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적인 관점에서 경제학을 설명한 책. 저자는 경제학자이지만 성경에도 상당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
자본주의에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빈부 격차 문제를 성경적인 관점에서는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 첫째 자본주의 체제는 인간에게 자유를 활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그러나 자본주의 체제는 자유를 향유하면서 지불해야 하는 대가나 비용에 대해서는 무감각하다. 예컨대 자유의 허용으로부터 발생하는 경제적 불평등은 선택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로 여긴다. 각 국가들은 이에 대해 다른 가치관을 보여준다. 서구 유럽은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는데 적극적이고 북미의 나라들은 소극적임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경제적 불평등을 해결하는 것은 선택사항이 아니다. 의무사항이라고 말하는 성경의 뜻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 원칙은 정부나 개인에게 모두 적용되는 것이다. 정부는 자유로운 경쟁으로부터 탈락된 사람들을 구제하고 재생시키는 사회적 안전망을 갖추는 것을 어떤 정책보다 앞서 실시해야 한다. 개인 또한 사회적 약자에게 자기 소득의 일정 부분을 나누는 일을 국방, 납세 의무 같은 의무로서 받아들였으면 한다. 그것을 시장경제 속에서 자유를 향유하여 부를 척추하는 것에 대한 대가로 생각하자.
둘째, 개인의 잘못된 선택이나 게으름에서 기인하지 않은 가난에 사회는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가난이나 어려움이 개인의 잘못에 기인하지 않은 경우가 있는데 예컨대 선천적 장애 문제, 극빈자 자녀들의 교육과 건강 문제, 암, 정신병과 같이 치유가 불가능한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의 문제가 이 범주에 들어간다. 이런 사람들도 보통 사람들과 비슷한 정도의 삶을 누리도록 해 주어야 하는 것은 인류 모두의 책임이다. 이런 책임은 개인이나 스스로 해결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정부가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셋째, 가난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무조건적인 시혜가 해결책은 아니지만 가난은 더 극심한 가난으로 유인하는 관성이 있다. 따라서 희년 제도와 같이 구제의 희망을 주는 것도 필요하다. 신용불량자에게 일정 부분의 빚을 갚아주거나 일정기간 일을 하면 신용을 회복해주는 것도 이런 차원의 문제다. 개인적인 책임으로 인한 빈곤인만큼 어느 정도는 개인이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유인체제가 필요하다.
수많은 재테크 관련 책들의 내용을 보면 크게 3 가지 정도의 원칙으로 요약된다.
첫째, 큰돈을 벌기 위한 첫걸음으로 종잣돈을 만들라는 것이다. 하지만 종잣돈을 만들기 위해서 절약하고 저축하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방법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둘째, 종잣돈이 모이면 수익성이 좋을 것으로 예상되는 토지, 아파트, 상가, 오피스텔과 같은 부동산에 투자하거나 수익성 좋은 금융자산에 투자하라고 한다. 투자하는 기법을 설명하기도 하지만 그것이 검증된 기법들은 아니다. 심지어 손해를 볼 수도 있는 위험한 기법을 제안하기도 한다. 믿거나 말거나 일종의 설일 뿐이다.
셋째, 부동산이나 금융 자산을 사는 것보다 더 위험을 감수할 수 있다면 유망 업종을 창업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유망업종이라고 해도 한때의 성공에 그칠 수도 있고 실패하는 것은 개인의 책임이다.
예수님의 부자관은 축적한 재산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이다. 예수는 부자가 이웃을 위해서도 재산을 사용하기를 바란다. 그런데 이것이 부자에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이유는 부자가 되는 과정을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인색할 정도로 쓰지 않고 모아야 한다. 부자는 습관적으로 모으는 데 익숙한 사람들이다. 쓰는데 익숙하면 부자가 될 수 없다. 그렇게 어렵게 모은 것을 자기 자신도 아니고 남에게 베풀고 남을 위해 쓰는 것은 낙타가 바늘 구멍에 들어가는 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보다 오히려 더 남에게 베푸는 데 인색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부자를 좋아하지 않는다.
애담 스미스는 그의 저서 '국부론'에서 부를 많이 가지는 것이 반드시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부가 늘어나면 전보다 더 큰 불안, 두려움, 슬픔에 사로잡혀 더 행복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부를 더 많이 가지려는 욕망과 이기심으로 행동하는 악덕이 시장의 작용을 통해 사회에 더 큰 미덕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국부론에서 그가 주장하는 바를 직접 들어보자. 부자들은 이기심과 탐욕을 타고났고 오직 자신의 편리만 추구하고 그들이 고용하는 사람들의 노동으로부터 그들이 유일하게 원하는 것은 자신의 무한한 욕망과 만족뿐이지만 결국 부자들은 모든 물질적 개선의 산물을 가난한 사람들과 나누어 가진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 손에 끌려 마치 땅을 모든 사람이 균등하게 나누어 가지기라도 한 것처럼 생활 필수품을 고르게 분배하며 그들 자신의 의도와 관계없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회의 이익을 증진하고 종의 증식 수단을 제공한다.
월마트의 샘 월턴과 같은 부자가 많아지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부자가 되는 때는 왕도가 없다. 성경에서 얘기하는 부자되는 방법도 그러하다. 생업에서 최선을 다함으로써 생업에서 번성해야 한다.
둘째, 부를 축적하고자 할 때는 구체적인 사용 용도가 있어야 한다. 용도를 벗어나는 부의 추구는 욕심이다. 인간의 뿌리 깊은 소유욕은 관성의 법칙하여 있다. 그래서 모으고 모아서 끝없이 쌓여도 가속적으로 더 쌓고 싶은 것이다.
셋째, 자본주의가 성숙되어 가면서 자본주의에서 낙오한 사람들의 문제가 발생한다. 이 문제는 본질적으로 예수가 공생애 기간 동안 관심을 두었던 선천적으로 장애를 타고난 사람들, 고칠 수 없는 병을 가진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의 문제다. 그런데 이 문제는 부자의 자선으로 해결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역사적으로 3 가지 다른 방법이 모색되고 진행되었다.
첫째 방법은 영국과 미국에서 진행된 영미식자본주의다. 영미식자본주의는 부자들의 이기심을 더욱더 자극함으로써 성장을 극대화하고 그로 인해 늘어난 부를 비례적으로 사회적 약자에게 배분함으로써 약자들의 상황을 개선하는 것이다.
두 번째 방법은 구소련과 동유럽에서 진행된 공산주의다. 생산과 분배를 국가가 관장해서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만듦으로써 사회적 약자가 없어지게 만드는 것이다.
세 번째 방법은 독일을 중심으로 서유럽에서 진행된 독일식 자본주의 또는 사회적 자본주의다. 생산체계는 능력주의를 기본으로 하지만 국가가 나서서 제도적으로 사회적 약자를 구제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방법이다. 이 세 가지 중에서 부자가 제도적으로 사회적 약자를 돕는 데 기여하게 하는 것이 사회적 자본주의다. 사회적 자본주의에서는 부자들이 국부를 늘리는데 기여함으로써 또 더 많은 세금을 냄으로써 사회적 약자에 대한 책임을 다할 수 있다. 사회적 자본주의는 제도적으로 삭개오를 많이 만드는 체제다. 우리 사회의 지향점은 사회적 자본주의가 되어야 한다.
국제 투명성 기구는 지난 1995년부터 매년 부패지수를 발표해왔다. 2007년도에 세계 180개 국을 조사하여 발표한 자료를 보면 상대적으로 덜 부패한 나라 상위 20개국 중에 1인당 국민소득이 1만달러 이하인 나라는 하나도 없다. 대개 1 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 이상인 나라들이다. 반면 부패가 심한 최하위 20개국은 아시아, 아프리카의 최빈국들이 차지하고 있다. 이 자료는 국민소득이 높아질수록 부패의 정도가 낮아지는 것을 보여준다. 교육과도 관계가 있지 않을까?
전 세계에는 200년 이상 된 기업이 5000여 개 있다. 그 중에 3000개 이상이 일본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