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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리산 법주사 16-01-02 본문

Temple tour

속리산 법주사 16-01-02

singingman 2022. 12. 18.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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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여행을 갔다가 둘째날 법주사를 들르다.

5집 10명이 함께 구경하다.

속리산 등산을 여러번 갔지만 법주사는 참 오랜만에 들른다. 80년대에 문장대 올라갈 때 아마 들렀었던 것 같다.

아래 요금표를 보다시피 법주사는 입장료가 형편없이 비싸다.

국보,보물,문화재가 많아서?

아무리 자기네 땅 통행료 받는다지만 좀 지나치다.

이러고도 중들이 욕먹지 않으면 이상하지?

법주사 홈페이지에 소개된 법주사의 연혁을 보면 아래와 같다.

법주사는 의신 조사가 창건을 하고 진표 율사가 7년 동안 머물면서 중건하였다고 전해져 오나 ‘삼국유사’ 4권 관동풍악발연수석기(關東楓岳鉢淵藪石記)에 보면 진표 율사는 금산사에서 나와 속리산에 들러 길상초가 난 곳을 표해 두고 바로 금강산에 가서 발연수사(鉢淵藪寺)를 창건하고 7년 동안 머물렀다고 합니다. 진표 율사가 그 후 금산사와 부안 부사의방에 가서 머물 때 속리산에 살던 영심(永深), 융종(融宗), 불타(佛陀) 등이 와서 진표 율사에게서 법을 전수 받았습니다. 그 때 진표 율사가 그들에게 "속리산에 가면 내가 길상초가 난 곳에 표시해 둔 곳이 있으니 그 곳에 절을 세우고 이 교법(敎法)에 따라 인간 세상을 구제하고 후세에 유포하여라."하였다고 합니다. 이에 영심 스님 일행은 속리산으로 가서 길상초가 난 곳을 찾아 절을 짓고 길상사라고 칭하고 처음으로 점찰법회를 열었습니다. 금산사를 중건한 진표 스님이 미륵불을 조성하였기 때문에 진표 스님의 법을 받은 영심 스님 등도 마찬가지로 길상초가 난 곳에 절을 세우고 미륵불을 조성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러한 내용에 근거하여 현재의 법주사는 영심 스님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고려 인조 때까지도 절 이름을 속리사라고 불렀다는 점과 '동문선'에 속리사라는 제목 시가 실려 있는 점으로 미루어 아마도 절 이름이 길상사에서 속리사로, 그리고 다시 법주사로 바뀐 것이 아닌가 생각되지만 지금까지 정확하게 규명되지는 않았습니다.

신라 진흥왕 14년(553)에 법주사라 이름 붙여진 이후 법주사는 성덕왕 19년(720)에 중건되었으며 고려에 와서는 태조 1년(918)에 왕사(王師)인 증통 국사(證通國師)가 중건하였습니다. 그리고 문종 때에는 여섯째 왕자인 도생 승통(導生僧統)이 중창에 힘을 기울였다고 합니다. 임진왜란 때에는 충청도 지방의 승병 본거지였던 법주사와 산내 암자가 모두 소실되는 상황을 맞게 되었으나 인조 4년(1626)에 벽암 각성(碧岩覺性)선사가 나와 중창에 힘을 기울였습니다. 벽암 선사는 보은에서 태어나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군과 함께 해전에서 적을 크게 무찌른 인물이며 그 후 1624년부터 3년 동안 지금의 남한산성을 쌓았다고 합니다.
현존하는 '법주사 사적'이 최초로 쓰인 것은 1630년인데, 여기에 임진왜란 이전 조선 초기에 있었던 건물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건물 60여 동, 석조물 10여 점, 암자 70여 개소가 기록되어 웅장한 규모였음을 증명해 줍니다. 그 가운데 예불용 전각 등 중요 건물만 발췌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대웅대광명전 (2층 28칸). 산호보광명전 (2층 35칸), 팔상오층전 (36칸), 비로전 (17칸), 약사전, 극락전 (6칸), 원통전 (6칸), 지장전, 연경전, 영산전, 도솔전, 응진전, 대양문 (7칸), 천왕문, 조계문, 해탈문, 동행랑, 서행랑

임진왜란 이후 벽암 선사의 일대 중창에도 불구하고 복구된 건물의 수는 20여 동에 불과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고려시대에 들어서 법주사에는 뛰어난 고승대덕들이 주석하면서 여러 차례 중창이 거듭되었습니다. 먼저 문종(1046~1083)의 다섯 째 왕자였던 도생 승통(導生僧統)이 절의 주지를 지냈다. 문종의 넷째, 다섯째 아들이었던 대각국사 의천과 혜덕왕사 소현은 도생 스님의 형이다. 고려시대에 불교는 국교라고 할 만큼 국광과 백성들의 절대적 믿음의 대상이었습니다. 왕실에서는 왕자가 출가할 경우 이를 대단한 영광으로 받아 들였고, 특히 문종은 세 아들을 출가시킬 만큼 신심이 돈독하였습니다. 도생 스님의 행장은 자세히 전하지 않으나 투철한 법상종 승려였던 해덕 왕사를 은사로 출가하였던 사실은 스님이 곧 법상종 승려임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나아가 스님이 법주사의 주지를 지냈다는 것은 절이 신라 이래의 법상종 전통을 계속해서 이어 나갔다는 사실로도 이해 할 수 있습니다. 고려시대 절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자료는 인종 때(1122~1146) 김부식(金富軾)이 편찬한 [속리사점찰법회소(俗離寺占찰法會疏)], 1342년(충혜왕3)의 [고려국속리산법주사 자정국존비명(高麗國俗離山法住寺慈淨國尊碑銘)], 그리고 도생승통비(導生僧統碑) 등입니다. 이를 통해 먼저 인종 때까지는 법주사를 산 이름과 같은 속리사로 불렀고, 유학자 김부식이 왕명으로 점찰법회의 소문을 지을 만큼 사격이 높았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원종 때(1259∼1274)는 자정 미수(慈淨彌授, 1240∼1327) 대사가 절에 주석하였습니다. 스님은 고려 중기의 유명한 법상종 승려였습니다. 일찍이 13세에 출가한 이래 법주사를 비롯해서 장의사(莊義寺)국령사(國寧寺)대민천사(大旻天寺)동화사 등지에서 수행하였습니다. 법주사에 있을 때는 왕명으로 각종의 경전과 장소(章疏)를 92권이나 찬술하였습니다. 1281년(충렬왕 7) 왕이 절에 행차하여 산호전(珊瑚殿)에 참배하였고, 뒤이어 충숙왕도 절을 다녀갔습니다. 1363년(공민왕 12)에는 왕이 절에 들렀다가 양산 통도사(通度寺)에 사신을 보내 부처님의 사리 1과를 법주사에 봉안하도록 하였습니다. 이 사리탑은 지금 능인전 뒤쪽에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조선시대 들어서도 절의 법등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흔히 조선시대가 숭유억불의 시대라 하지만 유교는 치국(治國)의 원리와 개인적 수양의 방편일 따름이고, 사람들의 불교신앙은 사실 상 그대로 이어졌습니다. 왕실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조선 초 세조 때(1455∼1468)는 신미(信眉) 대사가 머물며 절을 크게 중창하였습니다. 세조의 스승으로서 큰 존경을 받았던 신미 스님은 이보다 앞선 1449년(세종 31) 12월에 속리산 내의 복천사(福泉寺)를 중창하기도 하였습니다. 이 사실을 기록한 [복천사중수보권문]이 전합니다.
조선 중기 절은 60여 동의 전각과 70여 개의 암자를 거느린 대찰이었습니다. 그러나 1592년(선조 25)의 임진왜란으로 대부분 전각이 불에 타 없어지는 비운을 겪었습니다. 부분적으로 중수를 계속했으나 정유재란을 맞아 또다시 절이 전부 불타버렸다. 전쟁 뒤에는 1605년(선조 38)부터 1626년(인조 4)에 걸쳐 사명(四溟) 대사 유정(惟政) 스님이 팔상전을 중건했습니다.
1624년 다시 중수가 시작되어 이듬해 불사를 마치고 [법주사사적기]를 편찬하였습니다. 그 뒤 벽암 각성(碧巖覺性, 1575∼1660) 스님이 황폐화된 절을 중창하였습니다. 벽암 스님은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일으켜 나라를 구하였던 서산(西山) 대사에 버금가는 분입니다. 병자호란을 맞아 구국의 일념으로 의승장이 되어 혁혁한 공을 세웠던 것입니다. 1851년(철종 2) 3월 영의정 권돈인(權敦仁)이 힘을 기울여 국가적 규모의 중수가 이루어졌습니다. 1872년(고종 9)에는 지금의 청동대불 자리에 있었던 2층의 용화보전이 헐렸습니다.

1939년 미륵불상 조성이 시작되었습니다. 주지 장석상(張石箱) 스님이 발원하고 전라북도 태인에 살던 김수곤(金水坤) 거사가 시주하여 80척의 미륵상 조성이 시작되었으나 조각을 맡았던 김복진(金復鎭)이 요절하면서 중단되고 말았습니다. 이후 박정희 대통령의 희사로 1963년 3월에 재착수하여 1964년에 완공하였습니다. 현대에 들어와서는 1967년 금오 태전(金烏太田, 1896∼1968) 스님이 기울고 퇴락한 전각을 중수하였습니다. 당시 금오 스님은 일흔이 넘은 나이였지만 정열적으로 가람을 일궈나가면서 법주사의 선풍을 진작시켰습니다. 1974년 정부의 지원으로 가람의 전각 대부분을 보수하고 복원하였습니다. 1975년 현대불교의 산증인이었던 금오 스님의 부도와 비를 세웠습니다. 1976년 주지 탄성(呑星) 스님이 대웅보전을 보수하고, 범종각을 새로 지었습니다. 1990년 주지 월탄(月誕) 스님의 원력으로 청동미륵상을 대대적으로 중수하였으며, 그 좌대의 지하에 성보전시관인 용화전을 마련하였습니다. 1997년 선원과 후원 불사가 완료되어 현대적 시설을 잘 갖춘 환경에서 정진하는 대중을 외호하고 있으며, 2002년 청동미륵대불을 과거 진표율사계서 금동미륵대불을 모셨다는 기록에 의거 개금불사를 함으로써 본래의 모습을 복원하게 됩니다. 2005년 현재 4년간의 해체, 복원 불사를 통해 대웅보전이 예전의 위용을 되찾으며 속리산을 찾는 이들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매표소 앞에 이 안내판이 있다.

 

법주사 들어가는 길

 

호서제일가람이라고 할 만한 절이긴 해.

 

大자를 두개씩이나 쓰면 '때'라고 읽어야 할까?

 

부도밭은 유홍준에 의하면 승탑밭이 맞는 말이라지?

 

팔각과 원당형이 주를 이루고 있다.

 

하마비가 있다

 

금강문, 천왕문, 팔상전, 대웅전이 일렬로 서 있다.

 

 

이 다리를 홍예교로 좀 잘 만들었어야지, 절 규모에 비해 해탈교가 초라하다.이름도 수정교라니 좀 어색하다

 

금강이 둘 다 입을 다물고 있으면 누가 밀적이고 나라연인지 우째 알지?

 

사자를 타고 있는 보살이 문수보살이고 아래 코끼리 타고 있는 보살이 보현보살이지?

 

지국천왕, 증장천왕

 

 

광목천왕, 다문천왕

 

미륵불은 수인을 시무외인과 여원인을 하고 있는 불상이 많은데 미륵불의 고유한 수인인가?  법주사 미륵불은 대원군이 경복궁 중수할 때 몰수했는데 그래서 1964년에 시멘트로 만들었다가  1990년에 청동으로 다시 만들었다고.  3mm 두께로 황금을 입혀서 80kg의 금이 들어갔다고 한다.

 

5층 목탑으로 된 팔상전.이 탑 볼려고 오늘 여기 들어왔다.

 

팔상전 안에 있는 불상들

 

팔상전 천정에 그림들이 있었던 것 같은데 색이 바래서 희미하다.

 

위의 사진처럼 4벽면에 각각 2장씩 팔상도가 걸려있다.

 

범종각에는 사물이 다 있다. 아래 위 사진이 양쪽에서 본 모습

 

이 절에는 잘 생긴 석등이 유난히 많다.

 

약사전 앞에도 석등이 있고,

 

지붕의 모양이 특이하다. 4면의 기울기가 똑 같은 사각지붕이다. 정자를 지을 때 사용하는 모음지붕 같다

 

관음보살이 다른 절에 있는 보살상에 비해 너무 근엄해 보인다. 자애로운 느낌이 덜하다.

 

철제 당간이다.

 

극락전 가는 방향에 있는 큰 바위 위에도 작은 탑이 있다.

 

이 석련지의 용도는 무엇이었을까? 물을 담는 기구였을까? 그러기에는 너무 높이있고...

 

물빼는 구멍이 보인다.

 

 

적멸보궁 창너머 사리탑이 있다.

 

김제 금산사 적멸보궁도 이런 구조로 되어 있었던 것 같다.

 

적멸보궁에 16나한들이 앉아있는 건가?

 

석가세존의 사리탑이라고 한다.

 

진영각은 이 절의 긴 역사와 인물들을 유추해볼 수 있다.

 

대웅전이 2층의 독특한 구조로 되어있다. 마곡사 대웅전이 아마 2층이었지?

 

화창옆 화사석에 사천왕상이 양각으로 조각되어 있다.

 

대웅전 앞에 있는 이 경사진 돌판의 용도는 무엇이지? 궁궐에 이런 돌판이 있던데...

 

대웅전 안에는 삼세불이 있다. 실내에 있는 소조불상 가운데는 우리 나라에서 가장 큰 불상이라고 한다. 가운데 앉아 있는 이가 석가모니불이 아니고 비로자나불이다. 노사나불과 석가모니불이 좌우에 협시불로 앉아있다.

 

 

지장전 옆에는 이렇게 제사 후에 무엇을 태우는 아궁이가 있다.

 

요사채의 규모만 봐도 얼마나 큰 절인지 짐작이 간다.

 

이 철확에는 한번에 3,000명이 먹을 수 있는 국을 끓일 수 있다고 한다.

 

극락전 가는 길에 있는데 뭐지?

 

극락전은 참선 수행중이라서 참배객외에는 출입금지라고 한다. 그래서 조용히 건물 사진만 찍고 나왔다.

 

극락전 출입문에 그려진 금강역사?

 

 

절 들어가는 길에 있는 나무에 이런 글들이 여러개 달려있다. - 법정스님은 정말 대단한 분이야.

 

이 사진에 나와있는 속리산 봉우리들은 다 올라가본 것 같다.

 

사하촌에 있는 자연보호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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