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서각왕실문헌연구실이 숙종대의 책과 고문서들을 모아 설명한 책으로 자료들을 사진으로 다 올렸다. 1661년 경덕궁(경희궁으로 이름이 바뀐다.) 회상전에서 태어나다. 7세에 세자가 되고 14세에 아버지가 죽자 왕위에 올라 46년을 지냈다. 4명의 왕비와 6명의 후궁을 두었고 6남 2녀의 자녀를 보았다. 숙종(1674~1720)은 감정기복이 심하고 불같은 성격을 가졌다.
왕실에서 3년상 기간 중에는 부부 관계가 금지되어 있었는데 숙종의 부모인 현종과 명성왕후 사이에서 효종 사후 1년 3개월 만에 숙종이 잉태되었다. 3년상은 27개월로 담제까지이다. 이것은 당시 유교 윤리를 어긴 것이기 때문에 현종과 숙종이 비난받을 일이었다.
숙중은 강화도 해변가의 망루와 포루의 역할을 할 수 있는 돈대를 총 48개 구축하는 한편 진무영을 별도로 창설하여 수비 체제의 구심점으로 삼았다. 또 남한산성에는 인근의 둔전을 이속시키고 거주민을 모집하는 등 군사적인 기반 요소를 갖춰 나갔다.
1711년(숙종 37년)에 숙종은 한양 인근에 있으면서 인적 물적 이동이 편리하고 동시에 공수에 효과적인 새로운 보장처, 북한 산성을 축성하였다. 이어 한양과 북한산성을 잇는 탕춘대성까지 구축하였다.
숙종은 환국정치로 왕권을 강화했다. 예송문제로 경신환국이 일어나고 서인이 집권한다. 경신환국(庚申換局)은 1680년(숙종 6년) 3월부터 4월 사이 조선 조정에서 남인 일파가 정치적으로 대거 실각당한 일이다. 당시 재상 허적이 조부 허잠의 시호를 받는 기념식 할 때, 궁궐의 허락을 받지 않고 유악(천막)을 빌린 일에서 시작했다. 경신사화(庚申士禍), 경신출척(庚申黜陟)이라고도 한다.
희빈 장씨 소생의 아들 윤(昀)을 원자로 삼으려는 숙종에 반대한 송시열 등 서인이 이를 지지한 남인에게 패배하고, 정권이 서인에서 남인으로 바뀐 기사환국이 있었다. 서인의 송시열, 김수항등이 사사당한다
갑술환국(甲戌換局)은 1694년(숙종 20년) 4월 1일에 발생한 숙종 시대의 3차 환국으로, 기사환국이 발생한 1689년 2월 2일 이후로 정권을 집권해온 남인이 몰락하고, 기사환국 때 몰락했던 서인(노론·소론)이 재집권한 사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