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노래하는 사람

몽유도원도 본문

참고자료

몽유도원도

singingman 2023. 6. 19. 15:45
728x90

세종의 셋째 아들로 1418년에 태어난 안평대군이 1447년에 꾼 꿈을 당대 최고의 화가인 안견이 그림으로 그렸습니다.

안평대군은 이름이 용이고 위로는 다섯살인 왕세자 향(훗날의 문종)과 두살인 유(훗날의 수양대군)외에도 형제 자매들이  있었습니다.
그는 시서화에 능해서 삼절로 불렸으며 이 꿈을 꾸고 난 후 꿈의 내용을 '도원기'라는  글로 남겼습니다. 
꿈의 내용은 안평대군이 꿈속에 박팽년과 함께  산골짜기를 걷다가 어떤 사람을 만났더니 그 사람이 말하기를 이 길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면 골짜기가 나오는데 거기가 도원이라고 말해줍나다. 그래서 올라갔더니 도원이 나타났고 잠시 후 최항과 신숙주도 따라와서 함께 제목 그대로 꿈속에서 도원을 즐긴 내용입니다.

몽유도원도는 이 꿈의 내용을 그림으로 그린 것입니다.
하지만 그림에는 안평대군 자신이나 사람은 한 명도 그리지 않고 심산 유곡에 있는 산봉우리와 폭포, 작은 마을, 꼬불꼬불한 길 그리고 그림 오른편 위에 있는 도원등 자연만을 그렸습니다.
원래 그림에는 왼편 아래쪽에 사람이 있었을 수도 있었는데 정장하는 과정에서 짤려나갔으리라 추측하기도 합니다.

무릉도원을 나타내는 도화원기는 동진의 시인인 도연명이 이미 천년도 더 전에 쓴 적이 있습니다.

안견이 그린 몽유도원도에는 성삼문, 신숙주, 박연, 김종서등 당시 많은 문인들과 학자들이 찬문을 썼습니다.
그래서 몽유도원도는 그림과 함께 많은 찬문을 함께 모아서 표구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림은 세로 38.7cm, 가로 106.5cm의 크기이지만  21개나 되는 많은 찬문들 때문에 2개의 족자로 나누어 만들었고 상권은 세로 41cm 가로 849.1cm이고 하권은 세로 41cm 가로 908.5cm 였습니다.

안평대군은 태종의 아들인 성령대군이 어린 나이에 혼인은 했지만 후사가 없이 죽자 양자로 들어갑니다.
그래서 양부의 재산도 물려받아 큰 부를 소유하게 되고 이것을 기반으로 많은 명사들과 교류하며 장서와 서화를 수집했습니다.
그는 지금의 부암동에 있는 수성동 계곡에 무계정사를 짓고 아버지 세종에게서 비해당이란 당호도 받습니다.
비해는 게으르지 않다는 뜻입니다.
비해당이 있었던 이곳은 후대에 겸재 정선이 수성동이라는 그림을 그려서 우리와 친숙해진 곳입니다.
 

겸재 정선의 수성동

 
 

이 기린교로 불리는 돌다리는 겸재의 그림에 나온 그대로 지금도 그 자리에 있습니다.

 
 

비해당이 있던 근처에는 정자가 들어서 있고 안평대군 대신 시민들이 한가롭게 자연을 즐기고 있습니다.

 
 

 
 
 

 
 
마포 한강변에는 담담정이란 정자도 지어서 한강에서 뱃놀이도 즐기고 명사들과 교류도 가졌습니다.

병약한 형 문종이 젊은 나이에 죽고 조카 단종이 왕위에 오르자 야심가인 바로 한 살 위의 형 수양대군이 조카를 죽이고 왕위에 오릅니다.
세종 시절에는 수양과 안평은 아버지를 도와서 정사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단종을 몰아낸 수양대군은 동생인 안평대군도 교동도로 유배를 보냈다가 며칠 후 죽입니다.
역모를 꾀하고 숙모인 성씨 부인과 간통했다는 죄를 뒤집어 씌웠습니다.

권력은 피를 나눈 형제와도 나눌 수 없는 무서운 것입니다.
안평대군을 죽이면서 비해당도 불태웁니다.
그래서 안평대군이 평생 수집한 수많은 장서와 서화들이 사라집니다.
이 때 몽유도원도도 세상에서 사라진 것으로 알고 수백년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기적적으로 몽유도원도는 미리 안평대군이 다른 곳에 보관하고 있어서 불타지 않고 살아 남았다가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건너가서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다가 19세기가 되어서야 세상에 알려집니다.
지금은 일본의 국보가 되어 덴리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몽유도원도를 찾아서'라는 책을 쓴 김경임은 이 책에서 아마도 이 그림이 계유정난 이전에 이미 성령대군의 무덤 근처에 있는 대자암이란 사찰로 옮겨져 보관되어 있어서 화를 면한 것이 아닐까 추측하기도 합니다.
이후 임진왜란 때 일본군이었던 시마즈 요시히로가 약탈해갔다고 추측합니다.
우리 나라에서 1,90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이 그림을 세 번 일반에 공개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는 덴리대학 도서관 깊숙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중국 계림에 가면 세외도원이라는 관광지가 있습니다.
배를 타고 물길을 올라가면 동굴입구가 나오고 그 안에는 도화가 활짝 핀 곳이 나옵니다.
도연명의 도화원기를 재현한 곳입니다.

https://song419.tistory.com/m/3692

도화원기

도연명의 도화원기는 아래와 같다. 晉太元中 武陵人捕魚爲業 진태원중 무릉인포어위업 緣溪行 忘路之遠近 忽達桃花林 연계행 망로지원근 홀달도화림 夾岸數百步 中無雜樹 협안수백보 중무잡

song419.tistory.com


 

계림에 있는 세외도원 입구

 

계림에는 이런 아름다운 곳에 도원을 만들었습니다.


 

이 동굴을 배를 타고 들어가면 도원이 나타납니다.

 
 

한겨울에도 꽃을 만들어 나무에 달아두었습니다.

 
현대에 와서도 서양인들은 무릉도원에 해당하는 샹그리라를 동양에서 많이 찾고 있습니다.
안평대군이 꿈 속에서 본 도원은 오늘날 우리가 찾고 있는 이상향이나 유토피아가 아니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