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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사람
우이령 2022-04-15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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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이령(牛耳嶺)은 서울 우이동과 경기도 송추 교현리 사이에 위치한 고개입니다.
이 길을 이용하면 양주에서 서울까지 빠르게 갈 수 있었습니다.
牛耳니까 소귀입니다.
이 이름은 도봉산쪽에 소의 귀를 닮은 쇠귀바위가 있어서 이렇게 불린다는 설이 있습니다.
이 길을 걸어보면 도봉산쪽에 아름다운 오봉이 눈에 들어옵니다.
1960년대 말에 김신조 일당이 남침한 1·21 사태로 인해 우이령길이 폐쇄되면서 서울에서 양주 까지는 의정부로 우회해야 했습니다. 2008년에 우이령길 재개방을 논의하다가 결국 2009년 7월 10일에 탐방객 수를 제한하는 조건으로 우이령이 재개방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북한산 둘레길 21구간으로 지정되어 있고 예약을 해야만 통행할 수 있습니다.
거리는 6.8km이고 시간은 1시간 40분 정도면 충분합니다.
교현리와 우이동쪽에서 각각 하루에 500명씩만 통행할 수 있습니다.
송추쪽에서 우이동으로 가는 길은 완만해서 전혀 힘들이지 않고 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이동에서 송추로 오는 길은 초반 30분 가량이 약간 가파른 길을 올라가야 합니다.
이 길을 걷다보니 연암 박지원이 열하일기에 쓴 글이 생각납니다.
그가 연경에 갔을 때 도로를 가득 메우고 다니는 수레들을 보면서 조선의 열악한 도로 사정을 말합니다.
연암은 청나라의 사정을 보면서 부러워합니다.
당시 우리 나라는 모든 물산이 수로가 아니면 보부상들이 이고 지고 다녀야 했습니다.
그 원인은 산지가 많은 우리 나라 지형상 수레가 다닐 수 있는 넓은 도로를 지방에서 서울까지 연결하는 일이 너무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나라는 전국이 고속도로로 다 연결된 덕분에 1일 생활권에 속해 있고 물산이 이동하는데 거의 문제가 없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배로 가야하는 도서 지방이 아니면 반나절 생활권이 다 되었습니다.
우이령길은 환경 보호를 위해서 포장도 되어 있지 않고 계곡과 길 사이에는 목책을 설치해서 사람들이 함부로 내려갈 수 없게 했습니다.
이 길이 언제부터 이 넓이의 길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수레가 다니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연암이 살던 시대에는 이 길이 이렇게 잘 닦여있지는 않았겠지요?
이 길을 편안하게 걸으면서 수백년 전 짐을 지고 이고 다니던 보부상들을 생각해 봅니다.
이 길을 이용하면 양주에서 서울까지 빠르게 갈 수 있었습니다.
牛耳니까 소귀입니다.
이 이름은 도봉산쪽에 소의 귀를 닮은 쇠귀바위가 있어서 이렇게 불린다는 설이 있습니다.
이 길을 걸어보면 도봉산쪽에 아름다운 오봉이 눈에 들어옵니다.
1960년대 말에 김신조 일당이 남침한 1·21 사태로 인해 우이령길이 폐쇄되면서 서울에서 양주 까지는 의정부로 우회해야 했습니다. 2008년에 우이령길 재개방을 논의하다가 결국 2009년 7월 10일에 탐방객 수를 제한하는 조건으로 우이령이 재개방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북한산 둘레길 21구간으로 지정되어 있고 예약을 해야만 통행할 수 있습니다.
거리는 6.8km이고 시간은 1시간 40분 정도면 충분합니다.
교현리와 우이동쪽에서 각각 하루에 500명씩만 통행할 수 있습니다.
송추쪽에서 우이동으로 가는 길은 완만해서 전혀 힘들이지 않고 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이동에서 송추로 오는 길은 초반 30분 가량이 약간 가파른 길을 올라가야 합니다.
이 길을 걷다보니 연암 박지원이 열하일기에 쓴 글이 생각납니다.
그가 연경에 갔을 때 도로를 가득 메우고 다니는 수레들을 보면서 조선의 열악한 도로 사정을 말합니다.
연암은 청나라의 사정을 보면서 부러워합니다.
당시 우리 나라는 모든 물산이 수로가 아니면 보부상들이 이고 지고 다녀야 했습니다.
그 원인은 산지가 많은 우리 나라 지형상 수레가 다닐 수 있는 넓은 도로를 지방에서 서울까지 연결하는 일이 너무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나라는 전국이 고속도로로 다 연결된 덕분에 1일 생활권에 속해 있고 물산이 이동하는데 거의 문제가 없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배로 가야하는 도서 지방이 아니면 반나절 생활권이 다 되었습니다.
우이령길은 환경 보호를 위해서 포장도 되어 있지 않고 계곡과 길 사이에는 목책을 설치해서 사람들이 함부로 내려갈 수 없게 했습니다.
이 길이 언제부터 이 넓이의 길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수레가 다니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연암이 살던 시대에는 이 길이 이렇게 잘 닦여있지는 않았겠지요?
이 길을 편안하게 걸으면서 수백년 전 짐을 지고 이고 다니던 보부상들을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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