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자가 약 130편에 달하는 열전을 1,2권에서 각각 35편씩을 소개한다. 춘추전국시대의 시대상을 소상히 알 수 있고 많은 빈객들이나 왕,후, 유세객들의 지혜와 성공과 실패를 볼 수 있다. 오직 실력과 용기와 의리로 살아간 사람들이 명성을 얻었고 간계와 거짓으로 살아간 사람들은 그에 걸맞는 이름들을 얻었다.
드라마틱한 삶을 산 사람들 가운데 여불위가 나는 아주 인상적이다. 자초를 선택해서 성공하지만 노애를 잘못 선택해서 패가망신하게 된다.
여불위전을 요약하면 이렇다. 여불위는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장사를 해서 상인으로 성공했다. 그가 조나라에 갔을 때 자초를 만났다. 자초는 진나라 왕자로 조나라에 볼모로 와 있었고 곤궁한 상태에 처해 있었다.
자초는 태자인 안국군의 둘째 아들이지만 그의 친어머니인 하희는 안국군의 총애를 받지 못했다. 안국군이 총애하던 부인은 화양부인이지만 그녀에게는 아들이 없었다.
이런 상황을 자세히 알고 있었던 여불위가 자초를 보자 기발한 생각이 떠 올랐다.
어느날 자초를 만난 여불위는 자초에게 "나는 당신의 가문을 크게 만들어 줄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자초는 웃으면서 "먼저 당신 가문을 크게 만든 뒤에 내 가문을 크게 만들어 주시오."라고 말했다. 그러자 여불위는 "제 가문은 당신 가문을 크게 만든 뒤에 커질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 말을 알아들은 자초는 여불위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그러자 여불위는 이렇게 말했다. "진나라 왕은 늙었고 안국군이 태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화양 부인을 총애하지만 그에게는 아들이 없습니다. 왕의 후사를 세울 수 있는 사람은 화양 부인이고 당신은 형제가 스무명이나 있습니다. 당신은 둘째 서열인데다가 왕의 사랑도 받지 못하고 조나라에 볼모로 와 있습니다. 그러니 왕이 세상을 떠나고 안국군이 왕위에 오르면 당신은 태자 자리를 놓고 형제들과 경쟁할 수도 없습니다." 자초가 물었다. "내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여불위가 말하기를 "내가 천금을 가지고 진나라로 가서 화양 부인을 만나 당신을 태자로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자초는 머리를 숙이면서 여불위에게 말했다. "그렇게만 된다면 당신과 진나라를 나누어 가지겠습니다." 여불위는 자초에게 500금을 주고 빈객들과 사귀도록 하고 자신도 500금으로 귀한 선물들을 사서 화양 부인의 언니를 만나서 선물을 즌했다. 당시 화양 부인에게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이 화양 부인의 언니였기 때문이다. 여불위는 화양 부인에게 이렇게 말했다. "자초는 어질고 지혜로우며 천하 제후들의 빈객들과 두루 사귀고 있습니다. 나는 화양 부인을 하늘처럼 여기며 밤낮으로 태자와 부인을 사모하여 눈물을 흘립니다."라고 말했다. 화양 부인은 매우 기뻐했다. 여불위는 이어서 말하기를 "화양부인은 지금은 젊고 예뻐서 태자의 사랑을 받고 있지만 늙으면 그 사랑을 계속 받을 수 없을 것이고 아들이 없으니 노후에는 어려워질 것입니다. 그러니 자초를 아들로 삼아두면 그가 부인에게 효도할 것이고 태자에게 잘 말해서 그가 왕위를 잇는다면 태자비께서는 평생을 편안히 지낼 수 있으루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화양 부인은 기회를 봐서 어느날 안국군에게 자기의 아들이 없음과 조나라에 있는 자초의 현명함을 말하면서 그를 아들로 삼게 해달라고 말했다. 안국군은 허락했고 이 사실이 주위에 알려지자 자초는 점점 더 영향력을 키울 수 있었다.
여불위의 첩들 가운데 그가 총애하는 춤 잘 추고 외모가 아주 빼어난 여자가 있었다. 이 여자가 여불위의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다. 자초가 이 여자에게 한 눈에 반해서 인신한 사실을 모르고 여불위에게 이 여자를 달라고 했다. 여불위는 괘씸했지만 지금까지 자기가 투자한 것을 생각해서 자초에게 주었다. 자초와 결혼하고 때가 되어 아이를 낳았다. 이 아이가 정이고 후에 진시황이 된다. 진나라 소왕 50년에 조나라를 침공했다. 조나라는 자초와 그 가족을 죽이려고 했지만 여불위가 미리 손을 써서 죽지 않고 진나라로 도망갔다. 진나라 소왕이 죽고 안국군이 왕위에 올랏다. 화양부인은 왕후가 되었고 자초는 태자가 되었다. 진나라 왕이 된 안국군이 즉위한지 1년만에 죽자 태자 자초가 왕이 되었다. 그가 장양왕이다. 장양왕은 양어머니 화양부인을 화양태후라 하고 친어머니 하희를 하태후라 불렀다.
장양왕 원년에 여불위를 승상으로 삼고 문신후에 봉하였으며 하남 낙양의 10만호를 식읍으로 주었다. 장양왕이 즉위한지 3년만에 죽고 정이 드디어 왕위에 올랐다. 정은 여불위를 상국으로 삼고 중부라 불렀다. 아직 정은 어렸기 때문에 태후가 섭정을 하면서 여불위와 사사로이 정을 통했다.
이 무렵 위나라에는 신릉군, 초나라에는 춘신군, 조나라에는 평원군, 제나라에는 맹상군이 있었다. 이들은 많은 빈객들을 두고 있었다. 그래서 여불위도 빈객들을 많이 모았다. 3,000명이나 되는 빈객들을 모아서 그들의 학식을 이용해 여씨춘추를 지었다. 진시황이 차츰 나이가 들어가는데도 태후의 음란한 행동은 계속되자 여불위는 감당이 안 되어 음경이 큰 노애라는 남자를 태후에게 소개했다. 그는 음경에 오동나무 수레바퀴를 달아서 끌 수 있었다. 태후는 이 남자를 환관이라고 속여서 곁에 두고 음행을 계속했다. 결국 둘 사이에 아이가 둘이나 태어났다. 노애의 세력이 점점 커지자 그는 자기 아들을 왕위에 올리려고 했다. 진시황 9년에 어떤 사람이 노애가 환관이 아니고 그 어머니와 정을 통한 사실을 고발했다. 사실을 알게 된 진시황은 노애의 삼족을 멸하고 태후는 옹땅으로 내쫓았다. 여불위도 노애를 소개한 일로 이 일과 연관된 것을 알게 되었다. 여불위도 죽이려고 했지만 그동안의 공과 상국인 점을 감안해서 죽이지는 않고 제후국인 하남으로 보냈다. 그러자 제후국의 빈객들과 사신들이 여불위에게 줄을 서서 찾아갔다. 이 사실을 알고 진시황이 압박을 해오자 여불위는 두려움을 느끼고 독주를 마시고 스스로 죽었다.
여불위는 자초를 찾아서 투자를 잘 했기 때문에 큰 이익과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태후와의 사통이 빌미가 되어 노애를 잘못 추천하여서 자기의 몰락을 불러왔다. 자초를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서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었지만 정욕에 빠지다 보니 넘보지 말아야 할 여인과 사통하게 되었고 결국 감당이 안 되어 노애라는 인물을 잘못 추천해서 자기의 인생을 망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