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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사람
동호 만나다 본문
동호가 미국에서 혼자 왔다.
신실하고 좋은 친구는 몇 년 만에 만나도 항상 만나온 사람처럼 느껴진다.
2주 가량 있다가 돌아간다고 한다.
밴댕이 무침이 먹고싶다고 해서 아내와 셋이 강화 풍물시장에 있는 철이네 가서 맛나게 먹었다.
밴댕이는 우리 나라 근해에서 1년 내내 잡힌다고 한다.
강화도 부근에서는 5~6월에 산란할 때 잡힌다고 한다.
10시 반쯤 집에서 출발해서 밥 먹기 전에 전등사 구경하고 식당으로 가다.
돌아와서는 충정교회 카페에서 차 마시고 이야기하다 헤어지다.


야차상이지만 나부상으로 와전되어 재미있는 설화가 되었다.
대웅전 지붕을 떠받치고 있는 목각상을 벌거벗은 여인인 나부상(裸婦像)이라고 하는데 거기에는 대웅전 중수를 맡은 도편수가 달아난 여인에 대한 배반감으로 조각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그러나, 그 목각상이 원숭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것은 한글대장경 《육도집경》에 나오는 석가모니의 전생 이야기에서 비롯된다.
전생에 석가모니는 원숭이 500마리를 거느린 원숭이 왕이었는데 무리를 안전하게 지키고자 자신을 희생한 일이 있었다.
그 이야기에서 착안하여 원숭이들의 석가모니에 대한 끝없는 존경심을 표현하기 위해 네 마리 원숭이들이 처마를 받들어 지붕을 들고 있게 배치했다는 것이다.
https://ko.m.wikipedia.org
나부상 전설은 이렇다.
옛날, 대웅전을 고쳐 지을 때 이야기다.
이 일을 맡은 사람 중에 마음씨 착한 노총각 목수가 한 사람 있었다.
아침 해가 뜨면 일을 시작하고 해가 지면 일을 마치는 일과가 반복되던 어느 저녁, 그는 절 밑의 마을에 내려갔다.
그곳 주막에 들러 고향 생각을 하며 술을 마시다 그만 주막집 아가씨와 마음이 맞아 사랑을 나누게 되었다.
노총각이 주막을 찾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두 사람의 사랑은 깊어갔고 드디어 둘은 결혼을 약속하게 되었다.
노총각은 매달 나오는 그의 품삯을 모두 그녀에게 맡겼다.
앞으로 그의 아내가 될 사람이니 집안 살림은 그녀가 맡아서 해 달라는 뜻이었다.
목수는 하루하루 정성을 들여 대웅전 공사를 하게 되었다.
대웅전 공사가 끝나는 날, 노총각은 사랑하는 아가씨와 함께 고향 부모님을 찾아간다는 기대감으로 주막을 찾아갔다. 그러나 평상시에 반갑게 맞아 주던 아가씨는 보이지 않고 늙은 주막집 주인이 근심스런 얼굴로 노총각을 대신 맞이했다. 결혼을 약속한 그 착하고 아름다운 여자가 자신이 맡겨 놓은 돈을 모두 가지고 도망을 간 것이었다.
하늘이 무너질 것 같은 엄청난 일에 그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녀에게 맡겨 놓은 돈도 아까웠지만 목수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만든 것은 장래를 약속했던 여자로부터 배신을 당했다는 것이었다.
며칠 동안 술에 취한 채 거리를 헤매던 목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생각했다. 그리고는 결심했다.
“그 여자에게 복수를 해야겠다.
이 넓은 세상에서 그녀를 찾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은 나무를 깎고 집을 짓는 일 뿐이니 이것으로 그녀에게 복수를 해야겠다.”
그녀의 벌거벗은 모습을 나무 조각상으로 만들어 지붕의 추녀 밑에 집어넣기로.
목수는 그녀의 조각상을 만들면서 이러한 마음을 가졌다.
첫째, 그녀가 많은 사람들로부터 영원토록 창피를 당할 것.
대웅전을 찾는 사람들 모두가 그녀의 벌거벗은 모습을 쉽게 쳐다볼 수 있게 하고 싶었다.
둘째, 그녀가 영원히 무거운 짐을 지고 신체적으로 고통을 당할 것.
기와집의 지붕은 상당히 무겁다.
그것을 무릎을 쭈그리고 앉아 두 손으로 받치고 있으면서 두고두고 육체적 고통을 받게 하고 싶었던 것이다.
셋째, 영원히 그 자리에서 자신이 지은 죄를 회개할 것.
아침저녁 스님들이 대웅전에서 부처님에게 예불을 올릴 때, 좋은 말씀을 가장 가까이서 듣고 회개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그러한 마음으로 목수는 네 개의 벌거벗은 모습의 여인 조각상을 만들어 대웅전 지붕 밑 네 귀퉁이에 집어 넣었다.
이 나부상이 더욱 재미있는 것은 네 가지 조각이 제각각 다른 모습이라는 점이다. 옷을 걸친 것도 있고 왼손이나 오른손으로만 처마를 떠받든 조각도 있으며 두 손 모두 올린 것도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사랑을 배신하고 욕심에 눈 먼 여인을 징계하고자 하는 뜻만은 아닐 것이다.
도망간 여인이 잘못을 참회하고 세상을 올바르게 살아가라는 염원도 들어있는 것이다.
또 그런 조각상을 보게 될 후대의 사람들에게 부처님의 자비로운 마음을 본받으라는 뜻도 담겨 있으리라.
일부 학자들은 전등사 대웅보전 추녀 밑 조각상들을 부처님의 전생 이야기에 등장하는 원숭이로 해석하기도 한다.
또 다른 일부 학자들은 나부상이 원나라 제국대장 공주라고 주장한다.
충렬왕의 첫 부인인 정화궁주가 자신을 괴롭히는 두 번째 부인인 제국대장 공주를 조각으로 형상화하여 지붕을 받치는 벌을 줬다는 것이다.
정화궁주는 충렬왕과 태자 시절 1남 2녀를 낳고 14년간 부부로 지냈다.
그런데 남편이 원나라 세조(쿠빌라이 칸)의 막내딸인 제국대장 공주와 정략결혼하자 후궁으로 전락해 제국대장 공주로부터 온갖 괴롭힘을 당했다. 충렬왕과의 만남이 금지되고 별궁으로 쫓겨났다.
고난의 시기에 정화궁주는 전등사에 옥등과 대장경을 전하였다.
전등사(傳燈寺)라는 사명(寺名)도 정화궁주가 전한 옥등에서 기인한 것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전등사 대웅보전의 나부상은 보면 볼수록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참고 : 전등사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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