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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 한재당 20-01-29 본문

역사 문화 유적지 관광지

김포 한재당 20-01-29

singingman 2023. 3. 13.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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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누리길을 걷다가 가다.

 

 

다음 백과에 의하면

"한재당(寒齋堂)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무오사화 때 28세의 나이로 화를 입은 이목(李穆) 선생의 위패를 봉인한 사당으로 1849년에 건립된 구사당과 1974년에 건립한 신사당이 있다. 구사당은 맞배지붕 목조와가로 정면3칸, 측면2칸이며 일주문과 담장이 둘러 있었으나 신사당 건립으로 인해 현재는 담장만 남아있다. 한편, 신축 사당은 건평 12평의 콘크리트 건물에 위패를 봉안(奉安)하고 숙종43년(1717)과 경종2년(1722)에 추증(追贈)한 교지가 함께 보관되어 있다. 선생은 성종2년(1471)에 출생하여 일찍이 점필제(點畢齊), 김종직(金宗直)에게 학문을 배웠으며 연산군 1년(1495) 문과에 급제하였다. 간사한 노정승 윤필상이 대비를 따라 불교를 받드는 것이 좋다고 성종에게 청했는데 선생이 유생을 거느리고 소를 올려 윤필상(尹弼商)의 간사함을 논박하고 악귀같은 윤필상을 죽이기를 청하였다. 성종이 크게 노(怒)하여 선생에게 묻기를 "네가 나의 대신을 악귀라 하느냐?"하니 선생이 "그의 행동을 사람이 알지 못하니 귀신이라 하였다."고 대답하였다.

왕이 그를 사형에 처하려고 하였으나 다른 대신들의 만류(挽留)로 공주에 귀양보내는 것으로 그쳤다. 이 때부터 바른말 잘하기로 이름이 났으며 연산군 때 성균관(成均館) 전적(典籍)으로 종학사회(宗學司澮)를 겸했다가 연안도평사로 나갔다. 연산군 4년(1498)에 무오사화가 일어나자 윤필상의 모함을 받아 김일손(金馹孫), 권오복(權五福) 등과 함께 사형을 받았다. 형장에 나갈 때 조금도 안색이 변하지 않고 스스로 절명의 시를 짓고 죽었다. 공주에 귀양갔던 인연으로 충현서원(忠賢書院)을 세워 제사하였으며 선생은 학문을 하는 여가에 차(茶)를 기호품으로 애용해 우리나라 최초의 차(茶)관련 문장인 「다부(茶賻)」가 선생의 저서에서 발견되어 선생을 재조명하기 시작했다.선생의 「다부」를 높이 평가하여 선생을 다부(茶父) 또는 다선(茶仙)이라 추앙하고 해마다 한재당을 찾아 헌다례(獻茶禮) 행사를 하고 있다."

 

다음 백과에 의하면 이목은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중옹(中雍), 호는 한재(寒齋). 개국공신 이백유(李伯由)의 현손으로, 아버지는 증호조참의 이윤생(李閏生)이며, 어머니는 남양홍씨(南陽洪氏)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484년(성종 15) 김종직(金宗直)의 문하에 들어가 수업한 뒤로 학문이 크게 성취되어 명성이 알려지게 되었으며, 김굉필(金宏弼)·정여창(鄭汝昌) 등과는 동문수학한 관계이다. 1489년 19세의 나이로 진사시에 합격해 성균관의 유생이 되었는데, 언론이 정중하고 의기(義氣)가 준엄해 동료들의 많은 추앙을 받았다.

1490년 성종이 병환에 있을 때 대비가 무당을 시켜 성균관 벽송정(碧松亭)에 음사를 설치하고 굿을 하자 유생들과 함께 제단을 부수고 무당을 쫓아내니, 대비가 대노해 성종에게 고했으나, 얼마 뒤 성종은 유생들을 처벌하지 않고 성균관 대사성을 불러 “그대가 학생들을 인도해 사습(士習)을 정도(正道)로 돌아가게 하니 내가 가상하게 여기노라.”고 하며 어주(御酒)까지 하사하였다.

1495년(연산군 1) 별시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해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이 되었고, 종학사회(宗學司誨)를 겸하였다. 1496년 영안남도(永安南道: 지금의 함경남도) 병마평사(兵馬評事)를 거쳐 다음 해 호당에 들어 사가독서(賜暇讀書)하였다.

1498년 무오사화 때 훈구파의 모함으로 조의제문(弔義帝文) 사건에 연루되어 김굉필·정여창·김일손(金馹孫)·권오복(權五福) 등과 함께 처형되었다. 1504년 갑자사화 때에 다시 부관참시(剖棺斬屍)되었다가 1506년(중종 1)에 신원되었다.

절의(節義)에 투철하고 시부(詩賦)에 능하였다. 특히 「다부(茶賦)」를 지어 차의 미묘한 미각이 주는 오공(五功)·육덕(六德)을 설파하기도 하였다. 저서로 『한재문집(寒齋文集)』·『이평사집(李評事集)』이 있다.

 

상훈과 추모            

1552년(명종 7) 이조참판, 1707년(숙종 33)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충청남도 공주의 충현서원(忠賢書院)과 전라북도 전주의 황강서원(黃崗書院)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정간(貞簡)이다.

 

 

 

 

 

 

 

 

 

외삼문

 

 

 

 

 

이목은 차를 특별히 좋아했다고 한다.

 

 

 

 

 

내삼문

 

정간사

 

 

 

연지가 상당히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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