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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

한 사람의 영향력

singingman 2023. 7. 3.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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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에서 만약 부득불 자랑할 일이 있다면 나 때문에 예수를 믿게 된 사람이 있다는 일입니다.
내가 군에 있을 때의 일입니다.(여자들은 군대 이야기하면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나는 포병 사령부 직할 관측부대에서 군생활을 했습니다.
내가 병장으로 사수가 되었을 때 내 아래 조수로는 성백* 상병과 여진* 이병이 있었습니다.
우리 부대는 일년에 절반 정도는 강원도 철원의  산꼭대기에 있는 OP에서 임무를 수행하면서 지내는 부대였습니다.
제가 전역을 하고 오랜 시간이 지나 여진*도 전역을 한 후 이 후배에게서  편지가 왔습니다.
편지의 다른 부분은 기억나지 않지만 이 후배는 나 때문에 예수를 믿게 되었고 지금은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래서 곰곰히 생각해보았지만 내가 이 후배에게 복음에 관해서 이야기하거나 교회 가자고 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나 때문에 예수를 믿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내 어떤 면이 그에게 영향을 미쳤는지 지금도 모르겠습니다.

나도 군에서 다른 사람에게 신앙적으로 큰 영향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우리 부대는 한 OP에 5~6명씩 있으면서 관측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우리 OP에는 다른 부대에서 파견 나온 사병들이 간혹 함께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통신병 한 명이 다른 부대에서 와서 우리와 함께 생활했습니다.
이 사람은 안식교인이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안식교는 구약 시대 유대인들처럼 토요일을 지금도 안식일로 지키고 이날 모여서 예배도 합니다.
우리 대부분의 개신교 교단에서는 안식교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저도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통신병이 얼마나 신앙생활뿐만 아니라 일상의 생활도 모범적이었는지 제게 큰 감명을 주었습니다.
OP에서는 토요일에 임무가 없어서 하루 종일 휴식시간이 주어졌습니다.
그러면 이 사람은 아침 일찍부터 정성껏 준비해서 산꼭대기에서 교회로 갔다가 밤늦게야 돌아왔습니다.
OP는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산꼭대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있는 신철원까지는 아무리 빨리 걸어도 2시간은 걸립니다.
당시 특별한 교통 수단이 없었기 때문에 오로지 걸어서 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농촌 교회들은 저녁예배를 늦은 시간에 드렸기 때문에 저녁 예배까지 마치고 산꼭대기에 있는 OP로 돌아오면 밤 10시가 넘어서야 도착했습니다.
캄캄한 밤에 무서운 산길을 혼자 걸어 올라와야 했습니다.

https://youtu.be/bPqhc5VStWQ


이 사람은 파견 기간 동안 한번도 빠지지 않고 매주 토요일마다 이렇게 신앙생활을 했던 것 같습니다.
나도 주일날 저녁 예배를 마치고 밤에 혼자 OP로 올라온 일이 많았기 때문에 이 사람의 상황이 어땠을지 잘 압니다.
비록 내가 속한 교단에서는 이단으로 규정한 안식교 교인이었지만 워낙 진실한 생활을 한 이 사람 때문에 그 교리는 따를 수 없지만 내게 안식교는 아주 좋은 인상을 주었습니다.
한 개인이 때로는 어떤 조직이나 사회 혹은 국가를 대표할 수도 있습니다.
나는 꼭 이 사람 때문만은 아니지만 매일 아침 식사로 먹는 두유를 아직도 삼*두유로 먹고 있습니다.


전역을 하고 수십년 후에 산꼭대기에 있는 이 OP에 올라간 적이 있었습니다. 내가 다시 올라갔을 당시에는 사용하지 않는지 건물이 많이 낡고 버려져 있는 것 같았습니다.


https://youtu.be/ntflUU_xmq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