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노래하는 사람

지장보살과 모세와 바울의 서원 본문

살아가는 이야기

지장보살과 모세와 바울의 서원

singingman 2024. 11. 24. 05:57
728x90



지장경에 의하면 지장보살은 성불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지옥의 마지막 중생까지도 다 구원하여 성불하게 한 뒤에야 비로소 자신도 성불하리라는 엄숙한 서원을 세웠다.
그래서 지옥의 모든 사람을 다 구원하기까지 성불을 미루고 있다.
지금도 절에 가면 지장전에 지장보살상이 명부의 무독귀왕이나 염라대왕등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다.
끝없는 자비의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출애굽기 32장 31-32절 (개역개정)에는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을 위해 자기가 지옥에 가는 한이 있더라도 그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는 모세의 기도가 있다.

"31 모세가 여호와께로 다시 나아가 아뢰되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 신을 만들어 싸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32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위의 기도는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산 아래 있었을 때 모세가 산에서 오랫동안 내려오지 않자 그들이 금송아지 신상을 만들고 그 앞에서 우상 숭배하고 온갖 난잡한 일을 저지른 것을 보고 모세가 하나님께 이스라엘 백성들의 잘못을 용서해 달라고 비는  기도다.

또 신약에는 바울이 자기 형제와 친척들의 구원을 위해 자신이 저주를 받더라도 좋다는 기도가 있다.

로마서 9장 1-3절 (개역개정)
"1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내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하노니
2 내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위 세 사람은 자신의 행복보다는 타인의 행복을 더 우선한 사람들이다.
이타심이 최고도로 발휘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떻게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있었을까?

이들은 불교가 가르치는 자비와 기독교가 가르치는 사랑을 가장 완전하게 실천한 사람들이다.

수행이나 교육으로 가능할까?

모세의 경우는 성품이 온유했다.

민수기 12장 3절에 의하면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온유하다고 해서 내세의 구원까지 포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모세는 그렇게 했다.

또 모세는 애굽에서 최고의 교육을 받았다.
사도행전 7장 22절에 의하면
"모세가 애굽 사람의 모든 지혜를 배워 그의 말과 하는 일들이 능하더라."

애굽의 왕자로 자랐으니까 최고의 교육을 받은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보고 있는 바와 같이 교육의 힘이 이렇게까지 자신을 희생시킬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은 아니다.

바울은 자기 형제와 친척들을 위해서 자신이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그들이 구원받기를 원했다.
여기서 형제와 친척은 이스라엘 백성들, 곧 자기 민족을 가르킨다.
어떻게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있었을까?
바울도 모세처럼 당시 최고의 교육을 받은 사람이었다.

사도행전 22장 3절에 의하면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이 있는 자라."

당시 가말리엘은 유대 최고의 학자였고 그에게서 배웠다는 것은 최고의 교육을 받았다는 뜻이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서울대 출신이라는 뜻이다.
또 그가 예수 믿는 사람들을 박해할 당시의 직책은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지금의 검찰총장 정도의 고위직이었다고 한다.

또 빌립보서 3장 5~6절에 의하면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세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는 자신이 받은 교육과 자신의 신앙에 따라 철저하게 산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예수님을 만난 후로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했다.
자기가 옳다고 믿었던 유대교의 교리에 따라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고 죽이기까지 했던 바울이 이제는 자기가 만난 예수님을 위해 죽음도 불사하고 복음을 전했다.
뿐만 아니라 위에서 보듯이 자기 민족을 위해 최고의 가치인 내세의 구원까지도 포기하고자 했다.

모세도 호렙산 불붙은 떨기나무 가운데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만난 후 변한다.
자기가 도망쳐 나온 애굽으로 다시 돌아가서 이스라엘 민족을 출애굽시키는 큰 일을 하게 된다.

위 세 사람이 이렇게 행동할 수 있었던 것은 수행이나 교육의 영향이 어느 정도 있었을 수도 있겠지만 지장 보살의 경우 지옥에서 고통받고 있는 어머니를 만났고 모세와 바울은 이들이 하나님을 만나 변화되었고 진심으로 남을 내 몸같이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결론지을 수 밖에 없다.






'살아가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화  (0) 2024.11.27
꿀잠  (1) 2024.11.22
영화 보통의 가족  (1) 2024.10.19
도촌천 풍경24.10.14  (0) 2024.10.14
전철 서해선 24.10.11  (0) 2024.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