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위한 교육>
마르틴 루터는 다재다능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종교개혁의 중심에 서 있었고, 가족 모임에서 류트를 연주했으며, 찬송가를 작사 작곡했고, 목공 기술도 능숙했으며, 체스도 두었고, 라틴 시인들을 너무 좋아해서 수도원에 들어갈 때 플라우투스(기원전 245~184년경)와 버질(기원전 70~19년)의 작품을 가지고 들어갔을 정도입니다. 그에게 “언어는 성령의 검을 담는 칼집[엡 6:17].”입니다.[각주]
그가 독일어로 번역한 성경은 현대 독일어 발전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현대 독일어의 기원은 상당 부분 루터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럼에도, 목사에게 독일어 능력만 요구되는 게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성경을 설교하고 주해하려면 라틴어, 그리스어, 히브리어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모국어인 독일어만 사용하는 사람은 실수를 저지르기 쉽다”고 경고합니다.[각주]
따라서 그는 목사를 양성하는 신학교육에 고전어 습득을 포함한 양질의 교육이 필요하다고 설명합니다. 이는 여전히 오늘날 독일에서 목사가 되려는 이에게 필수 조건입니다. 루터는 이런 실력 배양을 위해 대학개혁이 필수적이라고 설명합니다. 왜냐하면 당시 대학에서 가르치는 많은 과목이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1. 복음에 기반한 교육 개혁
1520년 『독일 기독교 귀족에게 고함』이라는 글에서 루터는 물리학, 형이상학(즉, 신학), 윤리학 등 아리스토텔레스의 많은 저술은 대학에서 가르쳐서는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별로 쓸모가 없고, 복음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논리학, 수사학, 시에 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술은 물론, 키케로(기원전 106-43)의 수사학도 읽을 가치가 있다고 말합니다.
주된 강조점은 성경을 읽고 해석할 수 있기 위함입니다. 이를 위해 히브리어와 헬라어 라틴어 같은 고전어 능력이 요구되었던 것이지요. 교황령을 포함한 교회법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여겼습니다. 페트루스 롬바르두스(1096-1164년경)의 신학 해설서와 유명 신학자들의 인용문 모음집 같은 것들은 신학 박사 과정에서나 다루라고 제안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에 대한 이해입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학교 교육이 필수적이었습니다.[각주]
루터는 이렇게 말합니다. “대학과 학교에서 모든 사람이 가장 먼저 읽어야 할 것은 성경이다. 남녀노소 구분 없이 교육받을 기회가 제공되어야 한다. 특히 여성도 복음을 배워야 한다. 이를 위해 모든 마을에 여자 학교가 세워지길 바란다. 그곳에서 여자 아이들이 매일 한 시간씩 독일어나 라틴어로 복음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학교는 정말 필요하다!”[각주] 이러한 루터의 교육 개혁 주장은 당시 상황에서 매우 혁신적이었습니다. 중세 유럽의 문맹률이 90~95%에 달했고, 시골 지역은 더욱 심각했기 때문입니다. 루터가 주장한 ‘만인 제사장직’(모든 신자는 성직자다)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교육이 필수적이었고, 이는 종교개혁의 성공을 위한 핵심 요소였습니다. 따라서 루터에게 교육의 문제는 어떠한 타협의 여지도 없었습니다.
16세기 초 독일의 교육 현실은 매우 열악했습니다. 1527-28년 교회 시찰단이 작센 지역 교회를 방문하면서 드러났듯이, 일반 신도들은 물론이고 목사들조차 교육 수준이 매우 낮았습니다. 특히 젊은이들을 비롯한 일반 신자들은 기독교의 기본적인 가르침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고, 목사들은 복음의 자유를 핑계 삼아 나태하고 태만하게 사는 이들 투성이였습니다. 이러한 현실을 개선하려고 루터는 1529년에 다양한 교육 자료를 계발하게 됩니다.
비텐베르크 찬송가)를 비롯하여 기도서, 소교리문답과 대교리문답이 좋은 사례입니다. 이 자료들은 단지 딱딱한 신학자들의 교재가 아닌, 기독교 신앙을 종합적으로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기획되었습니다. 기도서는 단순한 기도문 모음이 아니라 기독교 신앙을 소개하기 위한 것이었고, 찬송가도 예배에 필요한 찬송가만 작사 작곡하여 모아놓은 게 아니라 기독교인이 일상에서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어떤 것인지 보여주는 종합적인 책입니다. 대, 소교리문답도 일방적인 질문과 답변을 제공하는 딱딱한 교리서가 아닙니다. 이 책들은 기독교인이 스스로 하나님의 뜻을 묵상하며 실천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지침서입니다.
특히 루터는 사람들이 글보다는 그림을, 일반 텍스트보다는 노래를 더 쉽게 기억한다는 점을 고려하여 다양한 교육 방법을 활용하는데, 독일어 번역성경과 다른 출판물들에 다양한 삽화를 그려 넣어 일반 신자들이 그 내용을 쉽게 접근하고 이해하도록 배려합니다.
그렇다고 루터가 교회 개혁에만 관심을 둔 건 아닙니다. 물론 그는 시대의 아들이기에 전통적인 신분제 사회 틀은 인정합니다. 그럼에도 교육의 기회는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주어져야 한다고 주장한 점은 높이 평가받아야 합니다. 그는 귀족, 시민, 농민 같은 기존 신분 질서를 깨뜨립니다. 신분의 구별 없이 모두가 교육받아야 하며, 양질의 교육을 받은 사람은 누구라도 사회에서 더 높은 지위에 오를 수 있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이를 위해 가난한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 제도를 주장하고, 1524년 출간한 책의 제목대로 ‘시 의회와 영주들에게 학교 설립을 적극적으로 권장'[각주]하고 압박했습니다. ‘교육의 기회는 누구에게나 평등해야 한다’라는 루터의 주장은 중세인들에게 매우 낯선 도전이었습니다. 교육에 대한 루터의 철학은 매우 실용적이고도 이상적이었습니다. 그는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자신의 재능을 발전시켜야 하며, 그 재능을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고 굳게 믿은 인물입니다. 그에게 교육의 목적은 단순히 개인의 사회적 성공이 아닌, 이웃을 위한 섬김과 봉사입니다.
직업에 대한 이해도 특별합니다. 모든 직업의 가치는 동등하며, 어떤 직업이라도 삶의 성취를 이룰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사회적인 지위를 얻는 데 성공하지 못한다고 해서 불이익을 받는 건 아닙니다. 루터에 따르면,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자녀이며, 창조주로부터 받은 지적, 육체적 재능을 발전시켜야 합니다. 그런 다음, 이 재능을 다른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곳에 사용해야 합니다. 즉, 루터에게 직업은 하나님의 거룩한 소명(Beruf), 즉 성직입니다. 물론 모든 직업이 다 성직은 아닙니다. 세속 직업이 성직이 될 수 있는 필요충분조건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자신의 직업으로 이웃에게 선한 유익을 도모하는 데 있습니다.
루터는 교육이 개인의 능력과 적성에 맞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부모들은 자녀의 재능을 먼저 살펴보고 교육 방향을 결정해야 하며, 부모가 자식을 통해 대리만족하려고 진로를 강요하는 일은 오히려 자녀와 교사 모두에게 부담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기술직 장인도 라틴어를 배우는 걸 장려했는데, 이는 그 지식을 직접 활용하지 않더라도 개인의 성장에 도움이 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각주] 루터의 교육과 직업관에서 중요한 지점은 그리스도인이라면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항상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대목입니다.
1530년 7월, 루터는 아이들의 교육에 관한 자신의 설교를 책으로 발전시켰습니다.[각주] 이 책(Eine Predigt, dass man Kinder zur Schule halten soll)은 뉘른베르크 시 행정관 라자루스 슈펭글러에게 보내졌는데, 서문에서 루터는 당시 교육 현장의 심각한 문제점들을 지적합니다. 그가 가장 우려한 것은 뉘른베르크처럼 발전된 도시에서조차 부모들이 자녀 교육보다는 돈벌이를 우선시한다는 점입니다. 많은 부모가 자녀들에게 기초적인 셈과 독일어 읽기만 가르치고는 자녀 교육이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태도가 결국 하나님의 말씀과 교육 전반을 경시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걱정합니다. 그는 당시 교육이 그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고 여겼습니다.
루터에 따르면, 그리스도인은 교회와 세속 정부라는 두 영역 모두에 걸쳐 있습니다. 그곳에서 일하려면 한 개인이라도 각자의 자리에서 설교자로서, 다스리는 통치자로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재판관으로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해야 합니다. 그것이 영적이고도 세속적인 통치 아래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자세입니다. 이를 위해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모국어 외에도 여러 언어와 폭넓은 지식이 필요합니다. 더구나 오늘 이 시대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소통해야 하는 일이 점점 많아집니다.[각주]
그래서 그리스도인에게는 양질의 교육이 꼭 필요합니다. 루터는 국제도시였던 뉘른베르크에서 라틴어에 능통하고 폭넓은 교육을 받은 인재들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도시가 공적차원에서 ‘많은 비용과 노력을 들여서라도’ 훌륭한 교수를 영입하여 학교를 세워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와 더불어, 부모들은 이러한 교육 시스템을 결코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된다고 설명합니다.
*한스 슈바르츠, <모두를 위한 루터: 흔적, 시간을 건너온 메아리>, 최주훈 역 작업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