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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사람
헨델의 메시아 본문
영국에서 왕립 음악 아카데미를 두 차례나 조직해서 인기 절정에 있었던 헨델도 오페라의 인기가 시들해지자 다른 길을 찾아야 했습니다.
이때 헨델의 눈에 들어온 것이 오라토리오(Oratorio)였습니다.
오라토리오는 성경의 내용을 가사로 해서 독창, 중창, 합창 등으로 만들고 관현악 반주로 연주하는 대규모의 극음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대 위에서 연기를 안 하는 것 외에는 오페라와 별로 다를 것이 없습니다.
오라토리오 '메시아'는 지금도 전 세계에서 성탄절 시즌에 가장 많이 연주되는 음악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음악에 관한 전설같은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1741년에 작곡된 이 곡은 다음 해에 아일랜드의 더블린에서 초연되었습니다.
가사는 친구 찰스 제넨스(Charles Jenens)가 성경을 바탕으로 작사했습니다.
그리고 1743년에는 런던에서도 연주 되었고 이때 국왕 죠지 2세가 참석했다고 합니다.
연주 도중에 44번(판본에 따라 번호가 약간 다른 경우도 있습니다.)
'할렐루야' 를 합창할 때 너무 감동한 국왕이 자리에서 일어섰다고 합니다.
그것이 관례가 되어 전 세계 어디에서나 할렐루야를 부를 때는 모든 관중이 서서 듣는 것이 관례가 되었습니다.
(일설에는 국왕이 참석했다는 공식 기록이 없어서 누군가의 편지에 쓴 글을 보고 이런 썰이 만들어졌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헨델은 이 메시아를 24일(23일 설도 있습니다.)만에 다 작곡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주장은 그야말로 설(혹은 '썰')일 뿐입니다.
지금처럼 컴퓨터와 신디사이저를 이용해서 악보를 연주와 동시에 그려지게 만드는 기술이 당시에는 없었으니까요.
당시 연주 관례에 따르면 2시간이 훌쩍 넘고, 필사본은 259페이지나 되는 곡을 성령의 이끌림에 의해 식음을 잊고 24일 만에 작곡했다는 것이 가능하겠습니까?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50곡이 넘는 메시아의 곡들 가운데 최소한 아래의 5곡은 이미 전에 다른 용도로 작곡해 두었던 것을 가지고 왔습니다.
합창,
“He shall purify”,
“For unto us a child is born”,
“His Yoke is easy”,
“All we like sheep”과
이중창,
“O, Death, where is thy sting?” 등입니다.
(https://m.blog.naver.com/sfjournal/220906446006 참고)
예를 들어, 아기 예수의 탄생을 노래하고 있는“For unto us a child”는“No, di voi non vo fidarmi” 라는 이중창을 다시 고쳐 쓴 것인데 원곡의 뜻은 “아니, 난 당신을 믿고 싶지 않아”입니다. (아래 두 음악을 비교해 보세요.)
우리를 위해 나셨다
https://youtu.be/X-JMQH6HFT8?si=1cpktEZB5JeIymyw
No,di voi non vofidarmi
https://youtu.be/V4-Nfpw13kY
헨델이 살던 시절에는 저작권법에 관한 개념이 약했습니다.
그래서 남의 곡을 일부 표절하는 일도 많았고 자기 자신이 이미 작곡했던 곡을 가사만 바꿔서 사용하는 일도 종종 있었습니다.
그래서 만약 이런 방법으로 24일 만에 메시아를 작곡했다면, 가능하다는 전제 하에 어떻게 가능했을지를 작곡가의 관점에서 나름대로 추리해 보았습니다.
헨델은 뛰어난 작곡가였으니까 가능했겠지만 나같이 둔한 사람은 곡을 쓴다는 것이 아주 큰 짐이었습니다.
학교 다닐 때 작곡과 학생들은 학기말 과제곡 제출 기한이 다가오면 반드시 그 시한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다양한 방법들을 사용합니다.
한번은 친구 성수와 기말 과제곡을 쓰기 위해서 비오는 날 밤에 북한산에 가서 텐트를 치고 그 안에서 쓴 적도 있습니다.
또 어느 해인가는 선후배들 몇이서 설악산인가 어느산 밑에 있는 민박집에서 밤을 세워 곡을 쓴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민박집 주인이 어떻게 왔냐고 묻길래 뭔가를 쓰러 왔다고 했더니 당시는 전두환 군사 정부 시절이어서 우리가 무슨 반정부 성명서라도 쓰러 온 줄로 생각하고 의심스러운 눈빛을 보인 적도 있있습니다.
헨델이 살던 시대에는 화성음악도 물론 있었지만 이 시대는 대위법 음악이 유행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대위법으로 작곡된 메시아의 곡들에는특정의 선율이 반복되는 악구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면 소프라노에서 사용한 선율을 앨토나 테너등 다른 성부가 그대로 받거나 관계조로 받아서 연주합니다.
때로는 같은 선율을 4개의 성부가 다 연주하기도 합니다.
그러니 작곡가 입장에서는 빠른 시간 안에 한 곡을 완성할 수 있습니다.
아래 악보 1에서 앨토,테너,베이스가 '전능의 주가 다스리신다' 부분을 라장조로 노래합니다.
이어서 소프라노가 같은 조로 받아서 또 노래합니다.(악보 2의 마지막 마디부터)
그리고 또 테너와 베이스가 5도 위의 조로 같은 멜로디를 연주합니다.(악보 3 마지막 마디 참조)
이렇게 하면 한 곡에 많은 아이디어가 없어도 곡을 쉽게 완성할 수 있습니다.
또 이 시대 음악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동형진행이 많습니다.
예를 들면 메시아의 합창곡들에는 멜리스마(melisma) 형태의 곡들이 많습니다.
합창곡 '우리를 위해 나셨다.'에서 소프라노 파트의 마지막 '다'라는 음절은 수많은 음표들을 가지고 같은 형태로 반복이 됩니다.(악보 4 참조)
이런 부분은 작곡가가 큰 어려움 없이 여러 마디를 메꿀 수 있습니다.
이런 곡이 메시아에는 많이 있습니다.
또 독창곡들에는 레치타티보(Recitativo)가 종종 나옵니다.
레치타티보는 음표를 말하듯이 사용하고 반주도 단순하기 때문에 작곡하기가 좀 용이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악보 5 참조)
또 이 시대의 음악계에도 연주 시즌이 있고 휴식 기간이 있었습니다.
작곡가들은 시즌이 시작되기 전에 미리 곡들을 준비해 두어야 했습니다.
이 휴식 기간이 그리 길지 않고 3~4주 정도 밖에 없었습니다.
마치 오늘날 야구 선수들이나 축구 선수들이 시즌이 되기 전에 충분한 연습과 몸만들기를 하고 나서 경기에 임하는 것과 흡사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니 이 짧은 기간에 곡을 완성해야 하는 압박감이 헨델에게도 있었을 것입니다.
위와 같은 사정을 고려한다면 24일 만에 메시아의 모든 곡을 다 작곡한 것은 아니지만 미리 써 둔 다른 곡도 가져오고 해서 완성할 수는 있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24일 만에 작곡하지 않았더라도 이 곡은 헨델 최고의 곡이며 전 세계 사람들이 해마다 부르고 듣는 것을 보면 우리 인류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 가운데 하나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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