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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사람

새벽달빛 아래서-법정스님의 글 중 일부만 발췌 2012-09-09 본문

독서

새벽달빛 아래서-법정스님의 글 중 일부만 발췌 2012-09-09

singingman 2022. 11. 1.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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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불을 마치고 뜰에 나가 새벽달을 바라보았다.

중천에 떠 있는 열여드레 달이 둘레에 무수한 별들을 거느리고 있다.

잎이져 버린 돌배나무 그림자가 수묵으로 그린 그림처럼 뜰가에 번진다.

달빛이 그려 놓은 그림이라 나뭇가지들이 실체보다도 부드럽고 포근하다.

밤새 개울물 소리에 씻겨 투명해진 새벽달을 바라보면서, 언젠가 화집에서 본 심전(心田) 안중식의 '성재수간도(聲在樹間圖)'가 연상되었다.

소리가 나무 사이에서 난다는 그림인데, 표현을 달리하자면 숲속에서 들려오는 소리다.

숲속에 사는 한 사내가 달빛 아래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사립문 쪽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는데, 찾아오는이는 없고 바람만 휘몰아치면서 그의 머리카락과 나뭇잎이 심하게 나부끼고 있는 풍경이다.

어쩌면 그는 방안에서 바람소리를 듣다가 밖에 누가 오는 듯한 소리를 듣고 문밖으로 나와본 것인지도 모른다.

 

중천에 떠 있는 새벽달을 보면서 떠오른 그림이다.

새벽달은 게으른 사람에게는 만나보기 어렵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 스물네 시간이지만 그 시간을 유용하게 쓸 줄 아는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자연의 은혜다.

이우주에 살아 있는 모든 것은 한 곳에 머물러 있지 않고 움직이고 흐르면서 변화한다.

한곳에 정지된 것은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 해와 달이 그렇고 별자리도 늘 변한다.

우리가 기대고 있는 이 지구가 우주 공간에서 늘 살아 움직이고 있다.

무상無常하다는 말은 허망하다는 것이 아니라 '항상 하지 않다' '영원하지 않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고정되어 있지 않고 변한다는 뜻이다.

이게 우주의 실상이다. 이변화의 과정 속에 생명이 깃들이고 , 이런 변화의 흐름을 통해서 우주의 신비와 삶의 묘미가 전개된다.

만약 변함없이 한 자리에 고정되어 있다면 그것은 곧 숨이 멎은 죽음이다.

살아있는 것은 끝없이 변하면서 거듭거듭 형성되어 간다. 봄이가고 또 오고, 여름과 가을과 겨울이 그와 같이 순환한다.

그것은 살아 있는 우주의 호흡이며 율동이다. 그러니 지나가는 세월을 아쉬워할 게 아니라, 오는 세월을 유용하게 쓸 줄 아는 삶의 지혜를 터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