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백담사 - 오세암 - 백담사 ) 19-10-19
윤교감 부부와 우리 부부가 함께 가다.
여자 둘은 백담사에서 놀고 남자 둘만 가다.
원래 계획은 봉정암으로 가서 오세암으로 내려올 계획이었는데 백담사 주차장에서 백담사까지 올라가는
셔틀버스 승객이 너무 많아서 줄을 1시간 가까이 서서 버스를 타게 되었다.
그래서 봉정암은 포기하고 오세암만 다녀오다.
오늘의 백미는 오세암 직전 고개 오른편에 있는 망경대라고도 불리는 봉우리에 올라간 것이었다.
설악산의 가운데 있어서 내설악쪽을 다 조망할 수 있는 아주 좋은 봉우리였다.
공룡능선과 용아장성 서북능선 등이 뚜렷이 잘 보였고 구름때문에 대청봉은 보이지 않았지만 경치가 참 좋았다.
설악산 백담사 19-10-19 (tistory.com)에서 오세암까지는 왕복 13Km 정도 된 것 같다.
거의 평평한 길로 가기 때문에 별로 힘들이지 않고 갈 수 있다.
설악산 영시암 19-10-19 (tistory.com)을 지나면 삼거리가 나오고 봉정암은 오세암과 갈라지는 이 삼거리에서 7Km 정도를 더 가야하고 마지막 500m가 아주 깔딱고개여서 힘이
들지만 설악산 오세암 19-10-19 (tistory.com)은 그렇게 힘드는 구간이 없다.
지금이 단풍철이어서 백담사 주차장과 백담사에서 버스타기 위해 기다리는 시간이 1시간 이상씩 걸렸다.
백담사에서 오세암까지는 왕복 5시간이 걸렸다.
망경대에서 30분 정도 시간을 보냈으니까 실제 시간은 4시간 반 정도면 오세암은 왕복이 가능해 보인다.
단풍이 절정은 아니지만 아름답게 물들었다.
언제 시간을 내어서 이 가을이 다 가기 전에 다시 봉정암으로 해서 한바퀴 돌아야겠다.
그렇게 해도 7시간 남짓이면 가능해 보인다.
길이 참 아름답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노란 숲속에 두 갈래 길이 나 있습니다"로 시작하는 "가지 않은 길"이 생각나지 않을 수 없다.
용화동에 있는 삼부연 폭포를 좋아해서 호도 삼연으로 지었다는 설이 있던데 증조부 김상헌은 좌의정을 지냈고 아버지와 형은 영의정을 지낸 명문가 출신이다.
창협 창집 삼형제가 다 이름을 남긴 명사들이다.
사화로 인해 형과 아버지는 사약을 받았고 그 영향 때문인지 진사시에 합격한 이후로 벼슬 자리로는 나가지 않고 이 골짜기에 영시암을 짓고 우거했다고.
성리학과 문장으로 이름을 떨쳤고 겸재 정선이 그의 제자였으니 좋은 제자들도 두었다.
겸재 정선이 용화동 폭포를 그리게 된 배경 가운데 하나가 삼연이 용화동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스승을 만나러 가다가 그렸다는 설이 있다.
아버지와 형을 그렇게 보낸 김창흡은 속세와는 인연을 끊고자 영원히 맹세한다는 永矢庵을 짓고 이 골짜기에
살았다.
하지만 세상이 어디 내 뜻대로만 살 수 있나? 결국 여기를 떠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오기도 하지요.
그가 이곳에 머문 지 6년이 되던 해인 1714년(숙종 40) 11월에 공역(供役)을 하던 찬모(饌母)가 호랑이에게 물려 변을 당하자 춘천으로 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면 용화동에는 언제 살았지?
이 삼거리에서 왼편은 오세암 오른편은 봉정암 가는 길이다. 봉정암은 7.1km 오세암은 2.5km
여기서부터 오세암까지는 약간의 오르막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