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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산대군 묘, 사당, 신도비 본문

궁,능,원,묘

월산대군 묘, 사당, 신도비

singingman 2025. 3. 11.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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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산대군 사당은 원당에서 송추쪽으로 가는 낙타고개 왼 편에 있고 신도비와 무덤은 오른편에 있다.

월산대군은 세조의 장남인 의경세자의 장남이었다.
의경세자는 스무살의 젊은 나이에 죽었다.
그리고 세조의 둘째 아들인 예종이 왕이 되었으나  14개월 남짓 재위하고는 그도 스무살에 일찍 죽었다.
4살밖에 안 된 예종의 아들이 왕위를 잇기에는 너무 어렸다.
그러자 의경세자의 둘째 아들인 자을산군이 13세에 왕이 되었다.
그가 성종이다.
의경세자의 맏아들인 월산대군이 있었지만 왕위에 대한 욕심도 별로 없었고 둘째인 자을산군이 왕이 된 배경에는 그가 당시 실세였던 한명회의 사위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정희왕후가 수렴청정을 하기도 좋은 나이였다.




월산대군 사당









사당 위에 있는 3 기의 무덤들은 월산대군과 관련이 없는 무덤들이다.
그의 손자 파림군과 그 부인의 묘가 있다.


파림군 주의 묘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신원동 능골마을에 위치한 월산대군 묘역 내에 묘가 있으며 부인 현부인(縣夫人) 양천 허씨(陽川許氏)와 합장묘이다.
둘레석이 둘려져 있는 봉분 앞에 묘비가 세워져 있고 주변에 상석, 혼유석, 향로석, 망주석, 문인석 등 여러 석물이 배치되어 있다.
그중 특히 문인석은 높이가 228cm로 조각 솜씨가 뛰어나다.
봉분 오른쪽에 세운 대리석 재질의 신도비는 높이 241cm로 1563년(명종 18)에 제작한 것이다.

파림군(1500~1541)은 월산대군의 독자인 덕풍군(德豊君)의 첫째 아들로 학문을 좋아하고 평소 검소한 생활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래는 월산대군 신도비와 무덤



월산대군 신도비각



신도비는 너무 마모되어 읽기 어렵다



월산대군 묘




의경세자와 세자빈 한씨의 장남이자 세조의 장손으로 태어나 조부의 사랑을 받으며 궁중에서 자랐다.
1460년(세조 6) 7살에 월산군(月山君), 1468년(예종 1) 현록대부(顯祿大夫)에 책록됐다. 1471년(성종 2) 월산대군(月山大君)으로 진봉되었으며 순성명량경제좌리공신(純誠明亮經濟佐理功臣) 2등이 가자됐다.

하지만 이런 월산대군에게도 최대 아킬레스건이 있었는데, 몸이 심하게 약한 약골에 권력욕도 없었다는 것이다.
당장 아버지 의경세자부터 젊은 나이인 19살 때 요절, 숙부 예종도 20세의 나이로 요절, 예종의 정비 장순왕후도 세자빈 시절 아이를 낳다가 산후병으로 17세의 어린 나이로 세상을 떠났고, 그렇게 해서 태어난 예종의 장남 인성대군도 고작 1살 때 죽는 등, 마치 조카를 죽이고 그의 왕위를 찬탈한 세조를 비웃기라도 하는 것처럼 세조의 적자 계열 직계후손들은 죄다 일찍 죽었다.
비록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월산대군 본인조차도 결국 훗날 34세에 요절하고 말았으며 동생 성종 또한 월산대군보다 겨우 3년 오래 산 37세에 요절하고 말았다.


장명등



문석인




앞의 묘는 월산 대군, 뒤의 묘는 부인 박씨의 묘. 상하로 된 쌍릉





월산대군과 부인 박씨의묘, 오른쪽이 대군묘, 왼쪽이 부인 박씨묘로 앞뒤로 나란히 있다.



상석





올려다 본 월산대군과 그 부인 박씨 묘.그리고 오른쪽은 신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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