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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누리길 3코스(서삼릉누리길)25.2.13 본문
혼자 가다.
난이도는 최하 수준이다.
원당역에서 삼송역까지다.
서삼릉과 종마목장도 돌아보고 하니 2시간 반 정도 걸린다.
지도에는 전체거리가 8.28km로 나와 있다.
원당역 1번 출구로 나가니 덕양 서원이 있다.
가봤더니 행주 기씨들 묘소와 서원도 있다.
서원은 잠겨 있어서 들어가보지는 못했다.
고려시대 원나라 왕후가 된 기왕후, 기대승 등이 이 집안이다.
여자 양궁 선수 기보배도 이 집안일까?
엊그제 내린 눈이 얼어 있어서 미끄러운 구간이 좀 있었다.
도중에 서삼릉을 들를 수 있어서 좋은 코스다.
포장도로를 거의 걷지만 서삼릉에서 나와서 농협대학을 지나고 홍익교회 큰숲비젼센타를 지나면 왼편에 산속으로 들어가는 오솔길이 있다.
이 길로 가다가 도중에 삼거리가 나오면 왼편으로 내려가야 한다.
그래서 차도를 만나서 한번 건너고 다음에 좌회전하면 삼송역까지 가게 된다.
서삼릉에서 나와서 원흥역으로 가면 조금 더 가깝다.
조선 중기 이후 서원들은 가문의 위세를 나타내는 하나의 수단이 되기도 했다.
덕양서원도 기씨 문중의 그런 서원 가운데 하나일까?
조선 시대에 서원이 많았을 때는 600개가 넘었으며 사당까지 합치면 1,700개 정도 되었다고 한다.
이 가운데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 때 47개만 남고 나머지는 다 문 닫았다가 그 후에 복원된 것들이 많다.
덕양서원은 고양시 덕양구 행주 기씨 도선산(시조들이 모셔져 있는 곳) 내에 자리잡고 있는 서원으로 2002년 개원하였다. 덕양서원에는 정무공 기건, 정렬공 기찬, 문헌공 기대승 등을 배향하였다. 이후 2005년 정암 조광조와 추만 정지운을 추가로 함께 배향하였다. 행주 기씨는 경기도 고양시 행주동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로, 청주한씨 그리고 태원 선우씨 등과 함게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성씨들 중 하나이다.
서삼릉은 원래 137만여 평이었으나 지금은 7만여평만 남았다.
한양골프장, 뉴코리아 골프장, 종마목장, 젖소개량사업소, 보이스카웃 훈련원, 농협대학,군부대등이 차지했다.
여기는 미리 예약을 해야 들어갈 수 있다.
https://song419.tistory.com/m/4174
서삼릉 효릉 & 태실 24.04.07
주일 예배를 마치고 미리 예약한 3시 회차에 맞춰서 아내와 함께 가다. 효릉과 태실은 예약한 사람만 한 회차에 20명씩 들어 갈 수 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없어서 아내와 둘만 해설사의 해설을
song419.tistory.com
여름에 연꽃 필 때 오면 연지에 연꽃이 좋다
의소세손은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의 적장남으로, 제22대 왕 정조의 동복형이다.
정조가 태어난 해에 사망했다.
문효세자의 어머니인 의빈 성씨는 화빈 윤씨의 궁녀로 있다가 정조의 승은을 입었다.
후궁의 시녀가 후궁이 되면 자기가 모시던 주인에게는 처신을 어떻게 했을까?
왕은 궁녀들과 하룻밤을 보내도 그 여자에게 승은을 입힌 일이 되니...
철종과 철인왕후의 능이다.
철종은 정조의 이복 동생인 할아버지 은언군이 역모죄로 강화로 유배가서 살았기 때문에 자신도 강화도에서 어렵게 살다가 어느날 갑자기 전혀 준비되지 않은 왕으로 왕위에 올랐다.
은언군이 강화도에 살 때는 정조가 그래도 바람막이가 되어주었지만 그가 죽자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은언군의 아들 이광은 그래서 농민으로 살아가게 된다.
하지만 그는 본처 외에도 첩을 둘이나 둔 것으로 보면 그리 어려웠던 것은 아닌 것 같다.
1830년 효명세자가 요절하면서 후계자가 없어 다급해진 사촌동생 순조에 의해 방면되어 두 아들 이원경(4세)과 이욱(3세)과 함께 한성부 향교동(鄕校洞) 경행방(慶幸坊)에 다시 정착해서 1831년에는 3남 이원범(후에 철종이 된다.)을 얻고, 자식들을 키우다 1841년 사망했다.
사후에는 1844년 중인 민진용이 일으킨 반란에 장남 이원경이 휘말려서 죽고 나머지 아들 이욱과 이원범은 다시 강화도로 유배를 간다.
헌종이 죽자 유배지에 살던 원범을 순조의 왕비인 순원왕후가 불러서 1849년에 19살의 나이로 왕위에 오른다.
그의 아버지 이광은 전계대원군이 된다.
하지만 준비되지 않은 왕인 그의 치세가 평탄했을 리 없다.
또 당시 정순왕후를 비롯한 안동 김씨들의 국정농단이 극심해서 그는 허울뿐인 왕이었다.
진주에서는 관리들의 가렴주구에 견디지 못한 백성들이 일으킨 임술농민봉기가 일어나고 이것은 전국으로 확대되었다.
1863년 만 32세의 나이로 훙했다.
지금도 강화 성공회 성당 바로 아래에 그가 왕이 되기 전에 살았던 잠저인 용흥궁이 보존되어 있다.
중종의첫부인은 인왕산 치마바위 전설에 나오는 단경왕후 신씨였다.
장경왕후의 아들인 인종은 왕이 된 지 채 8개월도 다 못 채우고 훙했다.
그리고 세번째 왕후가 명종의 어머니인 그 유명한 문정왕후 윤씨다.
자기 아들을 왕으로 만들고 수렴청정 하기 위해 인종을 독살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중 보우를 가까이 해서 불교를 중흥시켰으며 그와 사통했다는 의심도 받고 있다.
왕비를 셋이나 둔 왕으로는 숙종도 있다.
인경,인현,인원왕후를 두었고
그는 후궁도 6명이나 두어서 그들끼리 다툼이 엄청 심했다.
후궁은 희빈 장씨, 숙빈 최씨, 귀인 남씨, 소의 권씨, 소의 장씨, 소용 김씨가 있었다.
인현왕후와 장희빈의 싸움은 드라마로도 많이 만들어졌다.
한편 현종은 후궁을 하나도 두지 않은 유일한 왕이다.
이 땅도 원래 서삼릉 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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