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아에 문제가 있어서 병원을 가야 하는데 미루고 있다가 더 이상 미룰 수 없어서 오늘은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망설이지 않고 그동안 찾아가 보고 싶었던 제자 용희에게로 갔다.
거의 40년 만에 만나는 데도 옛 모습이 많이 남아 있다. 나도 옛날 그대로라고 말한다. 내가 젊었을 때 좀 겉늙기는 했었지... 오랜만에 이제는 50대 중반이 된 제자를 만나니 참 반갑고 감격적이었다.
그동안 어금니 아래위가 딱 맞지 않아서 음식을 씹을 때 잘 갈아지지 않았다. 거의 20년 가까이 된 임플란트 한 치아가 문제였다. 그래서 튀어나온 한 개의 치아를 섬세하게 잘 갈아주었다. 병원에 온 김에 잇몸이 상한 부분과 치아 뿌리에 때워야 할 부분들은 때워주고 스케일링까지 한 번에 깔끔하게 해 주었다. 좋은 제자를 둔 덕분에 여러번 가야 할 분량의 치료를 한 번에 아주 시원하게 싹 다 해결했다.
내가 창현고에 1년밖에 있지 않았지만 1학년때 담임한 제자들이 사회 각 분야에서 자기 역할들을 충실하게 잘하고 있는 것을 보면 참 뿌듯하다. 선생의 보람과 자랑은 제자들이 잘 되는 것이다. 자식 자랑이나 마누라 자랑은 팔불출이라고 하지만 제자 자랑은 괜찮겠지?
자랑하는 김에 당시를 되돌아보면 그때 우리 반에 유독 뛰어난 아이들이 많았다. 이 학교는 내가 교직에 첫발을 들여놓은 학교였고 그 해에 신설된 학교여서 1학년밖에 없었다. 이때 선생님들이 다들 대학 갓 졸업한 분들이었다. 아마 학교가 일부러 젊은 선생님들을 뽑은 것 같다. 다들 사회 초년생들이니까 사명감에 불타서 제자들을 열심히 돌보고 가르쳤던 것 같다.
오래되어서 기억을 믿을 수는 없지만 입학하고 처음으로 본 월말고사만 빼고 나머지 모든 월말고사와 기말고사는 우리 반이 1년 내내 1등을 놓치지 않았고 체육대회를 해도 우승하고 남녀 공학 학교인데 합창대회를 해도 여자반도 제치고 우승했다. 지금 생각하면 좀 지나친 감이 있긴 하지만 매 시험마다 성적이 가장 많이 오른 아이는 우리 집에 데려와서 저녁도 같이 먹으면서 격려하기도 했다. 그랬더니 어떤 제자는 자기도 꼭 선생님 집에 가서 저녁을 먹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우리 반 재용이는 모의고사에서 전국 수석을 차지하기도 했다. 당시 내가 1년간 담임한 제자들 가운데 서울대를 3 명이 갔다. 용희는 치과대, 현중이는 수의대, 재호는 입학하던 해 서울대에서 가장 커트라인이 높았던 전자공학과에 들어갔다.
용희는 대학 졸업 후에 미국 유학도 다녀오고 서울대에서 계속 제자들도 가르치다가 최근에 개업을 했다.
연세대도 3명이 들어갔는데 성대와 재용이는 영어 영문과를 갔고 병찬이는 법대를 갔다. 성대는 내가 음악 관련 책을 번역할 때 어려운 영어들을 도와주기도 했다. 병찬이는 판사가 되어 서울 서부지법에 있을 때 내가 근무하던 명지중학교에 와서 강의도 해 주고 학생들에게 특별활동으로 법원 견학도 시켜주었다. 지금은 은퇴하고 수원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고려대 법대를 나온 성식이는 사법연수원 마치고 나와서 바로 변호사로 활동해서 지금은 수원에서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면서 중견 변호사로 활약하고 있는 것 같다.
그 외에도 경찰대학을 나와서 공무원으로 봉사하는 제자도 있고 소방서에서 힘들지만 다른 사람들을 위해 열심히 봉사하는 제자, 경찰이 되어 우리를 도와주는 제자, 자기 사업으로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제자도 있다. 또 한가지 특이한 것은 우리 반에서만 박원순, 박상원, 장준호 3명이 미대를 갔다. 우무길 미술 선생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각자의 위치에서 우리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잘 감당하는 많은 제자들이 참 자랑스럽고 뿌듯하다. 다행히 sns 덕분에 얼굴을 맞대고 만나지는 못해도 서로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는 제자들도 있어서 참 감사하다.
너무 똑똑한 제자들은 일이 바빠서 연락조차 안 되는 경우도 있다.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나와서 IBM에 들어간 재호는 아무리 연락처를 수소문해도 안 되는데 오늘 용희의 추측에 의하면 아마 미국 본사로 갔거나 아니면 그 분야의 기업체에 스카우트되어서 국내에 없을 거라고 말했다.
자식도 너무 똑똑한 자식은 부모의 자랑이긴 하지만 자주 만나기 어려운 것처럼 제자도 그런 것 같다.
명문대 출신 제자들만 말한 것 같아서 좀 민망한 감이 있긴 하다. 이 외에도 고대, 성균관대, 경희대등 여러 명이 있지만 일일이 언급하지 못하겠다.
제자들이 대학 들어간 후에 여러명이 나를 찾아왔다. 이들의 이야기에 의하면 당시 우리 반 제자들은 거의가 다 서울 시내 4년제 대학을 갔다고 한다. 그렇지 않더라도 사회 각 분야에서 성실하게 자기 맡은 일들을 잘 감당하고 있는 소식을 들으면 정말 감사하고 자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