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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사람
운현궁 24.08.24 본문
대원군이 살았던 집이고 고종이 왕이 되기 전 살았던 잠저이다.
대원군은 김좌근이 안동 김씨들과 함께 권력을 좌지우지할 때 `상갓집 개`처럼 살았지만 자기 아들이 왕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야망을 품고 이 집에 살았다.
고종이 왕이 되고 난 후 섭정을 하면서 순조비였던 순원왕후를 비롯한 안동 김씨들과 풍양 조씨들이 권력을 쥐고 있을 때 그들과 맞서기도 했다.
그는 부패한 안동 김씨들과 싸우면서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삼정문란을 개혁하려 했고 당파싸움의 온상이 된 서원을 철폐하기도 했지만 쇄국정책을 너무 강력하게 추진해서 조선이 문호를 열고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고 천주교도들을 너무 탄압해서 서양의 문물이 들어 올 수 있는 기회를 막았으며 경복궁 재건으로 나라에 경제적인 어려움을 초래하기도 했다.
위키백과에 의하면
서울특별시 종로구 운니동에 위치한 대한제국 초대 황제 고종 광무제의 아버지 흥선대원군과 어머니 여흥부대부인 민씨가 기거했던 사가(私家). 흥친왕이 태어났으며, 고종 광무제 또한 태어나고 왕이 되기 전까지 잠저로 지냈던 곳이다. 현재 조선의 대원군궁 중 유일하게 제 모습을 그나마 온전하게 유지하는 곳이다.
고종이 태어난 집은 원래 운현궁 안에 있었지만 현재는 운현궁 부지에서 제외되었다. 그 건물은 운현궁의 동북쪽 뒷편의 운니동 114-2번지에 있었는데, 1966년에 헐리고 그 자리에 중앙문화센터가 들어섰고, 삼성물산이 2002년부터 2019년까지 모델하우스인 래미안 갤러리를 운영하였으며, 현재는 종로소방서의 임시청사 부지로 사용되고 있다.
운현궁 역시 주인처럼 사연이 많은 곳이다. 경복궁이나 덕수궁 같은 옛 궁들과 마찬가지로 운현궁 역시 규모가 많이 축소된 것이다. 흥선대원군의 권세가 막강했을 때는 그 권세에 비례해서 오늘날 덕성여자대학교 부설 평생교육원으로 쓰이는 '운현궁 양관'을 포함해 현재 운현초등학교와 일본문화원까지 포함하여 굉장히 넓은 지역이었는데,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그 규모가 많이 축소되었다. 황현의 《매천야록》에서는 운현궁의 크기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동학농민운동의 주도적 인물인 전봉준도 여기서 2년 정도 식객 생활을 한 적이 있고, 그 외에도 흥선대원군 본인부터 당대의 예술가 중 한 사람으로 판소리나 그림 등의 예술 애호가여서 당시의 화가들이나 신재효의 지도를 받은 판소리꾼들, 심지어는 남사당패들까지 운현궁에 자주 드나들었다.
흥선대원군은 섭정 시기에 주로 이곳에서 집무를 봐왔으며 서원 철폐, 호포제와 사창제 실시, 경복궁 중건 등의 지휘를 맡다가 후에 한성부 공덕동으로 이사를 하면서 장남인 이재면(흥친왕)에게 물려주기도 했다.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고 3일 뒤 서울이 함락되자, 순종의 황후 순정효황후가 창덕궁 낙선재를 떠나 9.28 서울 수복 시까지 이곳을 피난처로 삼기도 했으며, 이후 1952년엔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당선자가 이곳을 숙소로 삼았다.
흥선대원군이 주로 사용했던 아재당, 사랑채인 노안당, 안채인 노락당, 별당채인 이로당이 있으며 한때 고종과 대원군이 창덕궁과 운현궁을 왕래할 수 있는 경근문과 흥선대원군 전용으로 사용했던 공근문이 있었으나 지금은 없어졌고 '영로당' 이라는 안채도 있었으나 지금은 운현궁에서 떨어져나가 개인 소유의 건물로 바뀌었다. 여기까지 읽었으면 알겠지만 운현궁 전각에는 노(老)자 들어간 전각이 많다. 흥선대원군이 뭔가 이 글자에 애착이라도 있었던 모양. 실제로 말년의 흥선대원군은 자신의 호인 '석파(石破)'를 대신해 '노석(老石)'이라는 호를 쓰기도 했다.
그리고 운현궁 전각 중 노안당의 현판은 흥선대원군의 스승인 추사 김정희의 글씨인데, 이것은 고종 즉위 전에 사망한 김정희가 직접 쓴 게 아니고, 흥선대원군이 운현궁을 증축할 때 스승의 글씨를 모아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내부에는 주요 전각들과 함께 운현궁의 유물을 전시해 놓은 작은 전시관이 있으며, 전각 내부에 당시의 생활상을 재현해 놓은 생활용품이나 당시 복식을 입은 마네킹들도 있다.
한동안 설날 및 추석 명절 동안에만 무료 입장을 실시하고 있었으나, 2014년 3월 20일부터는 서울특별시 조례 개정으로 모든 날에 무료로 개방하기 시작했다. 월요일(공휴일이 아닌 경우에만)에는 휴관. 대중교통으로는 수도권 전철 3호선 안국역 4번 출구로 나오면 지척(300~400m 근방)이다.
아래는 유물 전시관에 있는 전시물들
노안당의 '노안(老安)'은 《논어》공야장(公冶長)편에 나오는 "노인들을 편안하게 하여준다(老者安之)"에서 유래하였다. 노안당은 전체적으로 정(丁)자형의 건물로 대원군이 국정을 의논하던 곳이다. 정면 6칸, 측면 2칸의 몸채 동쪽 끝에 7칸이 덧붙었다. 몸채부는 동쪽 2칸 사랑방을 제외하고 모두 우물마루로 되었으며, 동쪽 끝에서 남으로 돌출한 2칸은 누마루로 구성되었는데, 영화루(迎和樓)라고 한다.
노락당은 운현궁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중심이 되는 건물이다. 전체적으로 ㅁ자 모양을 취하고 있으며, 정면 3칸은 앞퇴를 개방했고, 좌협간 2칸 중에서 한 칸 부분이 개방되어 좌측 날개 부분의 통로 역할을 한다. 좌우 각 2칸은 온돌, 중앙 3칸은 대청이다. 좌우측의 날개 부분 즉 안채의 몸채에서 직각으로 꺾여 있는 부분은 돌출부가 각 2칸이며 부엌과 창고로 쓰였다. 노락당은 초익공 7량 건물로 사대부가의 건축미를 느낄 수 있는 기법을 많이 볼 수 있으며 아름다운 창살 문양이 남아있다.
노락당 남쪽의 남행각은 - 자 모양의 평면을 하여 ㅁ자 모양의 평면을 한 노락당과 함께 ㅁ자 모양의 안마당을 형성하였다. 이곳은 명성황후 민씨가 삼간택을 마친 후 왕비수업을 받았던 곳이고, 고종 3년 고종과 명성황후 민씨의 가례가 있었던 곳이다.
아래는 이로당
별당인 이로당은 바깥으로 출입문을 내지 않은 지극히 폐쇄적인 '口'자형 건물이다. 노락당과 복도로 연결되어 오로지 안채에서만 드나들 수 있었던 비밀스럽고 은밀한 건물이었다. 이로당은 대원군의 부인인 부대부인(府大夫人) 민씨가 거처하던 곳이다.
정면 7칸, 측면 7칸의 홑처마 팔작지붕으로 기단은 정방형주초(正方形柱礎)이고 기둥은 평주, 고주 모두 사각기둥으로 약간의 민흘림이 있다. 마루는 우물마루이나 툇마루는 장마루이고 가구는 입구자형 평면에서 남쪽은 1고주 5량, 서쪽과 북쪽은 1고주 3량, 동쪽은 평4량(平四樑)이다. 지붕은 우진각 지붕인 서북쪽 모서리를 제외하고 모두 팔작지붕이다. 정면 앞마당 서쪽으로는 석함, 동쪽으로는 요거석이 있고, 동쪽 마당에는 정원이 조성되어 있다.
일제 시대 이전에는 운현 초등학교 부지와 양관이 다 운현궁에 속해 있었다.
근처에 있는 설립된 지 130년이 넘은 승동교회를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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