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에 이기기 위해서는 군사력만 좋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경제력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스페인은 군사력은 강했으나 경제력이 약해서 트라팔가 해전에서 프랑스와 연합했지만 영국의 넬슨에게 졌다.
영국과 네델란드는 바다를 지배하기도 했지만 금융 강국이었다.
명나라때 까지는 중국이 서양보다 잘 살았다. 하지만 자급자족이 되고 인건비가 싸다보니 기계를 이용하는 산업혁명은 일어날 수 없었다. 하지만 영국은 방직공업이 발달하면서 인건비가 비싸지자 기계를 이용해야 수지를 맞출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산업혁명이 일어날 수 있었다.
일본은 2차세계대전 후 미국의 도움과 한국전쟁의 특수로 경제가 가파르게 성장했다. 하지만 부동산에 자금이 몰리면서 버블이 생겼고 그 버블이 꺼지면서 잃어버린 20년을 맞이하게 되었다.
우리 나라는 미군정때 일본이 가지고 있던 토지를 농민들에게 잘 판매해서 농업 생산성이 높아졌고 박정희 정권 때는 공업화와 수출기업을 잘 육성해서 현재의 우리 나라가 경제적인 발전을 이룩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이탈리아 메디치 가문이 중시한 사업은 환어음 중개 업무였다. 여기서 환어음이란 중세의 치안 불안 및 부실한 도로망에 빚어낸 상품으로 발행지가 아닌 제2의 장소에서 이를 소지한 사람에게 여기에 적힌 액수만큼 현금으로 지불하게 하는 일종의 명령서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피렌체 상인들이 프랑스 동부 상파뉴의 정기시에서 현지 상인에게 모직물을 구입하고 물건값을 화폐가 아닌 환어음으로 지불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때 환어음의 발행인은 피렌체 상인이고 수취인은 현지 상인이 지정하는 다른 도시에 사는 제 삼 자가 되었다. 이 제 삼자는 물건값에 해당하는 돈을 피렌체 상인의 대리인에게 지급받았다. 이런 식으로 피렌체 상인은 유럽 도처에 퍼져있는 대리인망을 이용해 물건값을 치렀고 상파뉴의 모직물 상인은 다른 도시에 사는 채무자에게 진 빚을 갚았다.
어음 할인을 최초로 해준 도시가 암스테르담 시이다. 시당국은 네덜란드 연합주에서 유통된 다양한 통화가 상인들에게 실무적인 문제를 초래하자 그에 대한 해답으로 1609년 암스테르담 은행을 세웠다. 당시 네덜란드에는 서로 다른 조폐국이 14군데나 있었고 유통된 외국 통화 규모도 어마어마했다. 암스테르담 은행은 상인들이 표준화된 통화로 예금 구좌를 개설하도록 하여 수표와 자동이체 시스템 등 오늘날 당연시 여겨지는 제도를 실행했다. 이러한 장치들 덕분에 상업 거래는 점차 실물 주화 없이도 가능해졌다.
16세기에는 스페인이 패권 국가의 자리를 움켜쥐었고 17세기에는 네덜란드가 암스테르담 은행과 동인도 회사라는 신무기를 내세워 세계의 바다를 호령했으며 18세기~19세기에는 영국이 무적해군을 앞세워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건설한 반면 프랑스는 항상 제2인자에 머물렀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무역을 장려하여 7세기 이후 우리 나라, 일본, 동남아시아, 아랍 등과의 해양 무역이 번성하였는데 명나라를 세운 홍무제가 건국 직후 해금 조치를 취한다. 하지만 이때만 해도 대외적으로 쇄국을 이야기한 것일 뿐 해양 무역은 암묵적으로 계속 진행되었다. 특히 영락제 연간에 이루어진 정화의 대원정 경험까지 쌓이며 명나라는 실질적으로는 상당한 규모의 무역을 진행했다. 그런데 가정제가 해금 정책을 엄격하게 시행하면서 수백 척의 무역 선박을 파괴하고 밀수 상인들을 처형한 것이다. 가정제가 갑자기 무역에 대해 엄격한 통제에 나선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는데 서양 세력이 남중국해에 나타난 것이 경계심을 불러일으켰다는 해석이 가장 유력하다. 포르투갈 함대가 남중국해에 나타나 본격적으로 약탈을 시작한 데다가 전국 시대 일본의 지방 영주들이 중국에 교역을 요구하며 행패를 부린 사건까지 벌어지자 전면적인 통제를 주장하던 사람들의 기세가 높아진 것이다.
은이 부족해 공급에 차질이 생길 경우에는 경제 전체에 급격한 디플레의 위험이 발생한다. 다시 말해 돈의 가치가 상승할 가능성이 높아져 저축 성향이 높아지며 경제 전반에 강력한 경기 위축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중앙은행이 있다면 즉각 금리를 인하하는 등의 경기 부양 조치를 취할 수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 은행 설립 이전까지는 세계 어디에도 이런 역할을 할 중앙은행은 존재하지 않았다.
노동자 한 사람이 기계에 힘을 빌리지 않고 수작업으로 핀을 만든다면 많아야 하루에 한 개 정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핀 제조 과정을 18개 공정으로 나누어 10명이 분업을 하면 하루에 4만 8000개의 핀을 만들 수 있고 1명이 하루에 4800개의 핀을 만들 수 있다. 이와 같이 핀 생산을 특화하면서 분업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한 달에 14만 개 핀을 팔 수 있는 시장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이만한 시장 규모가 형성된다면 특화에 의해 높은 생산성을 올리고 막대한 이윤을 얻을 수 있는 수확채증의 세계가 열리게 된다.
국내 최고 이코노미스트 홍춘욱 박사의 대표작인 『50대 사건으로 보는 돈의 역사』는 동서양의 역사적 사건들을 '금융과 돈의 흐름'이라는 돋보기로 재해석한 책입니다.
단순히 인물이나 전쟁 중심의 세계사가 아니라, "왜 어떤 나라는 부유해지고 어떤 나라는 몰락했는가?"에 대한 답을 통화 공급, 금리, 금융 시스템의 변화를 통해 명쾌하게 풀어냅니다.
1. 금융 시스템이 국가의 운명을 바꾼다 (서양의 도약) 프랑스보다 인구도 적고 군사력도 열세였던 영국이 나폴레옹 전쟁에서 승리하고 세계 패권을 쥔 비결은 바로 중앙은행(영국은행)의 설립과 신뢰받는 금융 시스템이었습니다.
영국의 국왕들은 빚을 잘 갚아 신용을 쌓았고, 덕분에 아주 낮은 금리로 전쟁 자금을 대량 조달할 수 있었습니다.
반면, 신용이 낮아 고금리로 돈을 빌려야 했던 스페인과 프랑스는 막강한 군사력을 가지고도 결국 파산하거나 경제적 몰락을 겪었습니다.
교훈: 금리가 터무니없이 높은 국가는 경제 체력이 약하다는 뜻이므로 장기 투자처로 적합하지 않습니다.
2. 화폐 공급이 끊기면 경기도 무너진다 (동양의 몰락) 16~17세기 명나라는 조세 개혁(일조편법)을 통해 세금을 오직 '은(Silver)'으로만 받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신대륙과 일본에서 은이 대거 유입되며 호황을 누렸으나, 스페인의 경제 위기 등으로 은 유입이 급감하자 극심한 디플레이션(물가 하락 및 경기 침체)에 빠졌습니다.
돈(화폐)이 돌지 않으니 농민들은 세금을 내지 못해 파산했고, 이는 결국 명나라가 멸망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교훈: 시장에 돈(통화량)이 줄어들면 경제 시스템 전체가 얼어붙습니다.
3. 중앙은행의 불판 뒤집기 (대공황과 인플레이션) 책은 1929년 미국의 대공황과 1970년대 석유 파동을 통해 정부와 중앙은행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줍니다.
1929년 대공황: 당시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시중에 돈을 푸는 대신 오히려 금리를 올리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는 바람에 불황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습니다.
1971년 닉슨 쇼크: 달러를 금으로 바꿔주지 않겠다고 선언(금본위제 폐지)하면서 전 세계는 본격적인 '종이 화폐' 시대로 접어들었고, 이는 1970년대의 엄청난 인플레이션을 유발했습니다.
교훈: 자산 가격이 폭락하고 버블이 터질 때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과감하게 돈을 풀어야 장기 불황을 막을 수 있습니다.
4.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이 주는 경고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엔화 가치가 급등하자, 일본 정부는 수출 기업들을 살리기 위해 금리를 대폭 낮추고 돈을 풀었습니다. 이 돈이 모두 주식과 부동산으로 몰리면서 역사적인 '자산 버블'이 생겼습니다.
뒤늦게 놀란 일본 중앙은행이 금리를 급격히 올렸고, 버블이 터진 후에도 대처가 늦어 자산 가격 하락이 장기 불황으로 이어졌습니다.
5. 대한민국 경제의 번영과 위기 마지막 장에서는 한국 경제의 발자취를 다룹니다. 광복 이후 단행된 농지 개혁은 지주 계급을 해체하고 국민들에게 교육열과 생산성을 심어주어 번역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이후 수출 주도 성장으로 고속 질주하던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IMF)라는 혹독한 시련을 겪었지만, 오히려 이를 계기로 기업들의 체질을 개선하고 경상수지 흑자국으로 체질을 바꾸는 터닝포인트를 맞이했습니다.
💡 홍춘욱 박사가 독자에게 전하는 최종 메시지 "역사는 반복되고, 돈의 역사는 더욱 똑같이 되풀이된다." 버블이 발생하는 과정, 위기가 찾아오는 신호, 그리고 위기 뒤에 찾아오는 기회의 패턴은 수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놀라울 정도로 비슷합니다. 따라서 과거의 경제적 실수를 배우고 시장의 사이클을 읽을 줄 알아야 비로소 나의 자산을 지키고 위기 속에서 기회를 잡을 수 있습니다.
홍춘욱 박사는 『50대 사건으로 보는 돈의 역사』 전반을 통해 역사적 위기 속에서 개인 투자자가 어떻게 자산을 지키고 키워야 하는지 구체적인 인사이트를 제시합니다. 저자가 책과 다양한 강연을 통해 강조하는 핵심적인 자산 배분 전략과 투자 원칙은 크게 4가지로 요약됩니다.
1. 한국인에게 가장 최적화된 '달러 배분 전략' 홍춘욱 박사가 개인 투자자에게 제안하는 핵심 전략은 "한국 주식(또는 자산)과 미국 달러에 나누어 투자하라"는 것입니다. 이는 한국 경제의 특수한 구조에서 기인합니다.
한국 자산의 특징: 한국은 수출 주도형 국가이기 때문에 글로벌 경기가 나빠지면 주가와 부동산 가격이 함께 폭락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달러의 자산 방어 효과: 전 세계적인 경기 불황이나 금융위기가 오면 안전자산인 달러의 가치(원/달러 환율)는 급등합니다.
투자 인사이트: 평소 자산의 일정 비율을 달러(또는 미국 국채, 미국 주식)로 보유하고 있으면, 한국 자산이 폭락할 때 달러 가치가 상승하여 전체 자산의 손실을 방어(헷지)할 수 있습니다.
2. 불황에 돈을 버는 '리밸런싱(Rebalancing)'의 마법 달러 배분 전략의 진짜 가치는 위기가 왔을 때 빛을 발하며, 이를 '리밸런싱(자산 편입비율 재조정)'을 통해 극대화할 수 있습니다.
위기 발생 시: 한국 주식이 반토막 나고 달러 환율이 폭등합니다.
실행 전략: 이때 가치가 폭등한 달러를 일부 매도(차익실현)하여, 원화로 바꾼 뒤 가격이 터무니없이 싸진 한국의 우량 주식이나 부동산을 저가에 매수합니다.
효과: 이 전략을 기계적으로 반복하면 위기 때 남들이 공포에 질려 팔 때 오히려 가장 싼 가격에 자산을 쓸어 담을 수 있어, 경기가 회복될 때 폭발적인 수익을 얻게 됩니다. 돈의 역사를 보면 위기는 늘 반복되었고, 이 타이밍에 자산을 바꾼 사람들이 부를 거머쥐었습니다.
3. 금리가 터무니없이 높은 곳은 피해라 책에서 영국의 국력 신장과 스페인·프랑스의 몰락을 비교하며 주는 강력한 인사이트입니다.
고금리의 함정: 역사적으로 신용이 낮고 경제 체력이 약한 나라나 기업일수록 돈을 빌리기 위해 높은 금리를 제시해야 했습니다.
투자 인사이트: 높은 이자나 수익률을 보장한다는 상품(예: 신흥국 고금리 채권, P2P 금융, 무리한 고배당주 등)은 그만큼 파산 위험이 숨어있다는 뜻입니다. 개인 투자자는 눈앞의 높은 금리에 현혹되기보다, 시스템이 안정적이고 신용이 높은 국가나 기업(예: 미국 국채 등)의 자산을 기본 베이스로 깔고 가야 장기 생존할 수 있습니다.
4. 공급 과잉과 정부 정책의 시그널을 읽어라 역사적 버블(일본의 잃어버린 30년, 미국의 대공황 등)의 붕괴는 항상 '중앙은행의 갑작스러운 금리 인상'과 '공급 과잉'이 맞물릴 때 일어났습니다.
부동산과 주식의 타이밍: 정부가 경기 과열을 막기 위해 금리를 급격히 올리기 시작하고, 시장에 공급(부동산 입주 물량, 기업들의 과도한 설비투자)이 쏟아지는 시기에는 자산 시장의 버블이 꺼질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투자 인사이트: 시장의 분위기가 아무리 뜨거워도 '금리 인상 속도'와 '공급 물량'이라는 두 가지 지표가 위험 신호를 보낸다면, 탐욕을 버리고 자산의 비중을 줄여 현금(달러)을 확보하는 유연성이 필요합니다.
💡 한 줄 요약 평소에 **한국 주식 50% : 미국 달러 자산 50%**의 비율로 투자하다가, 금융위기로 환율이 폭등하면 달러를 팔아 값싸진 한국 주식을 사는 규칙을 지키는 것 — 이것이 역사로부터 배울 수 있는 가장 강력하고 안전한 개인 투자 전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