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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사람
찬양과 은혜 2010-11-22 본문
1. 들어가는말
오늘날 우리 교회 예배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 가운데 하나가 찬양이며 기독교인의 생활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단어 가운데 하나가 은혜라는 말이다. 그런데 오늘날 이 두 단어만큼 남용이 심한 단어도 그리 흔치 않다. 어떤 면에서는 찬양과 은혜라는 이 용어를 빌어서 엉뚱한 일들도 행하고 있다. 그래서 이 두 용어의 의미와 상관관계를 밝히는 것은 매우 필요하고 중요한 일이라 생각된다.
2. 본론
1) 찬양
성경에 기록된 찬양과 관련이 있는 단어들을 살펴보면 여러가지 단어가 있다. 그 중에 찬송,찬양,시,찬미,노래,송축등이 많이 사용되고 있다. 신.구약을 통틀어서 이 단어들은 하나님과 관련해서 많이 나타나며 특히 하나님의 구원 사역과 아주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이 단어들 가운데 찬송(Hymn)과 찬양(Praise)그리고 시(Psalm)에 관해 살펴보자.
신약성경에 기록된 찬송(Hymn)은 “(베 등을)짜다”라는 헬라어 동사 “Humnos"에서 왔다. 후에 이 단어는 헬라에서 영웅들을 기리는 노래라는 의미로 사용되었고 현재 우리는 교회에서 예배시간에 사용하는 제반 성악음악에 이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좁은 의미에서 찬송은 성삼위를 찬양하고 칭송하는 노래에 한정되어 있다. 그러나 오늘날 이 단어는 점점 그 수용범위가 넓어져서 많은 성가범주의 성악음악들도 포함하고 있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찬송가도 엄격한 의미에서는 ”성가“혹은 ”성가집“이라고 부르는 것이 정확한 용어다. 실제로 구교와 개신교중에도 성공회에서는 성가라고 부르고 있다. 이 성가는 교회에서 사용되는 모든 음악을 다 포함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다음으로 찬양(Praise)이란 단어는 그 의미가 “존경과 감탄의 표현”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현재 우리 찬송가 중에도 찬양으로 적합하지 않은 것들도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즉,기도와 간구,혹은 전도를 주제로 한 찬송들은 그 내용이 하나님의 사랑과 역사에 대한 감탄과 존경이 아니고 자신의 문제를 아뢰거나 혹은 불신자들을 대상으로 기독교를 전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런 음악도 넓은 의미에서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 섭리와 역사를 믿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넓은 의미의 찬양으로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좁은 의미로는 앞에서 언급한 찬송은 “찬양의 노래”라고 정의할 수 있다.
다음으로 시(Psalm)는 원래 구약의 시편을 가리키는 것이며 이 시편의 원 히브리어 제목은 “찬양의 책”이다.원래 이 책은 읽기 위한 것이 아니고 노래하기 위한 책이다. 그래서 중세 교회에서와 철저한 칼빈주의 교파에서는 지금도 이 시편가를 회중의 찬송으로 혹은 성가대의 음악으로 많이 사용하고 있다. 이 시편의 내용도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있으나 전통적으로 시편을 예배시간에 사용하는데 별 저항감이나 거부감을 가진 적이 없다.
마지막으로 오늘날 흔히 사용하고 있는 복음성가등을 골로새서 3정 16절 혹은 에베소서 5장 19절의 “신령한 노래”에 적용하고 있으나 정확하게 그 음악의 종류를 알아내기는 어렵다.
2.은혜
신학적으로 은혜(Hessed)라는 말은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호의”라고 설명할 수 있다. 넓은 의미로 우리 삶의 모든 부분이 다 이 단어로 설명될 수 있다. 그러나 때로는 이 말이 잘못 적용되는 경우를 교회에서 종종 본다.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않고 미봉책으로 덮어두거나 그냥 지나치려고 할 때 “은혜스럽게” 넘어가자고 하는 것은 은혜라는 말을 잘못 사용하는 한 예라고 생각된다. 찬양과 관련해서도 이 단어는 흔히 잘못 사용되고 있다. 어떤 좋은 음악이 교회안에서 연주되었을 때 그 음악을 듣는 많은 사람들이 “은혜 받았다”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한다. 그런데 이런 많은 경우에는 그 음악이 감동적이었다는 표현을 그냥 은혜받았다고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연주된 음악이 어떤 음악인지 잘 모르는 교인들이 교향곡이나 협주곡과 같이 원래 작곡된 의도가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또 연주자도 그런 의도가 없이 연주했다고 하더라도 그냥 관습적으로 음악이 훌륭하면 은혜받았다고 표현한다. 이런 경우의 정확한 표현은 그 음악이 감동적이었다거나 또는 훌륭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리로 설령 연주된 음악이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한 의도로 작곡되었고 연주자도 그런 의도로 연주했다고 하더라도 그 음악 자체가 우리에게 은혜를 줄 수 없고 연주자인 사람도 우리에게 은혜를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은혜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값없이 주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어떤 음악을 듣고 하나님의 위대하심이나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섭리,전능하심등을 다시 한번 상기하고 그 음악이 동기가 되어서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한번 깨달을 수는 있을 것이다. 물론 우리가 좋은 음악을 듣고 정서적으로 감동할 수 있는 그 자체를 하나님의 은혜라고 보는 넓은 의미에서는 은혜받았다는 말이 어느 정도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교인들이 찬양을 하는 목적에서 은혜가 잘못 이해되고 있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근본적으로 찬양은 성삼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지 찬양이 하나님으로부터 무엇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즉, 이미 구원받은 성도들이 그 구원의 사랑에 감사해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찬양이지 은혜받기 위한 수단으로 하나님께 찬양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이점이 잘못 이해되면 은혜와 정서의 고양이 오해되거나 혼돈되어서 흥분된 심적 상태를 은혜 그 자체로 생각하는 일이 발생한다.
손뼉을 치거나 타악기를 요란하게 연주하거나 몸을 심하게 움직임으로 심리적으로 흥분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래서 이런 과정에 의해서 심리적으로 흥분된 상태를 은혜라고 이해하는 사람들은 그 은혜를 받기 위해서 더욱 더 열광적인 음악과 연주수단을 찾게 되는 것이다.
3. 맺는 말
결론적으로 찬양은 이미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마땅히 하나님께 돌려드릴 행위이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입술로 하나님을 찬양한다고 하더라도 그 찬양이 어떤 의미를 가지겠는가? 성경은 매우 여러번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당위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들이 한번도 은혜받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이미 받은 은혜의 한 표현방법이지 은혜를 받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게 될 때 그분의 은혜와 사랑을 깨닫게 되고 충분히 영광을 돌려드리게 될 때 당연히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로 우리가 생활에서 느끼고 깨닫는 모든 것을 은혜라고 말하는 것은 타당하게 보인다. 그러나 이 순서가 바뀌어서 정서의 흥분을 위한 요란한 연주로서 심리적 만족을 얻는 그 자체를 은혜라고 보는 견해에는 많은 문제점이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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