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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사람
백사실계곡 (白沙室溪谷) 25.07.31 본문
서울 시내에 아직 사람들의 발길이 그리 많이 닿지 않은 계곡이 있다고 해서 가게 되었다.
전철 녹번역 3번 출구로 나와서 앞으로 조금만 가면 버스 정류장이 있다.
7730번 타고 세검정.상명대 입구에 내려서 걸어간다.
세검정은 몇 차례 왔지만 다시 한번 살펴보고 계곡으로 간다.
백사실 계곡은 북악산 아래 있는 골짜기로 백석동천으로도 불린다.
계곡을 올라가서 직진하면 북악 스카이웨이 팔각정으로 올라갈 수 있고 오른쪽 창의문을 지나면 건너편에 인왕산 수성동 계곡이 있다.
동천은 신선이 사는 경치 좋은 곳을 말한다.
구미 금오산 아래 금오동천, 강화 마니산 아래 함허동천 등이 있다.
이곳 백석동천에 별서터가 있고 건물의 돌기둥이 남아 있다.
조선 중기의 유명한 문신이었던 이항복의 호가 백사이고 그의 별서가 이곳에 있어서 계곡의 이름이 백사실이라는 구전이 전해 내려오는 곳이고 문헌에 의하면 추사 김정희가 이곳의 별서터를 구입해서 자신의 별서를 지었다고 한다.
백사실계곡의 별서터가 추사 김정희와 관련이 있다는 문헌 기록은 2012년에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발견되었다.
김정희가 친구 허필과 주고받은 시와 주석에 관련 내용이 언급되어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구구한 문자에도 정령(정신)이 깃들었으니, 선인(신선)이 살던 백석정(白石亭)을 예전에 샀다."
이 시에 대한 주석에 "나의 북쪽 별서(北墅)를 말한다.
백석정 옛터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친구 김유근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아버지가 엊그제 잠깐 북쪽 별서로 나가셔서 며칠 동안 서늘한 바람을 쐬실 생각이었다"고 언급하며 백석동천 별서를 '산루(山樓)'라고도 표현한 기록이 있다.
이 기록들을 통해 추사 김정희가 백사실계곡의 별서터를 매입하여 정자를 짓고 600평 규모의 별서로 활용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김정희는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 집안이었다.
김정희의 증조부인 김한신(金漢藎)은 영조의 둘째 딸인 화순옹주(和順翁主)와 결혼했고 이로 인해 김정희의 집안은 왕의 사위 집안, 즉 왕실의 외척이 되었다.
또 김한신은 영조의 계비인 정순왕후(貞純王后)의 7촌 숙부이기도 했다.
따라서 김정희는 정순왕후와도 먼 친척 관계였다.
흥선대원군이 어렸을 때 추사 김정희의 문하에서 글과 그림을 배웠다.
계곡은 길지 않아서 나는 산 위 등산로로 올라갔다가 별서터로 내려와서 구경하고 다시 현통사로 돌아와 경내를 돌아본 후 능금마을로 갔다.
현통사는 작은 절이지만 전각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고 제월당의 현판이 재미있다.
별서터에는 돌기둥과 초석들이 남아 있고 연못이었던 곳으로 보이는 터에는 고마리가 가득 자라고 있다.
창의문을 거쳐 경복궁역으로 가서 전철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시간은 2시간 정도 걸렸다.

세검정
세검정이라는 명칭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궁궐지 宮闕志》에 의하면, 인조반정 때 이귀(李貴)·김류(金瑬) 등의 반정인사들이 이곳에 모여 광해군의 폐위를 의논하고, 칼을 갈아 씻었던 자리라고 해서 세검정이라 이름지었다고 전한다.
《동국여지비고 東國輿地備攷》에는 “세검정은 열조(列朝)의 실록이 완성된 뒤에는 반드시 이곳에서 세초(洗草 : 史草를 물에 씻어 흐려 버림)하였고, 장마가 지면 해마다 도성의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물구경을 하였다.”고 적혀 있다.


정자는 앞에서 보면 T자 형태이다.




사진으로 남은 세검정

겸재 정선 세검정
지본담채 62.4 * 23.0cm 국립중앙 박물관


겸재 정선 세검정

단원 김홍도 세검정


세검정 터
Site of Segeomjeong
洗剑亭址 | 洗剑亭址
서울특별시 기념물
세검정 터는 한양도성의 북문인 창의문 밖 탕춘대성 안쪽에 위치한다.
이곳은 비봉과 문수봉, 보현봉, 북한산성에서 시작되는 홍제천이 흘러 문학과 회화 작품의 배경이 되기도 하였다.
건립시기는 총융청을 탕춘대로 옮기고 난 후인 영조 24년 경으로 추정된다.
세검이란 이름은 광해군 15년(1623)의 인조반정의 주역들이 이곳에서 광해군의 폐위를 의논하고 칼을 갈아 날을 세웠다고 하는 데서 유래했다.
현재의 건물은 1944년에 불에 타 사라진 것을 겸재 정선(1676~1759)이 그린 세검정도를 바탕으로 1977년에 복원한 것이다.
숙종대에 북한산성과 서울 한양도성 사이에 탕춘대성이 건설되면서 이 일대가 서울의 북방관문으로 중요하게 여겨졌으며 무신들의 휴식처로 자주 이용되었다.
또한 부근에 종이를 만들던 조지서가 있어서 실록의 편찬이 끝나면 종이를 씻는 세초작업이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세검정터는 중요한 역사적 사건들의 무대이자 경치가 좋은 계곡에 정자를 지어 자연을 즐겼던 조선시대 사람들의 생활문화를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세초(洗草) 유적
세검정(洗劍亭)이 들어선 넓적한 바위를 '차일암(遮日巖)'이라고 하였다.
차일암 일대는 경치가 아름다워 조선 초부터 사대부가 노니는 곳으로 이름난 곳이었다.
조선시대에 실록이 완성되면 이곳 차일암에서는 실록을 편찬하는 데 쓰인 사초(史草) 등의 초고를 물에 씻어 먹물을 뺄 때 사용하던 '세초(洗草)' 의식을 거행하였는데, 이 날에는 실록 편찬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노고를 위로하고 '세초연(洗草宴)'이라는 잔치도 베풀어졌다.
이곳에서 300m 남짓 북쪽인 상명대학교 계곡 공사 중 발견된 조지서 터라는 곳에서 사초를 할 때 인력 동원이 어렵고, 북한산에서 흘러내리는 홍제천의 맑은 물이 있어 세초에 적합한 곳이었으므로 이곳에서 세초를 실시하였다는 규정이 있었다.
실록 편찬에 쓰였던 자료들을 세초해서 없애는 것은 대대로 관리되던 사초 등의 유출을 막아 완성된 실록에 대해 시비거리를 없애기 위해서였다.
또, 사초 등의 초고가 방대하였으므로 그 종이를 재활용하는 것이었다.

이 위에 탕춘대가 있었다고.




이 정자 지나서 마을길로 들어간다


이 계단으로 올라가고

인왕산이 이렇게 보인다.


이 팻말 뒤에 나 있는 계단길로 가도 별서터로 내려갈 수 있다.

산길로 올라간다.

가파르지 않은 능선길이다.

여기서 별서터로 내려간다

별서터 유적에 건물의 돌기둥이 남아 있다.

서울 부암동 백석동천
명승
백석동천은 조선시대의 별서가 있었던 곳이다. 자연경관이 수려한 곳에 진흙돌과 연못 등이 남아있고, 인근에 ‘백석동천’, ‘월암’ 등의 글씨가 새겨진 바위가 있다. ‘백석동천’의 ‘백석’은 ‘백악(북악산)’을 뜻하고, ‘동천’은 ‘산천으로 둘러싸인 경치 좋은 곳’을 말한다. 따라서 ‘백석동천’은 ‘백악의 아름다운 산천으로 둘러싸인 경치 좋은 곳’이라는 뜻이다.
백석동천은 지리지에 ‘백석정’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문헌 기록이 충분하지 않아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2012년 국립문화재연구소의 ‘명승 경관조사 연구사업’을 통해 백석동천 일대가 한때 추사 김정희(1786~1856)의 소유였음을 입증하는 문헌 자료를 확인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백석동천은 백석정, 백석실, 백석사를 일컫는 말로, 이세보, 김정희 등 당대 문인들이 소풍을 하며 글을 남겼던 곳이다.
특히 김정희의 '백악천'이라는 글에서 '내로 와서 확인한 결과, 유사시나 비상시에는 식수를 확보하고, 7년 동안 백석정 나루터에서 확인하였다'라는 내용이 있었다.
또한 2010년 7월부터 10월까지 진행된 백석동천 발굴 조사를 통해 별서의 모습을 유추할 수 있었다.
발굴 결과, 계곡을 따라 건물을 짓고 연못을 파는 등 자연을 활용한 흔적을 확인했다.
연못과 물길도 있었는데, 이는 조선시대의 별서 정원 양식을 보여준다.
그 외에는 별서의 주인을 알 수 없었다.
백석동천은 마을의 쉼터 역할을 하는 곳으로, 주변 경치와 역사적 의미를 감상할 수 있는 장소이다.
※ 별서란: 세속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곳으로, 산이나 강변에 지은 주거지를 말한다.
Baekseokdongcheon in Buam-dong, Seoul
Scenic Spot
Baekseokdongcheon was the site of a byeolseo (別墅, detached villa) during the Joseon Dynasty. Remains of mudstones and a pond are still present in this area of beautiful natural scenery, and nearby rocks bear inscriptions such as 'Baekseokdongcheon' and 'Wolam'. 'Baekseok' in 'Baekseokdongcheon' refers to 'Baegak (Bugaksan Mountain)', and 'dongcheon' refers to a 'scenic spot surrounded by mountains and rivers'. Therefore, 'Baekseokdongcheon' means 'a beautiful scenic spot surrounded by the mountains and rivers of Baegak'.
Although Baekseokdongcheon is recorded as 'Baekseokjeong' in geographical texts, its exact location was unknown due to insufficient historical records. However, a 2012 'Scenic Landscape Survey Research Project' by the National Research Institute of Cultural Heritage confirmed through historical documents that the Baekseokdongcheon area was owned by Chusa Kim Jeong-hui (1786-1856) during his later years. According to research findings, Baekseokdongcheon refers to Baekseokjeong, Baekseoksil, and Baekseoksa, and was a place where literati of the time, including Yi Se-bo and Kim Jeong-hui, wrote and left their mark. In particular, Kim Jeong-hui's writing 'Baegakcheon' contained content stating, "After coming inside and checking, it was confirmed that water could be secured for emergencies or contingencies, and it was confirmed at the Baekseokjeong ferry over seven years." Furthermore, through excavation surveys of Baekseokdongcheon conducted from July to October 2010, it was possible to infer the appearance of the byeolseo. The excavation revealed traces of utilizing nature, such as constructing buildings along the valley and digging ponds. Ponds and waterways were also found, which shows the style of Joseon Dynasty byeolseo gardens. Other than that, the owner of the byeolseo is unknown.
Baekseokdongcheon serves as a resting place for the village, where one can enjoy the surrounding scenery and historical significance.
※ Byeolseo: Refers to a residence built in the mountains or by rivers, away from worldly constraints and in harmony with nature.



별서 옆 연못에 고마리가 가득 자라고 있다.



연못 앞에도 정자가 있었다.

현통사

현통사 출입문에 사천왕이 있다.

출입문 바로 앞에 계곡물이 흐른다.

아래 위는 현통사 대문의 사천왕들


문수, 보현 동자상

귀막고, 입막고, 눈막고 3년씩

대웅전

대웅전 내부

대형 화분에 연꽃이 잘 피었다.



수련도 피었고

산신각

산신령

독성각

독성각 안의 나반존자,
더운 여름에 촛불을 너무 많이 켜놔서 문을 열자마자 화끈했다.
나반존자 더워 죽겠다.

칠성각

칠성탱

제월당, 현판의 월자가 옆으로 누웠다.
이 안에서 달을 보려면 처마 때문에 옆으로 누워야 볼 수 있다고 한다.
문이 잠겨 있어서 내부에 뭐가 있는지 볼 수 없었다.
옛날 중국의 황정견이란 분이 주돈이의 성품을 말하면서 광풍제월[光風霽月]이란 말을 썼다.
비가 갠 뒤의 맑게 부는 바람과 밝은 달이라는 뜻.

지장보살

범종각

법고 빼고 다 있다.

참나리도 피었다.

약사불

포대화상


일붕스님 시

현통사 옆에 별서터로 가는 계단길이 있다.

구절초일까? 쑥부쟁이일까?

별서터 가는 길

백석동천 각자바위

서울 부암동 백석동천
명승
백석동천은 조선시대의 별서가 있었던 곳이다.
자연 경관이 수레한 곳에 건물터와 연못등이 남아 있으며 인근에 "백석 동천", "월암" 등의 각자바위가 있다.
백석동천의 '백석'은 '백악(북악산)'을 뜻하고 '동천'은 '산천으로 둘러싸인 경치 좋은 곳'을 말한다.
따라서 백석동천은 백악의 아름다운 산천으로 둘러싼 경치 좋은 곳이라는 뜻이다.
한편 백석동천은 인근 주민들에게 백사실계곡이라고 불리면서 이항복의 별장지였다고도 전해지는데 이는 이항복의 호가 백사인 것에서 유래하여 구전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에는 연못과 육각정의 초석이 그대로 남아 있고 그 뒤의 높은 곳에는 사랑채의 돌계단과 초석이 잘 남아있다.
사랑채 뒤의 배드민턴 연습 장터에는 안채가 있었다고 한다.
백석동천은 마을과 떨어진 한적한 곳에 있으며 수려한 자연경관과 건물들이 잘 어우러져 있어서 격조높은 별서 건축의 모든 요소를 갖추고 있다.

능금마을 가는 길

아래 위는 능금마을


이 사진에 있는 빨간 차 오른쪽 계곡 따라 올라가면 북악 스카이웨이 팔각정이라고 한다.

나는 창의문쪽으로 올라간다.

칭의문으로 간다.

찻길 아래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도 있다.

창의문

윤동주 문학관

김신조 일당이 왔을 때 경찰서장이 싸우다 순국했다.

고 최규식 경무관

정종수 경사

경복궁역으로 오다가 본 목수국

목수국

경복궁역에서 집으로 돌아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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