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화진 외국인 묘지에 묻힌 선교사들에 관한 책. 많은 선교사들을 다루다 보니 간단하게 그 선교사의 출생자와 출생년도, 국적, 업적등을 다루었다.
선교사들의 프로필을 보면 20대에 온 사람들이 많다. 대학을 졸업하고 신학교나 의대를 졸업해서 그 사회에서도 엘리트로 살아갈 수 있는데 이 미지의 나라로 와서 선교를 위해 젊음과 목숨을 바쳤다.
당시(1,800년대 후반~1900년대 초, 중반) 우리 나라가 일제의 지배하에 있었거나 6.25로 나라가 아주 어렵고 가난한 시절이었다. 그래서 선교사들이 들어와서 아프면 치료받기가 어려워서 많이 죽었다. 특히 어린 자녀들이 많이 희생되었다. 당시 서양 교육, 의료 선교사들이 먼저 들어오긴 했지만 우리 풍토병이나 열악한 환경 때문에 태어난지 하루, 혹은 몇주나 몇 달만에 죽는 아이들도 상당수 있었다. 사랑하는 자녀들을 잃고도 계속 선교사로 섬긴 당시의 사람들이 지금의 우리로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처녀, 총각으로 와서 결혼하고 신혼 시절에 배우자를 질병으로 잃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렇지만 끝까지 선교사로서의 사명을 감당한 그들 덕분에 오늘날의 우리 나라가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일제에 의해 본국으로 추방을 당하고도 해방 후 다시 우리 나라를 찾아 온 선교사들도 아주 많다.
양화진 묘지에는 약 500명 가까운 선교사들이 묻혀있다고 한다. 내가 가서 보았을 때도 어린 아기들의 묘역도 있는 것을 보았다. 개신교, 천주교, 안식교 선교사도 있었다. 개신교는 장로교, 감리교뿐만 아니라 성공회 구세군등 많은 교단들이 세계 각국에서 선교사를 보냈다. 북미와 유럽 선교사들이 당연히 많고 남아공에서 온 선교사도 있고 이 묘지에는 일본인도 한 명 있다. 그는 고아들을 위해서 평생 헌신한 소다 가이치이다.
크리스 위더슨 구세군 사령관이 심은 단풍나무 두 그루가 묘지 앞에 잘 자라고 있다고.
음악가도 있었다. 오페라 순교자를 작곡한 James Adam Wade가 있다. 바리톤 황병덕이 그의 오페라에서 주역을 맡았다고 한다.
Lee McClintock Wade는 Lee Wade's Cookbook이라는 제목의 요리책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