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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의 상징세계 - 자현스님 2013-01-31 14:30:04 본문

독서

사찰의 상징세계 - 자현스님 2013-01-31 14:30:04

singingman 2022. 11. 3.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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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상징에 관해 모르기 때문에 그 절이 그 절같고 다 비슷해서 휭돌고 그냥 나오게 된다.

자현스님이 쓴 '사찰의 상징세계'라는 책을 읽고 절을 보는 방법을 정리해 본다.

절의 구조는 불교의 우주관과 관계가 있는 수미산과 연관되어 있다.

수미산은 그리스 로마신화의 올림푸스산에 해당한다.

 

먼저 절의 첫 시작은 냇물과 다리를 건너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 냇물은 수미산 우주론의 향수해를상징한다.

이 냇물을 경계로 속과 성이 분기되는 것이다.

이 냇물은 또한 인도같은 남방문화권에서는 신발을 신지 않기 때문에 불전에 들어갈 때 발을 씻고 들어갈 수 있는 장소가 되기도 한다

이슬람 모스크 앞에는 손발을 씻을 수있는 우두(Wudu)라는 것이 있다.

이 냇물을 건너는 다리가 보통 해탈교나 피안교로 불린다.

이 다리의 모양은 대체로 아치형을 이룬 무지개다리이다.

오늘날 차량통행때문에 점차 변하고 있긴 하지만, 그래서 냇가에 내려가서 다리를 쳐다보면 냇물에 비쳐서 완전한 원형이 되기도 한다.

이 다리를 건너가면 성역의 시작인 일주문이 나타난다.

일주문은 수미산의 최하단으로 성역의 시작점이다. 일주문은 기둥이 한개라는 의미가 아니고 한줄로 되어있다는 뜻이다.

일주문과 천왕문 사이에 절에 따라 좀 다르긴 하지만 부도밭이 있다.

부도란 그 절에 있던 고승들을 다비하고 유해를 모아놓은 탑이다.

일종의 공동묘지다.

부도는 붓다의 중국어 음역이다.

부도는 통일신라시대를 대표하는 팔각원당형과 고려말부터 등장하는 석종형으로 크게 나뉜다.

팔각 원당형은 원래 사리를 모시던 고급형이다.

석종형은 대접을 뒤집어놓은 복발형이다.

일주문 다음이 절에 따라 좀 다르지만 금강문이 있거나 없고 다음에 천왕문이 나타난다.

천왕문은 보통 3칸으로 지어져서 사람이 가운데로 지나가고 양옆에 두명씩의 천왕이 있다.

천왕들은 손에 들고있는 물건으로 구분되는데 불교방식대로 동남서북의 천왕들을 살펴보면

동-지국천왕으로 손에 비파나 보주를 들고 있다.

남-증장천왕으로 보검을 들고 있다.

서-광목천왕으로 용과 여의주를 들고 있다.

북-다문천왕으로 보탑을 들고 있다.

이 천왕들이 악귀들을 밟고 서서 4방면을 감시하면서 절에 악한 기운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다.

천왕문을 지나면 해탈문이 나타나고 그 다음에 그 절의 주전각인 대웅전이 나타난다.

대웅전앞에는 탑이 있기도 하다.

탑은 인도불교에서는 사리를 모시던 곳이라서 신앙의 대상이었다.

석가가 죽고나서 사리를 이 곳에 보관했기 때문에 신성시되고 사리는 석가의 신체처럼 소중하게 생각되었다.

예수님의 성의가 로마 천주교에서 귀하게 모셔져 있는 것과 같다고 하겠다.

나중에 절이 많이 생기고 탑이 더 많아지자 8섬 4말이 나왔다고 하는 석가의 사리도 더 이상 사리를 공급할 수 없게 되었고 대신에 불상이 만들어지게 된다.

대웅전 앞에는 탑도 있지만 석등도 있다. 이것은 대웅전앞을 밝히는 역할을 한다.

해인사같이 큰 절에는 정료대라고 하는 장작불을 피울 수 있는 높은 대도 있다.

대웅전에는 석가불이 안치되어 있다.

주불이 누구냐에 따라서 전각의 이름이 달라진다.

석가불이 안치된 전각이 대웅전 혹은 대웅보전이라고 높여부르기도 한다.

석가불은 항마촉지인이라고 하는 손모양을 하고 있는데 마왕인 파순이 붓다의 명상을 방해하면서 석가가 쌓은 선행을 증명해 보라고

하니까 이 손모양으로 땅을 가리킨다.

즉 대지가 증명한다는 것이다.

붓다가 깨달음을 얻고 처음으로 설법한 것이 화엄경이라고 한다.

화엄경은 깨달음의 당당함이 있다면 법화경에는 중생을 굽어보는 자애로운 미소가 있다고 하겠다.

영산회상도는 석가가 영취산에서 법화경을 설하고 있는 장면이다.

대웅전안에는 불상아래 수미단이라는 받침대가 있다.

불상위 천정에는 닫집이 있기도 하다. 집안의 집인 셈이다.

절앞에 있는 당간은 절을 나타내는 깃발을 달던 일종의 깃대다.

국기게양대를 생각하면 된다.

 

절안에 있는 전각들을 살며보면

대웅전은 석가불을 중앙에 두고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좌우로 둔다.

불상뒤의 탱화로는 영산회상도를 둔다

대웅보전에는 좌우에 약사여래(미륵불)와 아미타불을 둔다.

그래서 동방의 약사여래와 서방의 아미타불이 함께 있기때문에 삼계불(여기서 계는 공간을 말한다.)이라고 한다.

아미타불과 미륵불이 있으면 3세불이라고 하며 과거 현재 미래의 3불이다.

영산전이라고도 하고 팔상전이라고도 하는 전각에는 석가불과 함께 미륵보살과 제화갈라보살이 있다.

응진전은 나한전이라고도 하는데 석가불과 함께 대가섭이나 아난존자를 안치하기도 한다.

비로전은 이름이 여러가지인데 대적광전,적광전, 대광명전, 화엄전등으로 불리고 비로자나불이 주불이다

무량수전에는 아미타불이 주불이고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좌우에 있다.

유리보전은 약사전이라고도 하는데 약사여래가 주불이고

약사여래는 손에 약합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자주 나탄난다.

용화전은 미륵전이라고도 하는데 미룩불이 주불이고

미륵불은 기독교의 메시아같은 존재다.

다음 세상에 나타날 부처다.

원통보전은 관음전이라고도 하며 관세음보살이 주인이다.

지장전은 명부전이라고도 하며 지장보살이 주인이다.

삼성각은 치성광여래(북극성과 칠성신앙의신)가 주인이고 산신이나 바닷가에는 용왕이 함께 있기도 하다.

지장보살은 지옥의 중생을 구제하는 보살이다.

지장보살을 항상 머리를 깎은 모습으로 나온다.

지옥의 중생들을 다 구제하기 전에는 성불하지 않겠다고 하는 자비의 대표격이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서 내이름을 생명록에서 지우더라도 이스라엘 백성들을 용서해달라는 기도가 생각난다.

그의 손에는 구슬과 육환장이 들려 있다.

십육나한들은 다 열반하지 않고 수행의 힘으로 중생을 도와주는 신선같은 존재들이다.

수월관음도는 선재동자가 참배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목탁은 물고기 모양이다.

목어와 같은 기능이다.우리 나라에만 있는 도구다.

전륜성왕은 법륜을 가지고 있는데 법륜은 태양과 광명을 상징한다.

군주를 상징하기도 한다.

성경의 멜기세덱이 연상된다.

적멸보궁에는 불상이 없다.

진신사리가 대신하기 때문에 따로 불상을 모실 필요를 느끼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구하기 힘든 사리를 가지고 있다는 자랑이기도 하다.

이런 절에는 사리가 있는 쪽으로 살문이나 유리로 개방된 벽을 두기도 한다.

십우도는 소를 소재로 한 10장의 그림이다.

깨달음을 소에 비유해서 그렸고 티베트에서는 소대신 코끼리를 그리기도 했다.

도교에서는 8우도를 그리기도 한다.

탑은 층수가 홀수로 되어있고 각층의 모양은 짝수의 각형으로 되어있다. 즉, 4각 7층탑등이다.

탑은 3부분으로 되어있는데 상륜부와 탑신부,기단이다.

상륜부에는 백합 봉우리 모양의 수연과  여의주를 의미하는 용차등이 있고 탑신부를 층수로 세게된다.

탑은 석탑, 목탑, 전탑등으로 나눌 수 있다.

돌이 흔한 우리 나라는 석탑이 많고 황토가 좋은 중국은 흙을 구워서 벽돌로 만든 전탑이 많고 목탑은 나무로 된 것이다.

불경의 표지가 황색인 것은 금색을 상징하고 황제처럼 성인은 금색을 사용할 수 있어서 가장 귀하다는 의미로 사용한다.

우리 나라의 다른 책처럼 불경은 책끈을 다섯번 묶는다.

 

전각의 건축학적 구조를 보면

기둥에는 원형과 4각형의 방형이 있는데 원형기둥은 원형과 민흘림, 배흘림이 있다.

배흘림기둥은 위보다 아래 2/3지점이 불룩하게 똥배처럼 나온 형태를 말한다.

민흘림 기둥은 그냥 밋밋한 기둥이다.

팔작지붕과 맞배지붕이 있고 해인사 장경판전간은 우진각지붕도 있다.

지붕과 기둥사이에서 지붕을 받쳐주는 공포가 있는데 세가지 양식이 있다.

주심포는 기둥위에 공포를 올려 놓은 것이고

다포양식은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공포가 있는 더 것이다.

익공양식은 새 날개모양의 공포를 말한다.

 

범종은 중국식과 우리 식이 다른데 중국종은 백합모양으로 끝이 갈라진 것이 많고 우리 종은 끝이 오목하게 모여 있다.

땅에서 낮게 달려있고 종 아래는 항아리나 구덩이를 파서 울림을 좋게 만든다.

종신에는 비천상이 있고 유두라고 하는 돌출점같은 것이 있다.

비천상은 신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모습이다.

불교의 사물중 범종, 법고, 운판, 목어가 있는데 범종소리가 가장 크고 오래 울린다.

범종은 사람을 제도하기 위한 것이고 법고는 짐승들을 위한 것이다.

목어는 물에 사는 물고기들을 위한 것이고 운판은 날짐승들을 위한 것이다.

불상의 수염은 인도에서는 깎았지만 중국에서는 신체발부는 수지부모라서 깎을 수 없었다.

그래서 어중간하고 어색한  수염이 중국과 우리  불상에는 있다.

 

신라시대 불상이 인체의 곡선을 가장 잘 나타내고 섬세하며 약간 뒤로 젖혀진 모양이다.

고려시대 불상은 수직으로 똑바로 앉아있고 조선시대 불상은 앞으로 약간 숙이고 눈을 내리 깔아서 사람과 눈을 맞출 수 있다.

조선시대 숭유억불 정책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인도에서는 스님들의 걸식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인도의 기후가 음식을 저장하기 어렵고 또 음식이 풍부했기 때문에 미리 음식을 스님들에게 공양하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또 절에 부엌이 없고 붓다도 절에 부엌을 만들지 말라고 말했다.

하지만 중국으로 넘어온 불교는 걸식이 사회적으로 좋은 인상을 주지 않기 때문에 절에 부엌을 만들고 음식을 조리했다.

우리 나라도 한때는 스님들이 걸식을 했지만 지금은 하지 않는다.

발우는 스님들의 솥과 밥그릇을 겸하는 도구다.

불교에서 육식이 금지된 이유는 붓다는 처음에 육식을 금하지 않았다.

공양에서 얻어온 음식에 고기가 섞여 있으면 그것을 다시 조리해서 먹었다.

하지만 인도의 생활이 유목에서 농경으로 바뀌면서 육식의 당위성도 사라지고 육식은 잔인한 문화라는 생각이 생긴다.

중국에서는 농경생활에서 소는 아주 귀한 짐승이라서  쉽게 잡아먹을 수 없어서 그랬다고 본다.

윤회사상과는 별 관계가 없는 모양이다.

 

스님들은 저녁 9시에 자고 3시나 3시 반경에 일어나서 하루를 도량석으로부터 시작한다.

시간의 기준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한다.

붓다는 원래 3때를 잤다고 하는에 이는 한 때가 3시간이어서 9시에 자고 6시에 일어났는다는 말이다.

그러나 중국으로 넘어오면서 한 때를 2시간으로 계산해서 9시에 자고 3시에 일어나는 전통이 생긴 것이다.

 

달마는 이상하게 생겼는데 실존인물이라고 가상했을 때 아프가니스탄 사람일 가능성이 높단다.

보살은 원래 재가 신도들을 지칭하는 아직 완전한 깨달음에 이르지 못한 사람들을 통칭하는 말이었다.

지금은 주로 여자 신도들을 지칭하지만 원래는 남녀 모두에게 해당하는 말이었다.

지금은 남자신도는 거사라 불리고 주로 여자에게만 사용된다.

 

문무왕비문에 의하면 경주 김씨의 시조는 김알지가 아니고 흉노족의 아들인 김일제로 적고 있다.

김일제는 흉노족인 휴도왕의 아들로 한무제의 서역정벌때 휴도왕은 죽고 김일제가 사로잡혔지만 한무제의 눈에 들어 벼슬을 얻고

그 후손이 우리 나라로 들어왔다는 이야기다.

 

포대화상은 배불뚝이로 중국인들에게는 재물신과 부귀의 상징이다.

그래서 내세관이 약한 중국인들이 삼국지의 관우와 함께 가장 좋아한다.

중국에서는 미륵의 화신으로 통하기도 한다.

포대화상은 포대를 짊어지고 다니면서 여러가지를 구걸해서 넣고 다니다가 어려운 이웃이나 어린이들을 보면 도와주었다고 한다.

 

부처상은 머리에 장식이 없고 보살들은 머리에 면류관같은 모자를 쓴다.

이는 보살들이 사회적으로 저명한 인사들이고 대체로 부유한 사람들이라서 몸에 장식품을 많이 걸치고 있기 때문이다.

 

스님들이 머리를 삭발하는 이유는 석가의 명령이다.

 

사십구재는 사람이 죽어서 다음 세상으로 가는데 걸리는 기간을 중유하고 하며 대체로 49일이 걸린다고 본다.

그래서 좋은 곳으로 가라고 죽은지 49일 안에 하는 재가 49재다.

천도재는  49일이 지난 후에 후손들이 좋은 곳에 가라고 지내는 재가 천도재다.

 

범종은 절에 따라 다르지만 새벽에는 28번 치고 밤에는 33번 친다. 이 횟수를 바꿔서 치기도 한다.

이것은 붓다의 가르침이 전 우주에 전해지라고 치는 상징이다.

보신각 재야의 종도 33번 치는데 이는 불교의 전통인지 독립선언서 작성한 33인을 기념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스님들의 일상생활을 자세히 알려면 지안 스님이 쓴 '산사는 깊다'를 보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