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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Logos)과 도(道)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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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Logos)과 도(道)

singingman 2025. 8. 2.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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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Logos)과 도(道)

노자를 읽다보니 도덕경 25장에는 아래와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어떤 것이 혼돈 속에 이루어져 천지보다 먼저 생겨났다.
고요하고 아득하며 홀로 서서 변하지 않고, 두루 행하면서 위태롭지 않으니, 천하의 어머니가 될 수 있다.
나는 그 이름을 알지 못하여, 억지로 '도'라고 부르고, 억지로 '대(大)'라고 이름 붙인다.
크면 나아가고, 나아가면 멀어지고, 멀어지면 되돌아온다.
그러므로 도가 크고, 하늘이 크고, 땅이 크고, 왕 또한 크다.
세상에는 네 가지 큰 것이 있는데, 왕이 그중 하나이다.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으며,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
(有物混成, 先天地生. 寂兮寥兮, 獨立而不改, 周行而不殆, 可以為天下母. 吾不知其名, 強字之曰道, 強為之名曰大. 大曰逝, 逝曰遠, 遠曰反. 故道大, 天大, 地大, 王亦大. 域中有四大, 而王居其一焉. 人法地, 地法天, 天法道, 道法自然.)"

성경 요한복음 1장 1절에는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도덕경의 '도'와 요한복음의 '말씀'은 태초부터 있었다는 주장입니다.

소리나 문자가 없는 가운데도 할 말이 전달됩니다.
연꽃만 보고도 부처님이 하고자 하는 말을 가섭존자는 이해했습니다.
말이나 문자로 표현되는 순간 그 실체는 부정확한 것이 됩니다.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져야 합니다.
노자 1장에 나오는
도가도비상도 명가명비상명(道可道非常道 名可名非常名)입니다.
우리의 인식 범위를 넘어선 대상을 언어로 표현한다면 오류가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인간이 신을 완벽하게 이해하거나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신이 아니더라도 우리의 인식 범위를 넘어서는 것들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우주의 끝은 있을까요?
만약 있다면 그 이후에는 뭐가 있을까요?
또다른 우주가 있을까요?
시간의 시작점은 어디부터일까요?
영원이란 말을 우리가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인가요?
이것을 알기 위해 참선을 해야한다고 말하는 스님을 본 적이 있습니다.
참선으로 알아낼 수 있을까요?
참선으로 알 수 없다 하더라도 해 보는 자체가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는 요한복음 1장 1절의 한문 성경은 太初有道로 번역해서 헬라어 Logos를 道로 번역했습니다.
영어성경 niv는 대문자 Word로 번역했고 우리 성경은 영어 성경을 따라 말씀으로 번역했습니다.
동양의 사상으로 본다면 말씀보다는 道로 번역하는 것이 더 좋다고 말하는 학자들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 1절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라고 말해서 말씀이 하나님이라고 하니 한자 문화권에 사는 우리에게는 조금 생소하게 보입니다.
道가 하나님과 태초에 같이 있었고 이 도가 곧 하나님이라고 했으면 태극 사상과 친숙한 한자 문화권에서는 좀 더 쉽게 그리고 빨리 이해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 말씀은 요한복음 1장의 뒷부분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여기의 태초에 관해서 의견이 분분하지만 인간이 정말로 태초를 설명할 수 있을까요?
그저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믿든지 안 믿든지의 문제로 이해할 수는 없을까요?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다는 표현은 말씀인 하나님이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으니 우리는 인간이 말하듯이 하나님께서 큰 소리로 "빛이 있으라"고 말씀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아무 것도 없는 무의 상태에서 오직 하나님 한분만 계셨는데 누가 들으라고 말씀을 했을까요?
태초나 창조 이전의 우주는 우리 이성이 파악하거나 깨달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고 신앙으로 믿거나 믿지 않을 수만 있는 상태라고 어떤 학자는 말합니다.
그러니까 말씀과 도는 우주가 생기기 전부터 있었다는 것이지요.
말씀인 하나님은 누가 만들었거나 무엇으로부터 생긴 것이 아니고 처음부터 스스로 있는 자(I am who l am)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위에서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고 했으니 도와 자연이 비슷한 부분이 많을 수밖에 없겠습니다.
도가의 사상을 한마디로 표현할 때 무위자연(無爲自然)이란 말을 즐겨 씁니다.
억지로 하지 않고 순리에 따라 자연스럽게 한다는 뜻입니다.
자연스러움의 대표적인 것이 흐르는 물이고 그래서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말도 나왔습니다.
道도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인간도 교육이나 인위적인 노력이 없이 자연 상태 그대로 두면 물처럼 자연스럽고 순수하고 선한 상태가 될까요?

도덕경 25장의 도와 요한복음 1장의 말씀이 비슷한 느낌이 있어서 혼자 해 본 소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