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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정족산성(삼랑성) & 전등사 20-11-11 본문
윤교감 부부와 함께 가다.
온수리 성공회 성당에 주차하고 온수리 감리교회 앞으로 난 길로 올라가다.
산성을 한바퀴 돌고 전등사를 들렀다가 원점회귀하다.
산에서 만난 강화 주민의 말에 의하면 이 산성을 한바퀴 도는 데는 1시간이면 된다고 한다.
우리는 부부가 함께 가고 또 놀멍쉬멍 하다 보니 두시간도 더 걸렸다.
산성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고 강화 주변이 잘 보여서 경치도 아주 좋다.
다음 백과에 의하면 정족산성은
일명 삼랑성이라고도 불리우는 이 성은 단군의 세 아들이 쌓았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으며, 길이는 2,300m에 달하며 자연활석을 이용하여 축조된 성이다. 성 내에는 381년(고구려 소수림왕 11년)에 창건된 유서 깊은 전등사가 있으며 고려 고종 46년(1259)에는 이 성안에 궁궐(이궁)을 지었으나 현재는 무너지고 터만 남아 있다. 조선 현종 1년에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할 사고를 설치하였는데, 무너진 것을 1998년 강화군에서 복원하였다. 조선 고종 3년 병인 양요시 양헌수장군이 이 성을 침입하는 프랑스군을 무찌른 전승지 이기도 하다. 이 성에는 동.서.남.북에 4대문이 있고 남문을 제외한 3개 문에는 문루가 없었다 하나 영조때에 남문에 문루를 건립하였다 한다. 남문의 문루(종해루)가 무너져 없어진 것을 1976년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모서리 추녀 밑에 벌거 벗은 사람의 모습을 조각하였는데.... 전설에 따르면 목수의 재물에 손을 댄 주막 여인의 나쁜 짓을 꾸짖어 하루 세 번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음을 얻어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라고 추녀 밑에서 지붕을 받치고 있습니다. 옛 스님들이 중생에게 깨달음을 주고자 만든듯합니다
[출처] [강화] 전등사에 봄이 오고 있다|작성자 간JINA
다음 백과에 의하면
정족산사고가 설치된 계기는 마니산사고(摩尼山史庫)가 1653년(효종 4) 11월 실록각(實錄閣)의 실화사건(失火事件)으로 많은 사적들을 불태우게 되자 새로이 정족 산성 안에 사고 건물을 짓고, 1660년(현종 1) 12월에 남은 역대 실록들과 서책들을 옮겨 보관하게 되면서부터이다.
≪태조실록≫에서 ≪인조실록≫까지는 처음부터 봉안되었고, ≪효종실록≫은 1661년 11월에 봉안되었다. 그리고 1664년 12월에는 무려 223권에 달하는 실록들을 개사(改寫)하였다. 1665년 9월에는 그 동안 낙권(落卷)이 되어 있던 부분을 새로 등서(謄書)해 채워 넣었다.
≪현종실록≫은 1683년(숙종 9) 3월에 완성, 봉안되었으며, ≪숙종실록≫은 1728년(영조 4) 3월에 완성, 봉안되었다. ≪경종실록≫은 1732년 2월에 완성되었으나 노론에 대해 불리한 기사가 많다는 이유로 1778년(정조 2) ≪영조실록≫과 함께 다시 ≪경종수정실록≫이 편찬되기 시작해 1781년 7월에 완성, 봉안된 것이다.
≪정종실록≫은 1805년(순조 5) 8월에, ≪순조실록≫은 1838년(헌종 4) 윤4월에 각기 완성, 봉안되었다. 그리고 ≪헌종실록≫은 1852년(철종 3) 9월에 인쇄해 각 사고들에 봉안했으며, ≪철종실록≫은 1865년(고종 2) 윤5월에 인쇄해 봉안하였다.
1866년 병인양요 때에 강화도를 일시 점거한 프랑스의 해병들에 의해 정족산사고의 서적들이 일부 약탈되기도 하였다. 이 사고에 봉안되었던 역대 실록 및 서적들은 서울로 가져가기도 하고, 일부는 약탈되는 등 많은 시련을 겪으면서 춘추관(春秋館)의 관장 하에 관리되어왔다.
대한제국시대에는 의정부에서 관원이 파견되어 강화군수와 협력하여 관리하고 포쇄(曝曬)를 실시하며 보존하였다. 그러나 1910년 일제가 국권을 빼앗은 뒤부터 정족산 사고본은 태백산사고의 실록들 및 규장각의 도서들과 함께 조선총독부 학무과 분실에 이장(移藏)되었다. 이 후 1930년에 경성제국대학(京城帝國大學)으로 옮겨진 뒤, 광복으로 경성제국대학이 서울대학교로 개편, 발전되면서 서울대학교에 옮겨 보존, 관리되고 있다.
현재 정족산사고지(鼎足山史庫址)는 정족산성 안 전등사 서쪽 높이 150m에 위치하며, 사고지의 보호철책 안쪽에는 주춧돌들이 놓여져 있다. 또한, 성내에는 수호사찰(守護寺刹)인 전등사에서 사고를 보호해왔으므로 1910년 조선총독부 학무과 분실로 실록과 서적들이 옮겨질 때까지 보존될 수 있었다.
사고 건물이 언제 없어졌는지 자세히 알 수 없으나, 1931년에 간행된 ≪조선고적도보 朝鮮古蹟圖譜≫에 정족산사고의 사진이 수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때까지는 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사고 건물에 걸려 있었던 ‘장사각(藏史閣)’과 ‘선원보각(璿源寶閣)’이라 쓰인 현판이 전등사에 보존되어 있다.
이 사고에 보관되어오던 정족산사고본 실록은 많은 변동은 있었다. 임진왜란 때에 유일본으로 남은 전주사고본이 묘향산사고로 피난했다가 마니산사고로 옮겨졌고, 이 마니산사고본의 실록을 옮겨서 보관, 관리해 오늘에 전해질 수 있게 된 것이다. 현재 정족산사고본 실록은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서 보존, 관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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