈를 통해 임실 지역 경제를 활성화시킨 공로를 인정받아 **'한국 치즈의 아버지'**로 불립니다.
그는 2016년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하고 '임실 지씨'의 시조가 되었으며, 2019년 선종 후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모란장을 추서 받았습니다.
https://naver.me/5JGR0KEs


퍼레이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