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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 강화 성당 2022-04-01 본문
강화도에 가면 철종의 잠저(왕이 즉위하기 전에 살던 私家)였던 용흥궁 바로 위에 성공회 강화 성당이 있습니다.
강화도에는 감리교회와 성공회 성당이 다른 지역에 비해 유난히 많이 있습니다.
왜 이렇게 감리교회가 많은지에 관해 질문했더니 신경하 감리교 전 감독회장은 강화도는 자생적으로 감리교가 발전하였다고 말합니다.
우리 나라에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선교사가 1885년 부활절 아침에 인천항에 도착한 후 장로교 선교사인 언더우드와 감리교 선교사인 아펜젤러는 효율적인 선교를 위해 감리교는 황해도와 인천등 서해안, 충청도와 강원도를 주로 선교하고 그 아래 지역인 영호남과 평안도는 장로교가 선교하기로 지역을 나눈 선교정책의 영향도 있지 않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선교지가 겹치는 곳도 많이 있습니다.
강화도에 성공회 성당도 많은 이유는 성공회 신부였던 웨슬리가 감리교를 창시했으니 두 교파간에 비슷한 점이 많았고 또 선교 당시 우리 나라의 사정과도 관련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로 강화도 사람들은 미국이나 프랑스에 우호적일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영국은 당시 제 1,2차 아편 전쟁을 거쳐 거대한 시장인 청나라를 공략하느라 미처 우리 나라에는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든지 강화도에는 피해를 준 일이 없어서 영국 출신인 감리교와 성공회는 강화도 사람들과 비교적 쉽게 친해질 수 있지 않았을까요?
또 성공회 초기 선교사들이 이곳 강화도에 한옥 성당을 세운 건 영국 북부 스코틀랜드 이오나(Iona) 섬처럼 신앙의 교두보로 삼으려는 뜻에서였다고 합니다.
그러면 성공회는 어떤 교회일까요?
먼저 성공회는 영국왕 헨리 8세의 결혼과 관련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헨리 8세 치세에는 종교개혁 열풍이 대륙에서 불고 있었는데,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 시기 발표한 논문에 대한 반박문을 작성하기도 하는 등 처음에는 헨리 8세는 가톨릭 신앙을 유지하며 교황의 정치적 동반자이기도 했습니다.
이 공로로 1521년 8월에 헨리 8세는 레오 10세에게서 '신앙의 수호자(Fidei Defensor)'라는 칭호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형의 약혼자였던 캐서린과 결혼했던 헨리 8세는 캐서린이 아들을 낳지 못하자 그녀와 이혼을 하려고 교황청에 케서린과의 결혼 무효 신청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캐서린의 뒤에는 스페인이라는 거대한 힘이 있었고 당시 교황청은 스페인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하에 있었습니다.
그러자 헨리 8세는 교황청과의 결별을 선언하고 자기가 영국 교회의 머리가 되는 수장령을 발표합니다.
이렇게 해서 영국 성공회가 탄생합니다.
그러니까 영국의 종교개혁은 대륙의 프로테스탄트와는 달리 정치적인 이유로 일어나게 됩니다.
이제 성공회 강화 성당에 관해 알아보겠습니다.
강화 성당은 조마가(Mark Trollope, 1862~1930) 주교 신부가 1900년 11월 15일 축성했다고 합니다.
조마가 신부가 직접 수령 백년 이상된 백두산 적송을 신의주에서 구하여 뗏목으로 운반해 왔습니다.
석재와 기와는 강화산을 사용하였고 도목수는 경복궁 중수에 참여했던 도편수였으며 중국인 석공과 강화 지역
신도들이 참여하여 1년여 만에 성당 건축이 완공되었다고 성당 brochure에 나와 있습니다.
성공회 강화 성당은 언덕 위에 배(船)모양의 형상으로 서 있습니다.
구원의 방주라는 말이 생각나지요?
불교에도 극락으로 가는 반야용선이라는 배가 있습니다.
이 건물은 외관은 우리 전통 한옥 양식에 따라 지었고 내부는 바실리카 양식을 따라 지었습니다.
강화 성당의 가장 큰 특징 가운데 하나는 불교나 유교와 다투지 않고 토착화를 잘 진행한 성당이라는 것입니다.
성당 곳곳에서 불교와 유교의 상징들과 흔적들이 보입니다.
계단을 올라가면 이 솟을 대문이 있고 그 안에 또 문이 있습니다.
우리 나라 산지형 향교나 서원에는 외삼문이 있고 그 외삼문을 들어가면 또 내삼문이 있습니다.
이런 양식은 향교나 서원의 외삼문, 내삼문을 연상시킵니다.
혹은 절에서 보는 일주문과 천왕문이나 불이문을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이 두번째 문에는 종각이 있습니다.
절에서 보는 범종각이 생각나게 합니다.
우리 전통의 범종양식을 차용한 것 같습니다.
당좌가 연꽃이 아니고 십자가로 되어 있고 종유가 있을 자리에 십자가 문양이 있습니다.
당연히 비천 주악상이나 연꽃도 없고 종뉴에 보이는 음통이나 용도 없습니다. 하지만 종뉴가 용의 등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의 글을 보니 용의 등이 아니고 성령을 상징하는 불꽃 모양이라고 합니다.
두번째 문을 지나면 성당 본 건물이 나타납니다.
아쉬운 것은 이 성당에는 앞마당이 아주 작습니다.
우리 한옥은 마당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당시 선교사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1900년에 트롤로프 신부님이 인도에서 10년생 보리수 나무를 가져와서 심었다고 합니다.
보리수 나무는 석가모니가 보리수 나무 아래서 깨달음을 얻어서 불교를 상징하는나무가 되었지요.
전에는 유교를 상징하는 회화나무도 있었다고 하는데 어느 해 태풍에 쓰러졌다고 합니다.
회화 나무는 향교나 서원에 즐겨 심는 나무로 학자수(學者樹 )라는 별명으로도 불립니다.
정면 4칸 측면 10칸의 건물입니다.
이 건물은 토착화 신학을 잘 반영한 건물로 보입니다.
우선 외관에 나타난 특징을 찾아보면 사찰의 대웅전이나 향교의 대성전을 연상시킵니다.
정면에 天主聖殿이라는 현판이 대웅전이나 적광전등 사찰의 현판을 보는 것 같습니다.
지붕은 팔작지붕이고 1층과 2층 사이에 유리 창문을 배치해서 자연채광을 할 수 있게 했습니다.
지붕의 추녀끝을 잘 보면 태극무늬와 십자가가 공존하고 있습니다.
유교와 기독교가 사이좋게 위 아래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그나마 십자가가 태극 무늬 위에 있긴 하네요.
그리고 주련 위에는 연꽃으로 보이는 꽃도 보입니다.
유교 불교 기독교의 공존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기둥에는 절에서 쉽게 볼 수 있는 5개의 주련이 있습니다.
성경 구절을 그대로 적은 것이 아니고 유불선의 느낌도 납니다.
無始無終先作形聲眞主宰(처음도 끝도 없고 형태와 소리를 처음 지으신 분이 진정한 주재자시다.)
宣仁宣義聿照拯濟大權衡(인을 선포하고 의를 선포하여 드디어 구원을 밝히시니 큰 저울이시다.)
三位體天主 萬有之眞原(삼위일체 천주는 만물의 근원이시로다.)
神化主流 有庶物 同胞之樂(하나님 가르침 아래 만물이 성장하니 동포의 즐거움이로다.)
福音宣播 啓衆民 永世之方(복음이 전파되어 세상 사람들이 깨달으니 영생의 길이로다.)
이문을 보면 성공회가 토착화를 상당히 강하게 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문은 화재를 진압하는 능력이 뛰어난 신수(神獸)입니다.
그래서 사찰이나 궁궐 또는 왕릉의 정자각 지붕 용마루에 이문이 앉아 있습니다.
사찰이나 궁궐은 화재에 취약한 목조 건물들이 밀집해 있으니 화재를 예방하는 일이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그래서 지붕에 화재를 막아주는 상징인 이문이 있습니다.
궁궐에서는 이문 외에도 해치를 궁궐 문 앞에 세워두기도 합니다.
광화문을 보면 앞에 해치가 앞에 있고 지붕에는 이문이 있습니다.
기독교 전통에서 용은 사탄이나 악의 세력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성당 지붕에 용의 아들을 12개 올려두었다는 것은 이문이 예수님의 12 제자를 상징한다는 것이고 따라서 용은 예수님을 상징할 수도 있습니다.
동양에서는 용은 상서로운 존재로 신적인 권위를 가졌고 황제나 왕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기독교 전통과 동양의 전통이 충돌을 일으킨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만 성공회는 과감하게 기독교의 전통 보다도 당시 우리 나라의 전통을 따라서 이문을 지붕에 올렸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고기는 잘 때도 눈을 뜨고 자기 때문에 불교에서는 끝없는 정진을 나타냅니다.
수행에 잠은 큰 방해가 되기 때문에 스님들은 심지어는 수행을 위해서 눕지 않고 앉아서 자는 분들도 있다고 합니다.
오죽했으면 달마 대사는 눈꺼풀을 잘라내었을까요?
또 물고기는 물 속에서 아무런 방해받지 않고 다니기 때문에 자유로움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바람에 소리를 내는 풍경에도 물고기가 들어가 있고 목어나 목탁도 물고기입니다.
이제 성당 내부로 들어갑니다.
성당 안 입구에 있는 세례대에는 유교의 핵심적인 가치인 修己治人의 수기가 처음으로 나와 있습니다.
유자가 실천해야 할 궁극적인 목표인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첫 덕목인 수신을 생각나게도 하지요.
또 두번째 글 세심(洗心)은 格物致知 誠意正心 修身齊家 治國平天下 (격물치지 성의정심 수신제가 치국평천하)의 정심을 생각나게 하지요.
뿐만 아니라 불교에서는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마음입니다.
그래서 심즉불(心 卽 佛)이라고도 하지요.
이 마음을 씻는 세심은 불교인들에게도 아주 익숙한 표현이 되겠습니다.
마지막의 작선은 어쩐지 불교의 심우도 마지막 10번째 장면인 입전 수수가 생각나고...
위의 글을 당시 선비나 스님들이 보았다면 기독교의 가치관을 아주 쉽게 이해할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1900년 축성식 순행 당시에 사용했던 이 교회 깃발에는 강화성당 수호성인 베드로의 천국열쇠와 바울의 성령의 검을 비단에 수놓아 제작했다고 합니다.
자세히 보면 베드로의 천국열쇠에 절 만자가 있습니다.
이미 사용하던 십자가 문양이긴 하지만 어쩐지 이 성당에서는 불교 냄새도 진하게 납니다.
강화도에는 이 강화 성당 말고도 또 아름다운 성공회 성당이 있습니다.
아래는 성공회 온수리 성당입니다.
강화도의 부속도서인 주문도에도 아름다운 한옥 감리 교회가 있습니다.
아래는 주문도에 있는 한옥으로 지은 서도 중앙교회입니다. 원래 이름은 진촌교회였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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