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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당의 발생 2021-01-11 본문
1575년 선조 때 이조 전랑직에 천거를 받은 명종의 왕비인 인순왕후의 동생 심의겸과 신진사류 김효원의 암투에서 사림의 분열이 시작된다.
김효원이 인사권을 쥔 이조 정랑에 천거를 받자 심의겸은 그가 외척인 윤원형의 식객으로 있으면서 권세에 아부한 소인배라고 반대한다.
하지만 그가 취임했다.
그 후 심의겸의 아우 심충겸이 그 후임으로 추천되자 왕의 외척이 인사권을 가진 전랑에 앉는 것은 부당하다며 반대했다.
이들 파벌이 동인과 서인이 된다.
심의겸의 집이 도성 서쪽 정동에 있어서 서인이 되고 김효원의 집이 도성 동쪽 건천동에 있어서 동인이 된다.
동인은 주리철학적 도학을 사상적 배경으로 하는 이황. 조식 문하의 영남 학파이고 서인은 주기철학에 근거를 둔 이이. 성흔 문하의 기호학파였다.
이 양대 세력은 권력 투쟁 과정에서 동인은 다시 정여립 모반사건을 계기로 남인과 북인으로 갈라지게 되었다.
유성룡. 김성일. 이덕형을 주류로 하는 이황 문하생 중심의 남인과
정인홍. 이산해. 홍여순 등 조식 문하의 북인으로 나뉜다.
선조 말에 조정을 장악한 북인은 세자 책봉 문제로 다시 대북과 소북으로 나뉜다.
대북은 광해군을 지지하였고, 소북은 영창대군을 지지하였다
광해군 때 대북이 정권을 잡지만 서인이 인조반정을 일으켜서 북인을 거의 숙청하고 정권을 잡는다.
이후 서인도 여러 파벌로 나뉜다.
효종대에 윤선도, 윤휴 등의 남인이 세력을 형성해 효종 사후 예송 논쟁으로 송시열 중심의 서인을 공격했다.
서인은 김육을 영수로 한 한당과 김집을 영수로 한 산당으로 내부 분열한다.
한당은 김육에 이어 김우명, 김좌명 형제에게 이어졌고 김우명이 현종의 장인이 되면서 권력을 쥐게 된다.
김우명은 남인을 지지한다.
이어서 숙종 즉위 초인 1674년 갑인환국(甲寅換局)으로 효종이 장자가 아닌 서자라고 주장한 송시열을 비롯한 서인이 축출되고 남인이 정권을 잡는다.
조정을 장악한 남인은 서인 처리 문제로 온건파인 탁남과 강경파인 청남으로 나뉜다.
청남의 대표는 허목이고 탁남의 대표는 허적이다.
숙종은 탁남을 지지하고 청남을 추방한다.
이후 탁남의 영수 허적이 조정을 장악했지만 숙종은 서인 한당의 영수 김우명과 김석주에게 탁남을 견제하게 한다.
탁남 정권이 이어지다가 허적이 김석주의 모략에 쫓겨나면서 조정은 다시 서인에게로 돌아온다.
당시 서인은 한당과 산당이 결합해서 남인을 축출했는데 1680년에 일어난 이 사건을 경신환국이라고 한다.
1680년 경신환국은 허적이 왕의 허락도 없이 기름 먹인 장막인 유악을 개인적으로 가져가 사용했다가 허적의 힘이 너무 세어진 것을 경계한 숙종이 서인들을 불러들여 역모를 핑계로 허적 일당 100 여명을 사사한 사건이다.
남인 축출 과정에서 송시열 중심의 노론과 그의 제자 윤휴 사이에 갈등이 일어난다.
노론은 남인을 강력하게 탄압하자고 했지만 소론은 오히려 노장파의 수장 김익훈을 공격한다.
이로 인해 노론과 소론이 갈라진다.
숙종은 왕권강화를 위해 4차례의 환국(換局)을 통해 서인과 남인의 권력을 교체하며 정국을 주도했다.
1689년 기사환국(己巳換局)은 인현왕후를 폐위하고 희빈장씨를 왕후로 책봉하고 원자 윤을 세자에 책봉했다.
서인이 축출됐다.
이 과정에서 송시열을 비롯한 노론계 4대신인 이이명, 김수향,김만중, 김수홍이 사사된다.
1694년 갑술환국(甲戌換局)은 희빈장씨를 폐위하고 인현왕후를 복위하여 남인이 축출되고 서인의 노론과 소론이 조정을 장악한다.
이후 남인은 힘을 잃고 영조 때 도승지, 예조 참판 등을 지낸 오광운과 사헌부 전랑을 지낸 이선태, 정조 때 채제공과 다산 정약용 같은 이들이 조금씩 관직에 등용되기는 한다.
그 후 외척의 세력이 커지면서 사림이나 당파의 힘은 많이 약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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