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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사람
조선 시대 교육기관 정리 2022-03-16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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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들의 나라 조선은 다양하고 체계적인 교육기관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먼저 어린 나이부터 초등 교육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 서당에서 천자문이나 동몽선습등을 가르쳤고 경우에 따라서는 소학, 효경등 학문을 하기 위한 기초적인 문해 교육과 학습, 예의 범절을 가르쳤습니다.
나중에 일제 시대를 거치면서 개량 서당이 생기면서 커리큘럼이 바뀌기도 합니다.
다음에 중등교육기관에 해당하는 국립 교육기관인 향교나 사립 교육기관인 서원에서 체계적인 선비교육과 과거를 위한 교육을 받습니다.
서울에는 동서남북 네 곳에 4부학당이 있어서 이곳에서 교육을 받았고 지방에서는 향교와 서원에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향교는 1413년 이후 360여개가 설치되어 전국의 행정 단위마다 1개소씩 고루 설치되었습니다.
현재 남한에는 234개의 향교가 남아 있고 서원은 전성기에는 1,700여곳에 이르렀다가 대원군때 서원철폐령에 따라 47곳만 남게 되었습니다.
고종실록에 따르면, 대원군은 서원철폐령(1868~1871년)을 내려 1700여개에 이르는 전국의 서원을 47개소(사액서원)만 남기고 모두 "철원매주(撤院埋主) 하라(서원을 철폐하고 사당에 모신 위패(位牌)인 신주(神主)를 묻어라)"고 명했습니다.
당초 서원은 선현에 대한 제향과 지방의 인재 양성을 위한 일종의 사설 교육기관 역할을 했지만, 갈수록 당쟁의 소굴이 되고 지방민을 침탈하는 폐단을 낳습니다.
서원은 특히 많은 토지와 노비를 보유하면서도 면세와 면역 등 경제적인 혜택으로 국가 재정을 약화시켰으며, 당론을 명분 삼아 왕권을 견제하고 백성들을 억압하면서 조정의 권위와 지방에 대한 통제력을 떨어뜨렸습니다.
군역을 면제받기 위해 서원의 학생으로 등록하는 양반들도 많았고, 이는 곧 농민들의 납세 부담을 키우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이에 대원군은 1864년 7월, 전국 서원의 실태를 조사하도록 하면서 서원의 폐단과 존폐 문제를 공식으로 제기한 데 이어, 이듬해 3월에는 유생들의 격렬한 반대 속에 충북 괴산의 화양동에 있는 만동묘(萬東廟)를 철폐했습니다.
만동묘는 노론 영수인 우암 송시열의 뜻에 따라 임진왜란 당시 지원군을 보내 조선을 도운 명나라 신종(神宗)과 마지막 황제 의종(毅宗)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으로, 노론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던 곳이었습니다.
그 옆에는 송시열을 모신 대표적인 서원인 화양동서원(華陽洞書院)이 있었습니다.
대원군이 야인(野人)으로 지낼 때 화양동서원에 들렀는데, 당시 부채를 들고 계단을 오르다 서원의 노비에게 변을 당해 이를 앙갚음하기 위해 이곳을 정리했다는 얘기도 전해집니다.
하지만 그 후로 다시 복원된 곳도 많이 있습니다.
서원 가운데는 귀화인을 모신 특이한 서원도 있습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일본군 선봉장으로 3,000여명의 병력을 이끌고 온 사야가는 일본에 있을 때부터 문화의 나라 조선을 동경해 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조선에 도착하자 마자 바로 경상도 병마절도사 박진에게 귀순하여 일본군과 싸웠습니다.
선봉장이었으니 일본군의 사정이나 무기체제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조선군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듬해 1593년에 선조로부터 김충선이라는 이름을 하사받았습니다.
그리고 대구 광역시 달성군에는 그를 기려서 세운 녹동서원이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 철거되었다가 1885년에 다시 지어서 1971년에 지금의 자리로 이건하였다고 합니다.
향교나 서원에서는 대체로소학(小學), 논어(論語), 맹자(孟子), 대학(大學), 중용(中庸), 근사록(近思錄) 등 유교에 관련된 교과목을 강의하였으며 과거시험 소과(小科)에 응시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이런 교육을 받고 과거 소과에 합격하면 국립대학이라고 할 수 있는 성균관에 입학해서 대과 시험인 문과를 준비하게 되고 대과에 합격하면 본격적인 관료의 길로 진출할 수 있었습니다.
성균관 유생들은 성균관에 재학하고 있는 기간에도 단체로 상소를 올리기도 하고 잘못된 정책이나 인물에 대해서는 집단 행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동맹휴학을 하기도 하고 대궐문 앞에 단체로 가서 시위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서당은 지금으로 말하면 개인교습소같은 곳으로 제향공간이나 기능은 없습니다.
향교와 서원은 둘 다 크게 제향 공간과 강학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둘의 구조적 차이를 찾아보면 일반적으로 향교에는 대성전 앞에 동무와 서무가 있지만 서원에는 대성전 대신 사당이 있고 동무 서무는 없습니다.
향교는 대체로 평지형은 전묘후학으로 신삼문을 들어가면 제향공간인 대성전이 먼저 있고 그 뒤에 강학공간인 명륜당등이 있습니다.
성균관도 평지에 있어서 이런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산지형은 전학후묘로 강학공간이 앞에 있고 더 높은 곳인 뒷편에 제향공간인 대성전이 있습니다.
이것은 제향공간을 더 존중하는 사고에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대성전과 동무 서무에는 대체로 유교의 중국 성현 5성과 송조 4현, 우리 나라 18현을 모십니다.
유교의 5성(五聖)은
공 자 (孔子, 大成至聖 文宣王, BC551-BC478)·
안 자 (復聖公 顔子, BC521-BC490)·
증자 (宗聖公 曾子, BC505-BC436)·
자 사 (術聖公 子思, BC483-BC402)·
맹 자 (亞聖公 孟子, BC372경-BC289경) 이고
송조 4현은.
주돈이(道國公 周惇 , 1017-1073)·
정 호(豫國公 程顥, 1032-1085)·
정 이(洛國公 程 , 1033-1107)·
주 희(徽國公 朱熹, 1130-1200)이며
우리 나라 18현은.
설 총(弘儒候 薛聰, 650-740경)·
최치원(文昌候 崔致遠, 857-?).
안 유(文成公 安裕, 1243-1306)·
정몽주(文忠公 鄭夢周, 1337-1392)·
정여창(文獻公 鄭汝昌, 1450-1504)·
김굉필(文敬公 金宏弼, 1454-1504)·
조광조(文正公 趙光祖, 1482-1519)·
이언적(文元公 李彦迪, 1491-1553)·
이 황(文純公 李滉, 1501-1570)·
김인후(文正公 金麟厚, 1510-1560)·
성 혼(文簡公 成渾, 1535-1598)·
이 이(文成公 李珥, 1536-1584)·
조 헌(文烈公 趙憲, 1544-1592)·
김장생(文元公 金長生, 1548-1631)·
김 집(文敬公 金集, 1574-1656)·
송준길(文正公 宋俊吉, 1606-1672)·
송시열(文正公 宋時烈, 1607-1689)·
박세채(文純公 朴世采, 1631-1695)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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