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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 망양정 19-04-15 본문

역사 문화 유적지 관광지

울진 망양정 19-04-15

singingman 2023. 2. 26.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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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파랑길 걸으면서 가다.

 

울진군 근남면 산포리의 뒷산 정상부에 위치하고 있다. 동해와 접한 산봉우리에 위치하여 서쪽으로는 관광명소인 성류굴이 있고, 정자 아래로는 망양해수욕장이 펼쳐져 있다.

 

 

망양정은 관동팔경의 하나로, 기성면 망양리 해안에 처음 세워졌으나 1471년(성종 2)에 평해군수 채신보가 현종산 기슭에 옮겨놓았다.

1517년(중종 12)에는 비바람으로 정자가 파손되자, 다음해 안렴사(按廉使) 윤희인(尹希人)이 울진군수 김세우(金世瑀)와 협의하여 중수하였다.

그 후 1590년(선조 23)에 평해군수 고경조(高敬祖)가 중수하였으며, 1690년(숙종 16) 숙종이 안원군(眼原君)에 편액(偏額)을 보내어 게판(揭板)하였다.

1854년(철종 5) 울진현령 신재원(申在元)과 군승(郡承) 남치붕(南致鵬)이 망양정을 이축(移築)할 것을 의논한 뒤 향회(鄕會)에 제안하여 둔산 해안봉을 이축 장소로 정하였으나 추진하지 못하다가, 1860년(철종 11) 울진현령 이희호(李熙虎)가 군승(郡承) 임학영(林鶴英)과 함께 근남면 산포리 둔산동으로 이전하였다.

그 후 망양정이 오래되어 퇴폐된 것을 1957년에 울진군 및 경상북도 울진교육청의 주선으로 보조금과 함께 김용식(金容湜)·장성업(張聖業)·박승갑(朴承甲) 등으로부터 목재를 기증받아 보수에 착수하였으며, 근남면 최중길(崔重吉)의 설계로 1958년에 낙성되었다.

또한 1979년에 보수 정화를 하였고, 1995년에 정자가 15도쯤 기울어진 것을 도·군비 보조로 기둥 및 부식된 부분을 교체하였다. 이후 경북 북부권 문화관광개발사업의 일환으로 2005년 완전 해체하고 새로 지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망양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다포양식 건물로, 지붕은 겹처마에 팔작지붕을 이었다. 평면에는 통칸[通間]의 우물마루를 깔았고, 전후 좌우에는 계자난간을 두른 누마루 형식이다.

 

망양정(望洋亭) 현판은 전임 군수였던 이태영(李台榮)이 썼다. 송강(松江) 정철(鄭澈)의 「관동별곡(關東別曲)」, 조선 숙종이 하사한 ‘관동제1루(關東第一樓)’라는 편액(偏額)과 시(詩), 정조의 어제시(御製詩), 정추(鄭樞)의 시, 심수경(沈守慶)의 시, 임회(林薈)의 시, 박란(朴蘭)의 시, 아계(鵝溪) 이산해(李山海)의 시, 송강(松江) 정철(鄭澈)의 시,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의 시, 「망양정이건상량문(望洋亭移建上樑文)」 등이 정자 안 곳곳에 걸려 있다.

 

디지털울진문화대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에서 위의 글을 복사해 옴.

 

망양정 가기 전에 왼편에 다른 정자가 또 하나 있다.

 

 

이 문으로 들어가도 아직 망양정이 아니다.

 

위 문 안에 있는 조형물들

 

 

 

 

 

 

 

 

 

 

 

 

 

 

 

 

 

 

이 타워에도 올라갈 수 있다.

 

 

 

 

 

타워에서 바라본 바다 풍경

 

 

타워 위에서 인증샷

 

 

 

 

 

 

 

 

 

 

 

 

 

 

 

 

 

울진 대종에서 망양정으로 가는 지름길

 

 

언덕 위에 아주 멋있게 서 있다.

 

 

 

 

 

 

 

 

정조 대왕이 직접 다녀갔다고.

 

 

 

 

 

 

 

 

 

 

 

관동별곡을 쓴 정철의 글도 보인다.

 

 

숙종의 글

 

 

 

 

 

단원 김홍도의 망양정 (금강산 사군첩 중)

 

겸재 정선의 망양정

 

허필의 망양정

허필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어서 찾아봤다.

 

조선 후기 안산 지역에서 활동한 유생이자 서화가.


[가계]
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여정(汝正), 호는 연객(烟客)·초선(草禪)·구도(舊濤). 증조부는 지평 허열(許悅)이다.


[활동사항]
허필은 1735년(영조 11)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관직에 나가지 않고 학문과 시·서·화에 전념하여 삼절(三絶)로 불렸다. 함께 교유한 이용휴(李用休), 이광환(李匡煥), 유경종(柳慶種), 강세황(姜世晃), 조중보(趙重普), 임희성(任希聖), 이수봉(李壽鳳), 유중림(柳重臨), 엄경응(嚴慶膺), 허필(許佖), 안정복(安鼎福), 최인우(崔仁祐), 목만중(睦萬中), 채제공(蔡濟恭), 신택권(申宅權), 신광수(申光洙) 등과 안산십오학사(安山十五學士)로 불렸다.

이용휴가 쓴 지명(誌銘)에는 허필의 청빈하고 소탈한 성격과 문학과 고예술품(古藝術品)을 사랑하는 태도가 잘 묘사되어 있다. 허필은 글씨에 능숙하여 모든 서체에 능통했으며, 특히 전서(篆書)와 예서(隷書)에 뛰어났다고 하였다. 산수, 영모 등의 그림을 그렸으며 산수화는 명대(明代) 심주(沈周)의 양식을 따랐다고 한다.


[저술 및 작품]
저서로는 『선사창수록(仙槎唱酬錄)』과 『연객유고(烟客遺稿)』가 있다. 또 몇 폭의 그림이 전하는데 양식상으로 볼 때 명대 오파(吳派) 또는 미가(米家)[중국 송대의 문인화가 미련(米連)·미우인(米友仁) 부자를 일컬음] 산수 양식의 특징을 보이는 조선 후기의 전형적인 남종화라고 할 수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망양정에서 내려다 본 풍경

 

 

 

 

 

 

 

 

 

 

아래는 지금의 망양정이 있기 전 위치에 있는 두번째 망양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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