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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동(食寺洞)의 유래 2022-08-14 본문
구파발에서 원당을 지나 일산 신도시로 들어오는 길에 식사동(食寺洞)이라는 동네가 있습니다.
지금은 동국대학교 병원도 들어와 있고 대단위 아파트 단지도 있습니다.
이 동네 이름에는 고려의 마지막 왕인 공양왕의 가슴 아픈 사연이 있습니다.
이성계 일파의 압력으로 개성에서 고양으로 피해왔지만 잠자리와 음식을 구하기도 어려웠던 공양왕에게 이곳의 절에 있는 스님이 잠자리와 음식을 구해주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곳의 지명이 식사동이 되었다고 합니다.
공양왕은 이성계 일파가 우왕과 창왕이 왕씨가 아니라고 하는 소위 우창비왕설에 따라 두 왕을 축출하고 허수아비로 앉힌 왕입니다.
그러니 왕좌에 앉아 있어도 얼마나 불안했겠습니까?
얼마후 이들은 공양왕을 원주 삼척등지로 추방하다가 결국에는 죽이고 맙니다.
힘이 없으면 왕도 이렇게 됩니다.
현재 공양왕의 무덤으로 알려진 곳은 삼척과 고양 두 곳에 있습니다.
어느 곳에 공양왕이 묻혔는지는 지금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아주 최근에는 강원도민일보에 간성에 있는 간성릉이 공양왕의 무덤이라는 주장도 실려있습니다.(2022.8.12일자 참조)
삼척에서 살해되어 묻혔다가 고양으로 시신을 옮겼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힘이 없는 왕은 죽어서도 편안히 있을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고양시에 가까운 연천에는 신라 경순왕의 무덤이 있습니다.
그는 신라의 마지막 왕으로 고려를 건국한 왕건에게 국운이 다한 신라를 바치고 맙니다.
왕건은 신라의 구세력이 결집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경순왕의 무덤을 경주 근처에 두지 않고 개경이 가까운 연천에 두게 하였습니다.
권력을 빼앗긴 왕들은 죽어서도 푸대접을 받는 것 같습니다.
서울 종로에 있는 종묘에는 조선왕들의 신주가 모셔져 있습니다.
이런 모양의 신주도 있습니다. 신주의 위와 옆에 뚫려있는 구멍은 귀신이 드나들 수있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전라도 진산에서 정조 15년에 양반 출신인 윤지충(尹持忠)과 권상연이 조상의 신주를 불태우고 제사를 폐지했다고 하는 폐제분주(廢祭焚主)의 문제로 사형을 당하기도 합니다.
(위 두장의 신주 사진은 인터넷에서 가져온 사진인데 주소를 잊었습니다.)
그런데 종묘에 가보면 정전이 아닌 한쪽 구석에 공민왕의 신당이 있습니다.
왜 조선의 종묘에 고려의 왕인 공민왕의 신당이 있는지 의아한 생각이 듭니다.
공민왕은 노국공주가 죽고 나자 신돈에게 정치를 맡기고 동성애등으로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홍윤의 무리에게 살해당합니다.
이 공민왕의 신당에는 신주가 없습니다.
제사를 지내려면 신주가 있어야 하는데 이 신당에는 신주도 없습니다.
공민왕의 왕비인 노국공주와 공민왕의 영정만 신당 벽에 덩그러니 걸려있습니다.
우리 나라의 역대 대통령들은 퇴임 후 어떻게 지내나 생각해 보니 남의 나라로 망명을 가기도 하고 부하에게 살해되기도 합니다.
또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감옥에 갔다오거나 아직도 갇혀 있거나 한 것을 보면 권력의 뒤안길이 참 무섭다는 생각이 듭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권력은 정말 나눌 수 없고 같은 피를 이어받은 형제도 죽이는 비정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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