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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 맹씨 행단 17-06-03 본문
아산 맹씨 행단(牙山 孟氏 杏壇)은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 중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건축물이다.
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09호로 지정되었다.
아산맹씨행단은 아산 시내에서 온천동을 거친 뒤 좌부동을 지나 6㎞ 정도 떨어진 지점에 있다.
아산맹씨행단 내에는 맹사성 정승이 심은 600여 년 된 은행나무와 고택이 있는데, 이 건물은 한국에서 제일
오래된 민가이다.
고택 뒤에는 맹 정승과 그의 부친인 희도, 조부 유의 위패를 봉안한 사당으로 세덕사가 있다.
거대한 은행나무가 있어서 행단이라 부른 것으로 추정하나, 공부하던 자리의 의미인 행단이 된 것으로도
추정된다.
조선 전기 청백리로 유명한 고불 맹사성(1360∼1438) 가족이 살던 집으로, 원래 고려 후기에 최영 장군이
지은 집이라고 전하기도 한다.
맹사성은 고려말 · 조선초의 문신으로, 최영 장군의 손주사위이다. 고려 우왕 12년(1386) 문과에 급제하여
춘추관검열, 전의시승 등을 지내고 조선 태조 때에는 예조의랑, 이조참의, 예문관대제학, 우의정의 벼슬을 했다. 사람됨이 소탈하고 조용하며, 효성이 지극하였으나, 조정의 중요한 일을 의논할 때는 과감하게 일을 처리하였다.
‘행단(杏壇)’이란 공자가 제자들을 은행나무 아래에서 가르치던 것에서 연유하여 선비가 학문을 닦는 곳이라는 뜻인데, ㄷ자형 맞배집으로 이곳은 우리나라 일반 백성이 살던 집 중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 가운데 하나로
알려져 있다.
집의 마당에는 600년이 된 은행나무 2그루가 서 있고, 뒷동산에는 느티나무 ·전나무·감나무 들이 넓은 숲을
이루고 있다.
또한 집 앞의 개울가에도 느티나무·버드나무 등이 많이 자라고 있으며, 담장 안 마당에는 채소밭도 만들어져
있다.
이 집을 통해 조선 전기 민가의 모습을 잘 알 수 있다
(위 글은 위키 백과에서 복사해 옴.)
위의 글에서 행단의 행을 은행나무로 쓰고 있지만 원래 공자의 행단은 은행나무가 아니고 살구나무다.
杏이 원래 살구나무를 말한다.
우리 나라에서는 두 나무를 다 의미하지만 원래는 살구나무다.
그리고 선비들이 살구나무꽃이 너무 요염해서 좋아하지 않다보니 이 杏이 은행나무가 되어 버렸다.
그래서 성균관에도 은행나무가 고목이 되어 지금도 서 있다.
최영 장군이 살다가 그의 손녀 사위가 된 맹사성에게 물려줬다는 집 - 솟을 대문으로 되어 있고 대문간만도 7칸이나 되는 큰 집이다.
맹사성은 그러니까 고려와 조선 양 시대를 다 살았는데 최영 눈에 띄었으면 고려의 충신일 것 같은데
조선의 정승이 된 것을 보면 전환기에 세상을 잘 산 거야? 잘 못 산 거야?
맹사성에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어서...
*고개를 숙이면 부딪히는 법이 없다*
열 아홉의 어린 나이에 장원 급제를 하여
스무 살에 경기도 파주 군수가 된 맹사성은
자만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어느 날 그가 무명선사를 찾아가 물었다.
˝스님이 생각하기에 이 고을을 다스리는
사람으로서 내가 최고로 삼아야 할 좌우명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오?˝
그러자 무명선사가 대답했다.
˝그건 어렵지 않지요.
나쁜 일을 하지 말고 착한 일을 많이
베푸시면 됩니다.˝
˝그런 건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이치인데
먼 길을 온 내게 해 줄 말이 고작 그것뿐이오?˝
맹사성은 거만하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그러자 무명 선사가 녹차나 한 잔 하고 가라며
붙잡았다.
그는 못이기는 척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스님은 찻물이 넘치도록 그의 찻잔에
자꾸만 차를 따르는 것이 아닌가.
˝스님, 찻물이 넘쳐 방바닥을 망칩니다.˝
맹사성이 소리쳤다.
하지만 스님은 태연하게 계속 찻잔이 넘치도록
차를 따르고 있었다.
그리고는 잔뜩 화가 나 있는 맹사성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말했다.
˝찻물이 넘쳐 방바닥을 적시는 것은 알고,
지식이 넘쳐 인품을 망치는 것은 어찌 모르십니까?˝
스님의 이 한마디에
맹사성은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붉어졌고
황급히 일어나 방문을 열고 나가려고 했다.
그러다가 문에 세게 부딪히고 말았다.
그러자 스님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고개를 숙이면 부딪치는 법이 없습니다.˝
이런 일도 있었다고 한다.
맹사성은 나들이 할 때 소를 타고 피리 불기를 즐겼다고 한다.
그기 재상으로 있을 때도 고향 온양에 조상의 산소가 있어서 종종 내려갔다.
언젠가는 온양 고을 원님이 그가 내려온다는 소식을 듣고 동네 어귀길에 황토를 깔고 기다렸는데 한식경이나
기다려도 대감 행차는 보이지 않아 속이 타들어가고 있는데 이때 저 멀리서 웬 늙은이가 소를 타고 곱게
깔아놓은 황토길로 들어오고 있었다.
화가 난 원님은 포졸을 시켜 당장 그 노인을 쫓아내라고 했다.
그러자 그 노인은 태연히 내가 고불이니 가서 전하라고 시켰다.
놀란 원님이 달려와서 죄송하다고 말하자 다음부터는 백성들에게 폐를 끼치는 이런 일은 다음부터는
하지 말라고 시켰다고 한다.
오른쪽 위가 포도무늬 벼루.
아래가 평소 아끼던 옥피리.
(우리 전통 악기 분류로 보면 이건 피리가 아니고 소금에 가깝다.
피리는 서를 꽂아서 종으로 부는 악기다. )
왼쪽 옥비녀는 부인 철원 최씨의 것이다.
맹사성은 검은 소를 즐겨 타고 다니면서 피리를 불었다는데...
이 검은 소와 맹사성에 얽힌 일화가 있다.
어느날 어린 아이들 여러 명이 소 한마리를 눕혀놓고 못살게 굴고 있는 것을 맹사성이 보았다.
그래서 그 아이들을 혼내주고 소를 구해 주었다.
그랬더니 이 소가 은혜를 알았던지 맹사성을 따라 왔다고 한다.
그 후 사정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맹사성이 이 소를 잘 타고 다녔다고 한다.
노자는 함곡관을 나갈 때 윤희에게 5,000자에 이르는 도덕경을 써 주고 푸른 소를 타고 나갔다는데
맹사성은 검은 소를 타고 다녔다고...
이 소를 타면 뭔가를 불어야 할 것 같다.
위 그림처럼 소 타고 횡으로 불고 있는 것은 사실 피리가 아니다.
피리는 종적이고 위 사진처럼 부는 악기는 횡적이니까 소금이나 대금이어야 한다.
종적으로 불고 있는 악기는 피리일 수 있지만...
음악에 해박한 지식이 있었던 맹사성이 그렇게 요란한 소리가 나는 피리를 불고 다니지는
않았을 것 같고 그렇다고 보리 피리나 버들피리를 불기야 했겠어?
아마 품위 있는 대금이나 소금을 불지 않았을까?
그런데 어떤 글에 보니까 맹사성이 피리가 아닌 퉁소를 즐겨 불었다고 한다.
퉁소는 상당히 긴 종적이니까 소 등에 앉아서 불기에 퉁소가 적당했을까?
그와 관련된 일화들이 많다.
어느 해 한식, 고불은 온양의 부모님 산소를 찾아 성묘하고 서울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날도 여전히 어슬렁거리며 용인 땅을 지나는데 갑자기 봄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가늘던 빗발이 점점 굵어지더니 어느새 소나기로 변했다.
할 수 없이 주막으로 찾아들어가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
처마 밑에 기리마를 매어놓고 안으로 들어가니 젊은 선비 하나가 이미 아랫목에 자리 잡고 있었다.
본래 검소하여 좋은 옷을 입지 않았고 시골 노인처럼 아무렇게나 걸치고 다니던 차에 옷까지 비에 흠뻑
젖었기에 고불은 문가에 앉아 날이 개기를 기다렸다.
그러자 하인들을 거느리고 앉아 있던 아랫목의 젊은 선비가 심심했던지, “노인장, 이쪽으로 오셔서 편히
앉으시지요.”하고 권하는 것이었다.
젊은 선비는 영남 사람으로 서울에 과거 시험 보러 가는 길이라고 했다.
두 사람은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는 동안 심심풀이삼아 장기를 두었는데 승부는 번번이 맹고불의 승리로
돌아갔다.
그러자 선비가 이번에는 묻고 대답하는 말끝에 ‘공’자와 ‘당’자를 달아서 누구의 말문이 먼저 막히는가
보기로 했다. 먼저 맹고불이 시작했다.
“서울에는 무엇 하러 가는 공?”
“녹사 시험 보러 간 당.”
“내가 합격시켜 줄 공?”
“에이, 놀리는 건 옳지 않 당.”
그러는 사이에 날이 개여 두 사람은 길을 떠나 서울로 올라와 헤어졌다.
그리고 며칠 뒤, 맹 정승이 공무를 보고 있는데 한 젊은이가 녹사 시험에 합격했다고 인사를 하러 왔다.
고개를 들어보니 며칠 전에 만난 그 선비였다.
맹 정승이 장난기가 발동하여 이렇게 물었다.
“어떻게 되었는 공?”
그러자 젊은이는 자신이 인사하러 온 우의정이 바로 며칠 전에 만난 허름한 옷차림의 그 촌로인지라 깜짝
놀라 그 자리에 엎드려 대답하기를, “죽어 마땅하옵니 당!”했다고 하니 그 젊은이도 풍류의 멋을 아는
선비였던 모양이다.
어찌된 영문인가 의아해하는 사람들에게 맹 정승이 자초지종을 이야기해주자 모두가 배꼽이 빠져라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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