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묘는 문창제군과 관우를 모신 도교 사당이다. 문창제군은 문학과 예술을 관장하는 신선이라 할 수 있고 관우는 삼국지에서 보듯이 무와 재물을 관장하는 신으로 승격되었다. 다음 백과에 의하면 문창제군은
"문제(文帝)라고도 한다. 그가 하늘의 옥황상제로부터 명령받은 주요임무는 문학가들의 공적에 따라 상벌을 내릴 수 있도록 문학가들의 일지를 기록하는 일이다. 또한 각 작가들이 받은 명예·칭호 등도 장부에 기록한다.
문창제군에 대한 수많은 전설에 따르면, 문창제군은 17번 환생했는데 9번째에는 장악(張惡)이라는 사람으로 태어났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장악이 당(唐:618~907)나라 때에 살았다고 하고, 3, 4세기 또는 그보다 더 옛날에 살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장악은 쓰촨 성[四川省]의 재동(梓潼)이라는 곳에서 살았다고 전해지기 때문에,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그를 재동신이라는 이름으로 숭배한다.
문창제군은 초상화에서 대개 관복을 입고 손에는 홀(笏:조복에 맞추어 손에 쥐는 물건)을 쥐고 앉아 있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양옆에는 하인과 하녀를 1명씩 거느리고 있는데, 하인의 이름은 천롱(天聾:하늘의 귀머거리)이고, 하녀의 이름은 지아(地啞:땅의 벙어리)라고 한다. 이 이름들은 문학의 비밀에 대해 묻는 사람에게는 귀를 기울이지 말아야 하고 아무도 그런 화제를 꺼내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밖에도 2명의 보좌관인 괴성(魁星)과 주의(朱衣)를 거느리고 있는데, 시험의 신인 괴성은 종종 문창제군과 혼동되기도 한다."
문무묘에는 향을 피우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무속신앙과 도교의 신선이 뒤섞인 곳이 문무묘라 할 수 있다. 도교와 도가는 구분해야 한다는 말이 이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