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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 Article

어떻게 찬양할까?

singingman 2022. 10. 27.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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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완전한 인간이 완전하고 절대적인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란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인간들을 통해서도 찬양받기를 기뻐하시는 분이라는 것도 확실하다.

 

성경의 흐름을 보면 구약이나 신약 공히 하나님은 우리의 찬양받기를 기뻐하신다.

문제는 어떻게 찬양하느냐가 중요하다.

신구약의 흐름을 살펴보고자 한다.

구약시대 성전의 찬양은 말할 것도 없이 전문가 집단의 찬양이었다.

그래서 그들의 찬양은 전문적으로 훈련된 집단이 자기의 모든 시간을 다 바쳐서 하는 찬양이었다.

 

찬양을 위해서 다른 일은 하지도 않은 사람들도 있다.(대상 9:33)

또 다른 선택된 집단의 사람들은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일주일간 성전에 와서 아침 저녁으로 하나님을 찬양했다 .(대상 9:25, 23:30)

 

이들은 평소에도 찬양 준비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일로 여기고 훈련받는 사람들이었다.

대상 25장에보면 288명의 레위인들이 있는데 이들은 성전에서 찬양하기 위해 특별히 준비된 사람들이고 생업이 찬양하는 일이었다고 보인다.

 

대상 251절에 나오는 아삽과 헤만과 여두둔이 아마도 이들을 훈련시키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라고 학자들은 추측한다.

그러니까 이 288명의 사람들과 3명의 족장들은 오로지 찬양을 위해서 준비된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에 의해서 불려진 찬양은 너무도 훌륭한 찬양이어서 성전에서 섬기는 제사장들이 자기의 일을 감당하기도 어려울만큼 훌륭하고 감동적이었다.(대하5:14)

 

어떻게 하면 이런 찬양이 가능할까?

답은 성경에 나와 있다. 준비된 전문인력들이 충분히 연습해서 정해진 규칙에 따라 찬양했기 때문이다.

 

신약에서는 찬양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있을까?

신약성경이 쓰여지던 시대에는 제대로 된 성전제사가 없었기 때문에 구약처럼 체계적이고 전문적으로 훈련받은 레위인들이 없었다.

하지만 성경의 여러 기록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찬양받기를 기뻐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에베소서 1장의 기록에 의하면 구약보다 신약의 기록이 찬양의 중요성을 더 깊이 강조하고 있다.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하신 이유가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한다.(1:6)

그 뿐만이 아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기업으로 삼으신 이유도 우리를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한다.(1:12).

또 우리로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은 이유도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하심이라(1:14)고 말하고 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이유는 이제 명백하다.

문제는 어떻게 찬양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이것은 우리 현실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일괄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보편적인 기준은 있어야 할 것 같다.

찬양은 문화에 따라 너무나도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신정시대에 살았던 유대인들은 오직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찬양했다.

하지만 바쁜 현대를 사는 사람들은 성경의 가르침을 따른다고 하지만 방법에 있어서 다양한 견해들을 가지고 있다.

 

찬양의 핵심을 이해하지 못하면 잘못된 방법이나 생각 때문에 하나님께서 받으실 수 없는 찬양을 할 수도 있다.

오늘날 찬양대를 중심으로 어떻게 찬양해야 할지를 생각해보고자 한다.

 

찬양대의 찬양은 음악예술의 한 형태이고 그것도 합창중심의 음악이다.

그래서 합창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합창은 한 사람의 뛰어난 연주자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아주 뛰어나지 않아도 협력하고 함께 노력하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경우에 따라서는 내 소리를 줄이고 남의 소리를 들어야 하며 강한 소리를 낼 능력이 있지만 부드러운 소리를 내기도 해야 한다.

그래야 모든 찬양대원들이 목표로 하는 음악을 만들 수가 있다.

 

다음으로는 좋은 찬양대에 대한 같은 가치관을 가지는 것이다.

뛰어난 음악성을 가장 큰 가치로 가진 찬양대는 아주 훌륭한 음악을 만들기 위해서 많은 음악적인 노력을 할 것이고 신앙성장을 가장 큰 가치로 여기는 찬양대는 신앙성장을 위한 프로그램을 많이 가질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좋은 신앙을 가진 전문적인 연주자를 많이 보유한 찬양대가 당연히 찬양을 잘 할 것이다. 좋은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도 전문적인 음악훈련이 되어있지 않으면

음악적으로 훌륭한 찬양은 할 수 없다.

반대로 전문적으로 훈련받은 음악가가 많아도 좋은 신앙을 갖지 않으면 좋은 합창단은

될 수 있어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좋은 찬양대는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 찬양대는 신앙의 성장과 함께 음악적인 능력의 성장도 요구한다.

 

대부분의 찬양대원들은 전문적인 음악훈련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연습시간에 지휘자로부터 음악적인 훈련을 받는다.

하지만 기초적인 독보력이나 발성법등에 관한 지식이 없는 대원들이 일주일에 한두 시간의 연습으로 갑자기 좋아질 수는 없다.

꾸준한 연습과 노력에 의해서 시간이 흐르면 좋아질 수 있다.

성실한 연습과 더 좋은 찬양을 향한 비젼이 없다면 진보하는 일은 아주 어렵다.

많은 찬양대들이 현상유지도 급급한 경우가 많다.

발전하지 못하고 퇴보하거나 겨우 현상유지만 하고 있는 찬양대와 발전하는 찬양대는 어떻게 다를까?

먼저 발전하는 찬양대에는 뛰어난 인적 요소와 함께 더 좋은 찬양대를 위한 꿈을 공유하고 있다.

음악적으로나 신앙적으로 훌륭한 지휘자 반주자 대원들이 꼭 필요하지만 이것만으로 훌륭한 찬양대가 되지는 않는다.

더 좋은 찬양대를 향한 전 대원들의 꿈이 있어야 가능하다.

서울의 어떤 교회 찬양대는 매주일 찬양을 암보로 하는 교회가 있다.

이 교회는 우선 뛰어난 인적 자원을 풍부하게 가지고 있다. 그와 함께 악보를 외워서 찬양하고자 하는 공통된 욕구가 있고 모든 찬양대원들이 이 점에 동의하고 힘들지만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 매주일 많은 연습시간을 들여서 연습하고 악보를 외운다.

처음에는 아주 힘들고 불가능해 보이지만 연습량이 쌓이면 할 수 있다는 것을 대원들

스스로가 알게 된다.

그리고 암보 찬양을 해본 사람들은 그 찬양의 깊이와 즐거움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그 즐거움과 감격 때문에 힘이 들어도 암보로 찬양을 하게 된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다 암보찬양을 원하거나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편안하게 적당히 연습해서 좀 불안해도 버벅거리면서 찬양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잘하고 싶지만 잘 안 되는 사람들도 있고 소수의 사람들이지만 찬양대를 취미활동으로 하는 사람들도 간혹 있다.

 

전체 연습시간을 줄이면서도 합창을 잘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독보력을 키우는

것이다.

많은 찬양대원들이 이 노력을 게을리하면서 연습시간을 줄이기 원한다.

그러면 당연히 좋은 찬양을 할 수 없다.

악보를 잘 읽을 줄 알아도 합창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함께 연습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

악보를 읽을 줄 알면 파트 연습에 할애하는 시간을 거의 줄일 수 있다.

 

악보를 잘 읽을 줄 모르니까 현대 문명의 이기인 인터넷을 이용해서 많이 듣기만 해도 훨씬 도움이 된다.

이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연습시간을 줄이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악보 읽는 연습도 안하고 음악을 듣지도 않으면서 기어코 시간을 줄이면 불안한 찬양을 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