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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문화 유적지 관광지

강화 연미정

singingman 2023. 3. 22.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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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층 조집사님 부부와 함께 가다.
이 신실한 부부와 친해질 수 있어서 참 감사하다.
봄을 맞아 강화 터미널 옆에 있는 풍물시장에서 밴댕이 무침과 해물 칼국수도 먹고

풍물 시장 2층에 이 집이 있다.

 

 

먹는데 바빠서 먹다가 찍었지만 이 집 밴댕이 무침은 주위에 있는 다른 집보다 더 비싸게 받는데도 이 집만 사람들이 줄을 선다.


월곶 돈대에 있는 연미정과 민통선 안에 있는 고려 천도 공원을 들러서 오다.
연미정은 강화 읍내에서 차로 10여분이면 갈 수 있다.

연미정 맞은 편에 작은 무료주차장이 있다.
이곳에 주차하고 올라가면 된다.


월곶 돈대

 

돈대 안에 있는 연미정

 



연미정에서 바라본 북한 개풍군

(아래의 글은 다음 백과 사전 등을 참고했다.)

연미정은 월곶 돈대 안에 있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정자다. 월곶리는 한강과 임진강이 합류하는 지점으로서 물길의 하나는 서해로, 또 하나는 갑곶(甲串)의 앞을 지나 인천쪽으로 흐르는데, 그 모양이 제비꼬리와 같다 하여 정자 이름을 연미정이라 지었다고 한다.

김포와 강화 사이에 있는 해협을 이곳 사람들은 염하강(鹽河江)이라 부른다.
강이라고 부르지만 이미 이름 속에 소금물 강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연미정에 오르면 북으로 개풍군과 파주시, 동으로 김포시가 한눈에 들어온다.
옛날에는 서해로부터 서울로 가는 배가 이 정자 밑에 닻을 내려 조류(潮流)를 기다려 한강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정자 양쪽에는 수백년 묵은 느티나무 두 그루가 있었는데 한 그루는 2019년 태풍 링링 때 부러지고 한그루만 남아 있다. 다행히 이 부러진 나무에도 작은 가지들이 살아 있어서 소생의 가능성이 전혀 없지는 않아 보인다.

두 그루의 느티나무가 다 있던 시절의 연미정 모습

 

부러진 나무에 잔 가지들이 살아 있다.

 

태풍 당시 부러진 모습


나무가 쓰러진 모습을 이렇게 표시했다.


정자는 고려시대에 지어졌다고 하며, 1244년(고종 31)에 시랑 이종주(李宗胄)에게 명하여 구재생도(九齋生徒)를 이곳에 모아놓고 하과(夏課: 여름철에 50일 동안 절에 들어가 공부하던 일)를 시켜 55명을 뽑았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 중종 시대에 들어와서는 삼포왜란 때 전라좌도방어사로 큰 공을 세운 황형(黃衡)에게 정자를 하사하였으며, 현재도 황씨문중의 소유로 되어 있다고 한다. 

삼포왜란 참고(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63XX66000049)

장무공 황형 장군 택지비가 돈대 안에 있다.

황형 장군의 사당인 장무사와 묘는 강화 산업단지 근처에 있다. 
강화 나들길 1코스를 걷다가 여기를 지나갔다.

강화읍에서 연미정 가는 길에 이 안내판이 있다.

 
 

황형 장군의 사당 장무사

 
 

장무사

 
 

무덤

 

연미정에 있는 안내판에는 이곳 연미정에서1627년 정묘 호란 때 청나라와  강화조약을 맺었다고 되어 있지만 실제 기록에는 강화부 성문 밖의 어느 곳에서 조약을 맺었다고 한다.


이후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대부분 파손된 것을 1744년(영조 20) 유수(留守) 김시혁이 중건하였고
1891년(고종 28) 조동면이 중수하였으며 1931년과 1976년에도 복원하여 현재에 이르렀다.

강화해협은 서해를 거쳐 한양의 한강으로 진입할 때 삼남 지역과 관서와 해서 지방의 조운선들은
강화 연안을 따라 한양으로 올라갔다.
 
세곡은 한강이 얼어붙기 전에 서울로 운송하는 것이 원칙이었기 때문에 추수가 끝나고부터
물이 얼기 전까지 강화 앞바다는 배들로 가득 찼다.
 
강화도 출신 선비인 화남 고재형 선생(1846~1916)은 1906년 이곳 연미정을 방문하고
‘연미조범’이라는 기행시를 남겼으며, 이 시가 돈대 안에 게시되어 있다.
 
‘연미조범’이란 '연미정 조운선의 돛대'란 뜻으로, 삼남 지방에서 올라오던 조운선들이
돛을 활짝 펴고 연미정 앞을 경유하던 광경을 나타낸 것이다.

燕尾亭高二水中  
三南漕路襤前通  
浮浮千帆今何在  
想是我朝淳古風   

연미정 높이 섰네 두 강물 사이에,
삼남지방 조운길이 난간 앞에 통했었네.
떠다니던 천척의 배는 지금은 어디 있나,
생각건데 우리나라 순후한 풍속이었는데.


연미정 아래는 조해루라는 성문이 복원되어 남아 있다.

월곶진의 문루 조해루

 



강화 고려천도공원
(https://song419.tistory.com/m/25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