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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사람
설악산 영시암 19-10-19 본문
설악산 오세암 가는 길목에 있어서 잠깐 들르다.
한국 민족 문화 대백과 사전에 의하면
삼연(三淵) 김창흡(金昌翕, 1653~1722)이 1648년(인조 26)에 창건.
폐허와 중건을 거듭하다가 6.25후 1994년 백담사 주지 설봉도윤(雪峯道允)이 중창했다.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부친 김수항(金壽恒)이 사사(賜死)된 뒤로는 세상에 진출할 뜻이 없었는데 1705년(숙종 31) 모친상을 마치고 설악산으로 들어가 백담사에서 3년을 지내다가 1707년(숙종 33) 조원봉 남쪽 벽운사 옆에 벽운정사(碧雲精舍)를 지었다.
「삼연 김선생 영시암 유허지비(三淵金先生永矢庵遺墟之碑)」에 의하면 “기축( 1709)년 10월에 다시 절에 돌아왔다가 동쪽 수리(數里)에 있는 조원봉 아래 북쪽에 판잣집 8칸을 짓고 영시암(永矢庵)이라고 이름했다”고 한다. 영시암이란 이름은 김창흡이 이 절에 은거하여 죽을 때까지 세상에 나가지 않겠다는 맹세의 뜻을 담고 있다. 그가 이곳에 머문 지 6년이 되던 해인 1714년(숙종 40) 11월에 공역(供役)을 하던 찬모(饌母)가 호랑이에게 물려 변을 당하자 춘천으로 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사찰은 그 뒤 폐허가 되었다.
1691년에 오세암의 주지였던 설정(雪淨)이 조원봉 북쪽에 승당 24칸과 비각 1칸을 중건하고 자비성상(慈悲聖像)을 봉안했다. 관동 관찰사에게 절의 지난 내력을 알리고 의논한 뒤 유불(儒佛)을 사모하는 공덕자(公德者)들로부터 재물을 모아 절을 중건하고 낙성하였다.
그러니까 이 절은 불교에 호의적인 유림들도 함께 시주해서 절을 지었다는 이야기.
불교 사찰이지만 기원은 유학자가 지었다는 말이네.
永矢는 시위를 떠난 화살이니까 영원히 맹세하다라는 뜻이라고
아버지를 잃은 김창흡이 세상에 다시는 나가지 않겠다는 맹세를 담은 이름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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