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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사람

평해 월송정 19-04-16 본문

역사 문화 유적지 관광지

평해 월송정 19-04-16

singingman 2023. 2. 26.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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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파랑길 걸으면서 가다.

 

월송정은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월송리 송림에 자리 잡고 있다. 영동고속도로 강릉분기점에서 동해고속

도로를 타고 동해시에 이르면 국도 7호선과 만난다. 여기서 우회전하여 국도 7호선을 타고 달려 동해시를

벗어나 삼척시를 지나면 울진으로 접어든다. 국도 7호선을 타고 울진을 벗어나 영덕 방향으로 달리다 보면

도로 건너편에 월송정 입구가 있다.

 

 

1326년(충숙왕 13) 존무사(存撫使) 박숙(朴淑)이 처음으로 지었다. 충선왕 때 안축(安軸)의 기문에 “정자를

여기에 지으면 그 운치가 한송(寒松)·월송(越松)의 두 정자와 서로 갑을이 될 것이다”라고 한 기록이 있으며,

1349년(충정왕 1) 이곡(李穀)이 쓴 「동유기(東遊記)」에 의하면 평해군청에서 5리 되는 곳에 이르면 일만

주의 소나무 속의 정자를 월송이라 하고, 이 월송에 사선(四仙)이 놀고 지나갔다 하여 그 이름이 연유된

것이라고 하였다.

 


또한 옛 군지의 기록에 신라 때 영랑(永郞)·술랑(述郞)·남석(南石)·안상(安祥) 등 네 화랑이 달밤에 솔밭에서

놀았다고 하여 월송정이라 하였다 하며, 월국(越國)에서 소나무 묘목을 가져다 심었다고 하여 월송(越松)

이라고 하였다 한다.

월송정은 조선 중기 연산군 때 관찰사 박원종(朴元宗)이 중건하였고,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낡아서 무너지자

1933년 이 고을 사람 황만영(黃萬英)·전자문(全子文) 등이 다시 중건하였으나 일본군이 강제로 철거하여

터만 남았다. 1969년 울진 출신의 재일교포로 구성된 금강회(金剛會)의 김정문(金正門)·박선규(朴善奎)·

김익만(金益萬)을 비롯한 80여 명이 정자를 신축하였으나 옛 모습과 너무 달라 해체하고 1980년 지금의

정자로 복원하였다. 현판은 최규하(崔圭夏) 전 대통령이 썼다. 월송정은 2008년 마루 부분의 보수공사를

마쳤다.

 

월송정은 정면 5칸, 측면 3칸, 약 86㎡ 규모의 2층 누각으로 지붕은 골기와로 팔작지붕을 이었다.

 

경치가 아름다워 간성의 청간정(淸澗亭), 강릉의 경포대(鏡浦臺), 고성의 삼일포(三日浦),

삼척의 죽서루(竹西樓), 양양의 낙산사(洛山寺), 울진의 망양정(望洋亭), 통천의 총석정(叢石亭)과

더불어 관동팔경의 하나로 꼽힌다.

참고로 관동 8경은 총석정, 청간정, 낙산사, 삼일포, 경포대, 죽서루, 망양정, 월송정 이다.

언젠가 총석정과 삼일포도 갈 수 있는 날이 올까?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에서 복사해 옴.

 

 

월송정 들어가는 입구

 

 

 

 

 

 

 

 

여기는 평해 황씨 시조와 관련이 있는 곳이다.

 

 

 

 

 

 

평해 황씨가 가문을 위해 엄청 투자를 많이 했다.

전 총리 황교안씨가 평해 황씨여서 입구에 이 분이 자유 한국당 당대표가 된 것을 축하한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아래는  황씨 유적지 사진이다.

 

 

 

 

 

 

 

 

이제부터 월송정

 

 

 

 

 

 

 

 

 

 

 

 

 

 

 

 

 

 

월송정에서 바라 본 바다

 

 

바다 쪽에서 바라본 월송정

 

단원 김홍도 월송정

 

겸재 정선 월송정

 

 

 

편액 볼 때마다 한문 공부를 좀 할걸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아름다운 글들을 읽을 수 없으니 아쉽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글을 빌려왔다.

 

白巖居士贊(백암거사찬) - 節齋 金宗瑞(절재 김종서)

余巡到平海遊越松亭 / 有感騎牛子李公作贊(여순도평해유월송정 / 유감기우자이공작찬)

내가 순시하다가 평해에 이르러 월송정을 둘러보다가 기우자 이공의 시에 느낀 바 있어 찬을 하노라.

 

猗歟白巖先生展也(의여백암선생전야)여 勝國藎臣(승국신신)으로 憂治世則闢異端而崇正學(우치세즉벽이단이숭정학)하고 處亂朝則捄賢士而斥小人(처난조즉구현사이척소인)하니 浩瀚乎其文章이密勿乎其經綸(호한호기문장 밀물호기경륜)이라.

아름답도다! 백암 선생이여! 고려의 충직한 신하로 치세를 근심하여 이단을 배격하고 바른 학문을 숭상했으며 어지러운 조정에 처하여 어진 선비를 찾고 소인배들을 물리쳤으니 박식하도다! 그 문장이여! 치밀하도다! 그 경륜이여!

於功名에何曾屈志而冒榮(어공명 하증굴지이모영)이리오 在節義不必殺身而成仁(재절의 불필살신이성인)이니 誰知騎牛之浪跡(수지기우지낭적)이 實與叩馬而同倫(실여고마이동륜)이리오

공명에 어찌 일찍이 뜻을 굽혀서 영화를 꾀했으리오. 절의가 있다고 반드시 몸을 죽여 인을 이루는 것은 아니니 소를 타고 떠돌아다닌 행적이 실로 말고삐를 잡고 무왕의 출정을 말렸던 백이 숙제와 같은 인륜임을 누가 알겠는가.

海上有松(해상유송)하고 松上有月(송상유월)하니 千秋萬歲兮(천추만세혜)여 髣髴相見其精神(방불상견기정신)이리라.

해상의 푸른 소나무와 같이, 소나무 위에 걸린 밝은 달과 같이, 선생의 기백과 절의는 천추만세에 이르도록 빛날 것이다.

※ (역주)

신신(藎臣) : 충성스러운 신하. 호한(浩瀚) : 사물이 풍부함(浩洋). 밀물(密勿) : 부지런히 힘씀(機密). 낭적(浪跡) :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정처 없이 이리저리 떠돌아다님.

고마이동륜(叩馬而同倫) : 옛날 중국의 은나라 말기 산둥반도에 있던 고죽국(孤竹國)의 왕에게 여러 아들이 있었는데 큰 아들은 백이(伯夷)요 셋째가 숙제(叔齊)이다. 이들은 은의 마지막 왕인 주(紂)의 학정을 피하여 수양산(首陽山) 아래에 숨어 살았는데 어느 날 주(周)의 무왕(武王)이 군사 3,000을 이끌고 수양산 아래를 지나 은나라를 치러 가자 이 형제는 제후(諸侯)의 나라가 천자(天子)의 나라를 공격함은 의롭지 못하다고 하면서 무왕의 말고삐를 잡았다는 고사임. 즉 고려조의 신하였던 이행의 절의(節義)를 중국의 백이 숙제와 같이 본 것임. [역주는 '영천선비'님 블로그에서 복사해 옴]

[출처] 해파랑길 울진 구간 24코스 후반(거일 1리~기성 터미널), 25코스 전반부(기성 터미널~망양 1리 정류장)|작성자 sheenbee

 

 

다른 사람의 글을 보니 위의 시를 번역한 것이 있다.

 

滄溟白月半浮松(창명백월반부송) : 푸른 바다 위 흰 달은 절반쯤 솔밭에 떴는데

叩角歸來興轉濃(고각귀래흥전농) : 뿔피리 불며 돌아오니 흥이 더욱 짙어지네

吟罷亭中仍醉到(음파정중잉취도) : 노래 끝난 정자 가운데 술에 취해 쓰러지니

丹丘仙侶夢相逢(단구선려몽상봉) : 붉은 언덕에 신선 짝하여 꿈에 서로 만나네

 

右高麗禮文館大提學騎牛子先生詩也(우고려예문관대제학기우자선생시야) :

오른쪽 글은 고려 예문관 대제학이셨던 기우자 이선생 시이다.

先生以平海黃氏外孫謫居白巖山下(선생이평해황씨외손적거백암산하) :

선생은 평해황씨의 외손으로 백암산 아래로 귀양을 오시어

自號白巖居士每月夜騎牛遊越松亭(자호백암거사매월야기우유월송정) :

스스로 백암거사라 호를 짓고 언제나 달 밝은 밤이면 소를 타고

월송정으로 놀러 오셨는데,

此詩卽其詩所作也(차시즉기소작야) :

이 시는 바로 그때 지으신 것이다.

慈幷金節齋白巖居士贊刻而揭之(자병김절재백암거사찬각이게지) :

이에 절재 김종서공의 백암거사 찬을 아울러 새기고 걸어 놓는다.

[출처] 關東第一樓(관동제일루) 篇額詩 五首(편액시 5수)|작성자 노틀맨 자록

 

 

 

次越松亭詩韻 - 謹齋 安軸 詩

事去人非水自東(사거인비수자동) 옛사람 간 곳 없고 산천은 의구한데

千金遺種在亭松(천금유종재정송) 천년 전 옛 자취 송정 오직 남았구나

女蘿情合膠難解(여라정합교난해) 겨우살이 다정한 듯 서로 엉켜 아니 풀고

弟竹心親粟可舂(제죽심친속가용) 형제 대는 마음 맞아 좁쌀 방아 찧는구나

有底仙郞同煮鶴(유저선랑동자학) 화랑들은 신선처럼 학을 구워 즐겨 해도

莫令樵夫學屠龍(막령초부학도룡) 나무하는 초부들은 용 잡을 뜻 생각 말라

二毛重到曾遊地(이모중도증유지) 반백 되어 예 놀던 곳 이곳으로 다시 오니

却羨蒼蒼昔日容(각선창창석일용) 넓은 바다 푸른 솔은 옛 모습 그대로네.

※ ‘근재집(謹齋集)’에는, 自流는 自東으로, 千年은 千金으로, 遺踵은 遺種으로, 樵斧는 樵父인데, 樵父는 樵夫가 맞겠다.

※ 그 외 오류로 舂[용]자를 春[춘]으로, 種[종]을 跡[적]으로 적은 경우가 있고, 亭松[정송]을 松亭[송정]으로 적은 경우가 있는데, 율시의 운자로 보면 2,4,6,8의 松, 舂, 龍, 容이 東의 운통으로 亭松이 되어야 함.[임정 님 블로그에서 발췌.]

[출처] 해파랑길 울진 구간 24코스 후반(거일 1리~기성 터미널), 25코스 전반부(기성 터미널~망양 1리 정류장)|작성자 sheenbee

 

 

 

環亭松柏大蒼蒼(환정송백대창창) 정자를 둘러싼 송백은 울울창창한데

皮甲鱗峋歲月長(피갑인순세월장) 갈라진 나무껍질 세월이 오래로다

浩蕩滄溟流不盡(호탕창명류불진) 넓고 넓은 푸른 바다는 쉼 없이 출렁이는데

帆檣無數帶斜陽(범장무수대사양) 돛단배는 석양에 무수하게 떠 있구나

弘齋全書(홍제전서)에 실려있는 正祖大王 越松亭 御製詩로, 서예가이자 전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원장인 友山 宋河璟(우산 송하경)이 씀.

[출처] 해파랑길 울진 구간 24코스 후반(거일 1리~기성 터미널), 25코스 전반부(기성 터미널~망양 1리 정류장)|작성

 sheenbee  

 

 

 

顯晦宜如月 (현회의여월) 현달함과 은둔함이여 저 달과 같을 지며

守持乃若松 (수지내약송) 자기 몸가짐에는 저 솔과 같을지라

亭兼二正學 (정렴이정학) 이 정자 두 가지 교훈을 겸비하였으니

便是道中庸 (변시도중용) 이것은 곧 중용을 말함이로다.

晦亭 田子壽(회정 전자수) 시를 菴 宋成鏞(강암 송성용)이 쓴 편액이다.

※ 顯晦(현회) : 세상에 알려지는 것과 알려지지 않은 것, 현달함과 은둔함.

※ 晦亭 田子壽(회정 전자수)는 고려 말 사간(司諫)으로 강원도 안렴사(江原道按廉使)가 되어 평해(平海: 지금의 울진 지역)를 순시하던 중 뛰어난 산수에 반하여 벼슬을 버리고 양진재(養眞齋)와 제월송정(霽月松亭)을 짓고 은거하며 만년을 보냈다.

[출처] 해파랑길 울진 구간 24코스 후반(거일 1리~기성 터미널), 25코스 전반부(기성 터미널~망양 1리 정류장)|작성자 sheenbee

 

 

 

 

해월(海月) 황여일(黃 汝一: 1556 명종 11 ~ 1622 광해 14)의 題 越松亭 憶述郞(월송정 억술랑)

[출처] 해파랑길 울진 구간 24코스 후반(거일 1리~기성 터미널), 25코스 전반부(기성 터미널~망양 1리 정류장)|작성자 sheenbee

 

 

 

한산 이산해 월송정기

 

 

 

 

 

 

 

 

 

 

 

 

 

 

 

월송정 주변에는 사구와 습지가 잘 발달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