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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개 논제] 원제: 사면증의 효력에 관한 논제

singingman 2024. 10. 31.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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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유명한, 그러나 가장 안 알려진 종교개혁 문서(1517.10.31).

[95개 논제] 원제: 사면증의 효력에 관한 논제

<진리에 대한 사랑과 열정, 그리고 이를 밝히려는 열망으로,
비텐베르크의 문학사이며 신학을 가르치기 위해 임명받은 교수 마르틴 루터가 이하의 논제들을 공개적으로 논의할 것이다. 직접 참여할 수 없는 사람들은 서신으로 토론하길 요청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아멘>

1. 우리의 주요, 선생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회개하라…….”(마4:17) 명령하셨을 때, 그 뜻은 신자의 모든 삶이 돌아서는 것이다.

2. 이 말씀은 사제가 집례 하는 고해성사, 즉 죄의 고백과 보속으로 이해될 수 없다.

3. 또한 이 말씀은 마음을 돌려세우는 내적 참회만 뜻하는 것도 아니다. 절대 그런 뜻이 아니다. 마음의 회개가 육의 정욕을 제어하는 방식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면, 그 회개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4. 사람이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미워하는 한, 죄에 대한 징벌은 계속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진실한 마음의 회개이다. 우리가 하늘나라에 가기까지 이 회개는 계속되어야 한다.

5. 교황은 자신의 판결 혹은 교회법의 판결에 따라 부과한 형벌 외에 어떤 죄도 사면할 권세나 의지를 갖지 못한다.

6. 교황의 사면권은 제한적이다. 그 때문에 하나님께서 죄를 용서했다는 것을 선언하거나 인정하는 것 외에는 어떤 것도 허용되지 않는다. 또한 이 사면의 권리를 무시하는 사람의 죄도 그대로 남는다.

7. 하나님의 대리자로 세워진 사제에게 하나님 대하듯 순종하지 않고, 그를 멸시하는 자가 있다면, 하나님은 그 죄도 용서치 않는다.

8. 참회의 규정은 오직 산 자에게만 적용되며, 죽은 자에겐 적용될 수 없다.

9. 그러므로 성령은, 교황이 가진 권세가 죽음이나 어떤 곤궁한 사례에선 그의 힘이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통해 우리에게 선하게 역사하신다.  

10. 참으로 무지하고 어리석은 짓은, 죽어 연옥에 있는 자들에게 교회법이 정한 형벌을 적용하는 사제들의 행동이다.

11. 교회법을 위반하여 생긴 죄벌을, 연옥의 형벌로 바꿔치기 하는 가라지는 확실히 주교들이 잠자는 동안 심겨진 것이다(마13:25).

12. 예로부터 참회에 부과되는 보속은 사제의 사죄선언 후가 아니라 이전 단계였다.

13. 임종하는 사람은 그의 죽음으로써 이 세상의 모든 것에서 풀려나게 된다. 그는 교회법에 대해서도 죽은 것이므로 교회법이 부과한 징계에서도 완전히 풀려난다.

14. 영적인 강건함과 온전한 사랑을 이루지 못한 채 죽어가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공포를 초래할 것이다. 온전함을 채우지 못한 만큼 그에 따른 공포도 커진다.

15. 다른 것은 말하지 않더라도, 연옥의 고통은 이 두려움과 공포만으로도 가득 채울 수 있다.  그리고 이 두려움과 공포는 절망과 맞닿아 있다.  

16. 지옥, 연옥, 하늘은 각각 다르게 나타난다. 지옥은 절망이고, 연옥은 절망에 이르는 길이며, 하늘은 거기서 확실히 건져진 상태이다.

17. 연옥에 있는 영들은 공포가 감소하고 사랑이 증가되어야 마땅하다.

18. 연옥에 있는 영들은 결코 공로를 얻을 수 없으며, 사랑도 성장할 수 없다는 말은 그 어떤 이성의 근거와 성서로도 증명할 수 없는 주장으로 보인다.

19. 비록 우리가 모두 각자의 구원을 확신하고 있다 한들, 연옥의 영혼들이 자기 구원에 대해 최소한의 것이라도 확신하고 있는지 증명할 길은 없어 보인다.

20. 그러므로 교황이 ‘모든 죄를 완전히 사면한다.’고 선언할 때, 그것은 말 그대로 모든 죄를 사면한다는 뜻이 아니라 단지 교회가 부과한 징계에 한하여 사면한다는 뜻일 뿐이다.

21. 그 때문에, 교황의 사면증이 모든 죄의 형벌을 풀고, 죄인을 구원할 수 있다고 선전하는 면죄부 설교자들의 말은 모두 엉터리다.

22. 사실상 교황은 연옥의 영들의 어떤 형벌도 사면할 수 없다. 교회법을 위반한 형벌은 살아있는 동안 치렀어야 할 일이다.  

23. 만일 모든 죄벌(罪罰)에 대한 완전한 사면이 누군가에게 허락된다면, 이는 가장 완전한 사람에게만, 즉 매우 극소수의 사람에게만 해당될 것이다.

24. 그러므로 수많은 사람들이 죄의 모든 형벌에서 해방된다는 무제한적이고 허울 좋은 약속에 속고 있는 것이다.

25. 모든 주교와 사제도 자신에게 맡겨진 관구와 교구에서 연옥에 대한 교황의 권세를 동일하게 행사할 수 있다.

26. 교황이 연옥에 있는 영들의 형벌을 사면하기 위해 열쇠의 권위 대신 중보기도를 사용한다면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사실 교황의 권세는 연옥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27. 연보궤 안에 던진 돈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나면 연옥에 있던 영혼이 빠져나온다고 말하는 것은 ‘인간이 만든 교설’을 외치는 것이다.

28. 연보궤 안에 던진 돈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날 때, 이득과 탐욕은 증가한다.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에 반해, 교회의 중보기도는 하나님의 선한 뜻을 따르는 것이다.

29. 성 세베리누스(St. Severinus)과 파샤시우스(St. Paschasius)에 관한 전승이 알려주듯, 연옥에 있는 모든 영이 거기서 구원 받기를 원하는지 아닌지, 그 누가 알겠는가!

30. 자기가 행한 회개의 진실성을 확신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물며 완전한 사면을 받았다고 어떻게 확증할 수 있겠는가!

31. 진실한 마음으로 참회하는 자가 드물 듯, 순전한 마음으로 면죄부를 사는 사람도 드물다. 분명히 드물다.

32. 누구든지 면죄부를 받고 구원받았다고 확신하는 사람은 그렇게 가르치는 저들의 선생과 함께 영원히 저주 받을지어다!

33. 교황의 사면증을 가리켜 하나님과 인간을 화해케 하는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선물이라고 말하는 자들을 특별히 경계해야 한다.

34. 왜냐하면 이것이 전해주는 은혜는 단지 인간이 정한 형벌, 즉 성례전적인 ‘보속’을 요구하는 형벌에만 적용되기 때문이다.

35. 참으로 비기독교적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돈을 주고 연옥의 영혼을 구해 낼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것과 특별증서(confessionalia)를 구입하면 더 이상 참회할 필요가 없다고 설교하는 것이다.  

36. 참으로 회개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교황의 사면증이 없어도 죄와 형벌로부터 완전한 사면을 누린다.

37.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사나 죽으나 가릴 것 없이 그리스도와 교회가 소유한 모든 유익을 함께 누린다. 하나님께선 이 모든 것을 사면증과 상관없이 주셨다.

38. 그러나 교황의 공적인 사면 선언과 징계에 대한 관여를 결코 무시하면 안 된다. 왜냐하면 이미 말한 대로, 그것은 대리자로서 하나님의 사면을 선언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39. 사면증의 유익과 참된 회개의 필요성을 동시에 한 자리에서 가르치는 것은 학식 있는 신학자에게 불가능한 일이다.  

40. 참으로 회개하는 죄인은 죄에 따른 형벌을 달게 받는다. 반면에 수많은 사면증들은 형벌에 대해 둔감하게 만들고, 형벌을 멀리하게 만들며, 적어도 이런 일에 대한 빌미를 제공한다.

41. 사도적 사면권을 설교할 때, 그것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행하는 선행보다 나은 것처럼 오해하지 않도록 신중히 가르쳐야 한다.

42. 그리스도인들에게 이것을 분명히 가르쳐야 한다. 선한 사랑의 실천을 사면증 구입과 비교하는 일은 얼토당토않은 일이며, 이것은 교황의 의도와 상관없다.  

43. 그리스도인들에게 이것을 분명히 가르쳐야 한다.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고 궁핍한 사람에게 꾸어주는 것은 사면증을 구입하는 것과 비할 바 없이 선한 일이다.

44. 왜냐하면 선행을 통해 사랑은 성장하고, 그 일을 통해 인간은 더욱 선한 사람이 되어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면증으로는 선하게 될 수 없고, 오직 형벌에서 벗어날 뿐이다.

45. 그리스도인들에게 이것을 분명히 가르쳐야 한다. 궁핍한 자를 지나치면서 사면증을 구입하는 사람은, 교황의 사면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를 사들이는 것이다.

46. 그리스도인들에게 이것을 분명히 가르쳐야 한다. 재산이 풍족한 사람이 아니라면, 가족을 위해 필요한 것을 저축할 의무가 있고, 사면증 구입에 낭비하면 안 된다.

47. 그리스도인들에게 이것을 분명히 가르쳐야 한다. 사면증 구입 여부는 선택사항이지 강제할 일이 아니다.

48. 그리스도인들에게 이것을 분명히 가르쳐야 한다. 교황이 사면증을 발행하면서 진실로 원하는 것은 사람들이 가져오는 돈이 아니라 더욱 경건한 기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49. 그리스도인들에게 이것을 분명히 가르쳐야 한다. 교황의 사면증은 사람들이 그것에 신뢰를 두지 않을 때만 유용하다. 사면증에 매달려 하나님을 향한 두려움이 없어질 정도라면 그것은 매우 해로운 것이다.

50. 그리스도인들에게 이것을 분명히 가르쳐야 한다. 만일 교황이 면죄부 설교자들의 갈취(喝取) 행위들을 안다면, 그는 자기 양의 가죽과 살과 뼈로 베드로 성당을 올려 세우기보다 차라리 불태워 잿더미가 되는 것을 바랄 것이다.

51. 그리스도인들에게 이것을 분명히 가르쳐야 한다. 만일 교황이 면죄부 설교자들이 갈취한 돈에 대해서 안다면, 당연히 베드로 성전을 팔든지 아니면 교황이 자신의 재산을 청산해서라도 면죄부를 구입한 사람들의 돈을 반환해 줄 것이다.

52. 교황이 발행한 사면증에 의지해서 구원을 받으려는 것은 한낱 부질없는 짓이다. 판매 위탁자나, 아니, 교황이 그 증서에 대해 자기 영혼을 걸고 보증한다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53. 하나님의 말씀 대신 사면증으로 죄를 용서받으라는 선전을 하도록 교회마다 명령하는 사람들이야말로 그리스도와 교황의 원수다.

54. 사면증에 대한 말을 하나님 말씀의 분량과 같거나 더 할애하는 것은 설교시간을 부당하게 사용하는 것이다.

55. 교황의 견해는 틀림없이 아래와 같을 것이다. 교황이 발행한 사면증(indulgentia)은 매우 작은 일이어서 행진하는데 종 하나만 필요하고 한 번의 예배로 충분한 반면, 복음은 백 개의 종을 울리며 백 번 행진하고 백 번 예배해야 할 만큼 매우 중요하다.

56. 교황이 발행하는 사면증은 ‘교회의 보화’라는 교설을 근거로 한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 교회 안에서 충분히 논의된 적도, 알려진 적도 없다.  

57. 실제로 그것을 교회의 보화라고 말할 수조차 없다. 왜냐하면 수많은 설교자들이 거저 내어주기보다 그저 거둬 들이기만하기 때문이다.

58. 그 보화는 그리스도와 성인들의 공로로 이뤄진 것이 아니다. 진실로 교회의 보화란 교황의 도움 없이도 속사람에겐 은혜를, 겉사람에겐 십자가와 죽음과 지옥을 가져다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59. 성 라우렌티우스는 ‘가난한 사람들이야말로 교회의 진정한 보화’라고 말했다. 여기서 그는 그때 그 자리의 의미를 살려 그렇게 말한 것이다.  

60. 그리스도의 공로를 통해 교회가 얻게 된 열쇠의 권능은 이런 종류의 보화라고 할 수 있다.

61. 왜냐하면, 죄벌에 대한 사면과 소송의 해결은 교황의 권세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62. 교회의 참된 보화는 하나님의 영광과 은총을 다루는 가장 거룩한 ‘복음’이다.

63. 그러나 이 보화가 가장 멸시 받는 것은 당연하다. 복음은 먼저 된 자를 나중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64. 반면에 사면의 보화가 지극히 환영받는 것은 당연하다. 그것은 나중 된 자를 먼저 된 자로 만들기 때문이다.

65. 그러므로 복음의 보화는 그물과 같아서, 예로부터 그 그물로 사람들을 풍성히 건져 올렸다.

66. 이에 비해 사면의 보화는 그물과 같아서, 지금 그 그물로 돈을 풍성히 낚아 올린다.

67. 면죄부 설교자들이 ‘큰 은총’이라고 외쳐대는 사면증이 재물 축적의 수단으로 이용되는 한 실제로 그렇게 이해될 수밖에 없다.

68. 그러나 하나님의 은총과 십자가의 자비에 견주어본다면, 그것은 참으로 티끌보다 못한 것이다.

69. 주교와 교구 사제들은 사도 계승의 권위를 부여받은 대사(大赦, indulgentia) 대리인들을 온갖 경의를 다해 영접할 직무상 의무가 있다.

70. 그러나 그보다 더 큰 의무는 저들이 위임받은 사항 대신 자기들의 희망사항을 선전하지 않는지 눈과 귀를 열어 감시하는 것이다.

71. 사도적 진리인 사면권을 반대하며 말하는 자는 파문 받고 저주 받을지어다!
  
72. 그러나 면죄부 설교자의 뻔뻔함과 오만한 말을 경계하고 반대하는 자에겐 복 있을지어다!

73. 사면증 판매를 방해하며 손쓰는 자에게 교황의 파문 결정이 내려지는 것은 옳다.

74. 그러나 그보다 더 옳은 일은, 사면증을 구실 삼아 거룩한 사랑과 진리를 가리며 방해하는 자를 교황이 파문하고 출교시키는 일이다.

75. 불가능한 말이지만, 교황의 사면증엔 대단한 능력이 있어서 하나님의 어머니를 능욕하더라도 그 죄를 용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정신 나간 짓이다.

76. 우리가 주장하는 것은 정반대다. 교황의 사면증은 제아무리 작은 죄라 할지라도 그 죄를 지울 수 없다.

77. ‘지금 베드로가 교황으로 온다하더라도 면죄부보다 더 큰 은총을 줄 수 없다’고 선전하는데, 그것이야말로 베드로와 교황에 대한 모독이다.

78. 우리는 그런 말에 경멸한다. 현재 교황과 모든 교황들은 그보다 더 큰 은총, 즉 고린도전서 12장에 선포된 것처럼, 복음과 여러 능력 그리고 치유의 은사를 가지고 있다고 우리는 주장한다.

79. 교황의 팔에 장식으로 새겨진 십자가 무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똑같은 효력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신성모독이다.

80. 이 같은 교설이 군중들에게 버젓이 설교되는 것을 묵인하는 주교와 교구 사제, 그리고 신학자들은 이에 대한 마땅한 책임을 져야한다.

81. 이런 뻔뻔스런 면죄부 설교 때문에 일반 신자들조차 교황을 모독하고 신랄한 질문을 던진다. 이런 상황에 제 아무리 박식한 사람이라 해도 교황의 명예를 지켜주기란 쉽지 않다.

82. 예를 들어 사람들은 이렇게 묻는다. 가장 거룩한 사랑을 베푼다는 교황이 왜 연옥을 비우지 않는가? 이는 영혼의 가장 궁극적인 요청이고 신자들의 가장 정당한 요구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교황은 지금 대성당 건축이라는 매우 하찮은 이유로 수많은 영혼을 돈으로 팔아넘기고 있다.

83. 또 이렇게 묻는다. 연옥에서 죗값을 치른 자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온당치 않은 일인데, 무슨 이유로 죽은 자를 위해 매번 돈을 받고 위령미사와 기도를 대신 드려주는 것인가? 그것이 불의한 일인 줄 알면서도, 그런 목적의 헌금을 되돌려주거나 그 관습을 없애지 않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84. 또 이렇게 묻는다. 돈만 지불하면 불경건한 자와 하나님의 원수 된 영혼도 하나님의 친구요 경건한 영혼이 되도록 구해내면서, 참으로 경건하고 사랑스런 영혼들은 구해내지 않는다. 이들의 절실한 간청을 알고도 동일한 사랑으로 구해내지 않는다면, 이 어찌 해괴한 하나님과 교황의 자비란 말인가?

85. 또 이렇게 묻는다. 참회에 관한 교회법은 이미 오래전에 폐기되고 없어졌는데, 어찌하여 그 효력이 살아 있는 것처럼 사면증을 판매하는가?

86. 또 이렇게 묻는다. 오늘날 교황은 부자 중에서도 가장 부유한 부자인데, 왜 베드로 성당을 자기 돈이 아닌 가난한 신자들의 돈으로 건축하는가?

87. 또 이렇게 묻는다. 완전한 통회로 완전한 사면을 받고 영적 보화에 참여할 권리를 얻은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교황은 이 사람들에게 면죄부를 주면서 도대체 무엇을 사면하고, 또 어떤 보화를 주겠다는 것인가?

88. 또 이렇게 묻는다. 지금 교황은 하루에 딱 한 번만 죄를 용서하고 보화를 나누어주는데, 하루에 백번 용서하고 백번 나누어준다면 교회는 얼마나 더 큰 복을 얻겠는가?

89. 또 이렇게 묻는다. 교황의 사면증은 돈이 아니라 사죄를 통한 영혼 구원에 목적이 있다고 하면서, 왜 예로부터 발행된 사면증서들과 사면 선언들의 효력을 모조리 정지시키는가? 예전 사면과 지금 사면은 효력이 다르단 말인가?

90. 일반 신자들이 던지는 예리하고 불편한 질문들을 정당한 이유 없이 권력으로 누르고 입막음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교황의 반대자들에겐 비웃음거리를, 그리스도인들에겐 불행한 일이 될 것이다.  

91. 그러므로 교황의 바른 정신과 뜻에 따라 사면이 선포되었다면, 이 같은 질문들은 쉽게 해결되었을 것이다. 아니, ‘사면증’이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92. 평안이 없는 곳에서 그리스도의 백성에게 “평안하다, 평안하다” 외치는 모든 선지자들이여, 물러갈지어다!

93. 십자가 없는 곳에서 그리스도의 백성에게 “십자가, 십자가” 외치는 모든 선지자들이여, 복 있을지어다!

94. 머리 되신 그리스도를 본받아 고난과 죽음과 지옥까지 통과하는 자가 그리스도인이다.  

95.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라면, 안전하게 보장된 평화보다는 수많은 시련을 통해 하늘에 들어간다는 것을 더욱 굳건히 신뢰해야한다.

*번역 출처: 최주훈, <마르틴 루터 95개 논제> (감은사,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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