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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 & 사직 2018-01-19 본문
겨울 방학이고 전부터 벼르고 있었던 종묘를 가다.
김수근의 제자 건축가 승효상의 건축에 결정적인 계기가 된 두 건물 가운데 하나인 이 종묘는 그의 표현에
의하면 '비움의 미학'을 극대화하고 있는 건축이라고 한다.
종묘는 태조가 계성에서 한양으로 오면서 궁궐 보다 먼저 지으라고 한 건물이다. 그는 종묘를 먼저 짓고
다음에 궁궐과 마지막으로 성벽을 쌓아 도성을 건설한다는 원칙을 세웠다고 한다.
유교 국가인 조선에서는 종묘 사직이 그만큼 중요했기 때문이리라.
태조가 한양을 조선의 도읍으로 정한 후 궁궐의 왼쪽에 종묘를 오른쪽에 사직단을 두어야 한다는 주례에 따라
경복궁 왼쪽에 자리 잡았다.
1394년 10월에 시작해서 1395년 9월에 완성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1608년에 중건했다가 신주의 수가 늘어남에 따라 수차례 건물의 규모를 늘려 지금의
모양이 되었다.
종묘의 중심 건물은 정전과 영녕전이다.
정전은 신실이 19칸이고 여기에 태조를 비롯한 왕과 왕비의 신주 49위를, 영녕전에는 신실 16칸에 34위의
신주를 모셨다.
왕위에서 쫓겨난 연산군과 광해군은 종묘에 들지 못했다.
하지만 왕에서 좇겨났다가 숙종 때 명예를 회복한 단종의 신주는 영녕전에 모셨다.
종묘는 제사 공간과 제사 준비하는 공간으로 크게 나뉜다.
제사를 모시는 공간으로는 정전, 영녕전,공신당,칠사당이 있고 제사를 준비하는 공간으로는 재궁, 향대청,
악공청, 전사청 등이 있다.
종묘는 세계 유일하게 종묘와 제례 그리고 제례악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조선 시대에는 각 계절마다 한 차례 그리고 12월에 한 차례로 5번의 제사가 있었지만 지금은 5월 첫째
일요일과 11월 첫째 토요일에 제례를 거행한다.
전주 이씨 종친회와 왕비 종친회가 함께 하는데 왕은 당연히 다 전주 이씨니까 한 가문이고 왕비는
28가문에서 나왔는데 제례에는 이 가문들이 다 참석하지 않고 보통 한 두 가문만 참석한다고 한다.
유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혼과 백으로 나뉘어서 혼은 하늘로 올라가고 형체인 백은 땅으로
돌아간다(혼비백산)고 생각했다.
그래서 백은 무덤으로 가고 혼은 사당에 모시는 것이다.
문화재 보호를 위해서 평일에는 1시간에 한번씩 - 현재는 한국어 해설은 매시 20분, 외국어는 하루에 몇
차례만 있는 것 같다.- 입장해서 해설사와 함께 1시간 동안 관람한다.
* 종묘 입구
1. 향대청 일원
향대청은 제사 전날 왕이 종묘제례에 사용하기 위해 친히 내린 향, 축문, 폐백과 같은 제사예물을 보관하는 곳이다.
2. 재궁 일원
재궁은 왕이 머물면서 세자와 함께 제사를 올릴 준비를 하던 곳으로 어재실,세자재실, 어목욕청으로 구성되어
있다.
3. 전사청 일원
전사청은 제례를 치를 때 음식을 마련하는 곳으로 평소에는 제사에 사용하는 집기들을 보관하였다.
네모난 마당 둘레에 'ㅁ'자 모양으로 건물이 들어섰고 마당에는 음식을 준비하던 돌절구들이 남아 있다.
4. 정전 일원
정전은 왕과 왕비의 승하 후 궁궐에서 3년상을 치른 다음에 그 신주를 옮겨 와 모시는 건물로 종묘의 가장 중심이 되는 건물이다. 정전 마당으로 들어가는 문은 3개가 있는데 남문은 神門으로 혼백이 드나드는 문이다.
제관들은 동문으로 출입하고 서문으로는 악공, 춤 추는 일무원, 종사원이 출입한다.
정전은 국보 제 227호로 지정되어 있다.
종묘의 각 실에는 신주가 들어 있는데 아래와 같은 모양이라고 한다.원래 5묘만 있어야 하는데 옮기지
않고 그대로 둔 신주(不遷位라고 한다)가 늘어나면서 19칸이나 되었다.
하지만 덕분에 수평감이 가장 탁월한 건물이 되었고 그 엄숙함이 배가 되었다.
각 실마다 신주는 왕과 왕비의 것이 있고 왕비가 복수면 신주도 복수로 있게 된다.
신주는 밤나무로 만들고 가운데 구멍은 귀신이 다닐 수 있게 하기 위해 위와 옆에 뚫었다.
신주[연주]-단종대왕-정순왕후신주
http://cafe.daum.net/SPC2/TZKP/234?q=%C1%BE%B9%A6%20%BD%C5%C1%D6&re=1에서 복사해 옴
5. 정전 악공청
종묘 제례 때 제례악을 연주하는 악공들이 머물고 연습도 하는 공간이다.
6. 영녕전 일원
영녕전을 지은 이유는 천자의 나라인 중국은 종묘에 7신실에 신주를 모시고 제후국은 5신실에 신주를 모시게 되어 있던 당시 원칙에 따라 정전을 함부로 증축할 수 없었다.
신주를 5신실에 모시는 오묘제는 왕조를 일으킨 태조와 현재 왕의 4대 조상을 모시는 제도다. 논쟁 끝에 송나라의 제도를 참고하여 사당을 하나 더 짓기로 하고 영녕전을 세웠다.
7.영녕전 악공청
영녕전에서도 정전과 마찬가지로 제사가 있었으니 악공들이 제례악을 연주하기 위한 건물이다.
8. 종묘 정원
종묘를 나와 사직단으로 가다가 이 칭경비 앞을 지나간다.
왕궁의 좌측에는 종묘가 있고 우측에는 사직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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