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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2025/03/19 (4)
노래하는 사람

양천 향교 뒷산이고 서울 식물원 옆에 있는 높이 70여 m의 나즈막한 야산이다.양천향교역에 내려서 겸재 정선 미술관(https://song419.tistory.com/m/4624)을 들르고 궁산 땅굴과 양천 향교(https://song419.tistory.com/m/4625)를 들른 다음 이 산으로 올라간다.겸재가 앉아 놀던 소악루라는 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전망대도 있고 옛 성터와 성황당도 있다.한 바퀴 다 돌아도 일산병원 뒷산 정도일 것 같다.이 산에서 내려와서 서울 식물원 들렀다가 마곡나루역에서 전철타고 집으로 돌아오다.미술관에서 시간을 많이 보냈더니 2시간 반 가까이 걸렸다.거리는 미술관 주제관까지 들러도 한 5km 정도 되려나?양천향교역에서 출발이 팻말에서 우회전겸재 정선 미술관궁산 땅굴은태평양..

궁산과 겸재 정선 미술관 가면서 들르다.미술관 바로 옆 궁산 아래 있다.양천향교비석군외삼문명륜당주련들이 많다.양천향교 주련 설명양천향교에 배향된 인물들5성위 : 공자, 증자, 안자, 자사, 맹자, 송조 4현 : 주돈이, 정호, 정이, 주희,우리 나라 18현 : 1. 홍유휴 설 총2. 문창후 최치원3. 문성공 안 향4. 문충공 정몽주5. 문경공 김굉필6. 문헌공 정여창7. 문정공 조광조8. 문원공 이언적9. 문순공 이 황10. 문정공 김인후11, 문성공 이 이12, 문간공 성 혼13. 문원공 김장생14, 문열공 조 헌15, 문경공 김 집16. 문정공 송시열17. 문정공 송준길18. 문순공 박세채명륜당에서 내려다 본 외삼문과 동재와 서재대성전내삼문

궁산 트래킹 가면서 들르다.겸재는 아래 사진들에 설명이 되어 있다.겸재 정선(1676,숙종 2년~1759년,영조 35년)은 우리 나라 진경산수화의 시조이며 대가로 알려져 있다.미술관이 있는 이곳 양천현감을 지냈다.이병연(1671~1751년)과 함께 김창흡의 제자였다.몰락한 집안의 후손이었지만 김창집의 도움으로 관직생활을 시작했다고 한다.내부는 겸재에 관한 설명과 영인본들이 있고 원본만 따로 전시하는 방도 있다.1,2층은 전시실이고 3층은 카페다.양천향교역에서 가깝다.1번 출구로 나와서 직진하면 이 팻말이 나오고 우회전해서 앞으로 가면 미술관이 있다.미술관1층에는 금릉 김현철이라는 화가가 개인전을 하고 있다.병산서원 만대루창덕궁 희정당아래는 임모한 그림이다.경복궁창덕궁 인정전설악산영춘재색임심주여산고도임이 ..

세종대왕의 정치를 자세히 연구한 책.세종은 내자시 여종이었던 김 씨를 사랑하여 귀인의 벼슬까지 주었다. 즉 세종의 즉위하던 해에 원경왕후 민 씨가 열세 살 되던 김 씨를 뽑아 왕비 즉 소헌 왕후에게 보냈는데 김 씨의 천성이 부드럽고 아름다워 양궁을 섬기는 데 오직 근신하였다. 즉 원경 왕후와 소원 왕후 모두를 잘 섬겼을 뿐만 아니라 성품이 신중하고 부지런해서 왕비가 매사를 위임했다. 왕비의 침실을 섬기는 지밀나인이었던 김 씨는 세종의 마음을 사로잡아서 1426년 (세종 8 년)에는 성은을 입게 되었다. 이후 12년 동안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여 무려 아들 여섯과 딸 둘을 낳았다. 재위 17년에도 영해군을 출산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세종실록 17/03/20)세종은 그런 그녀를 소의에서 귀인까지 올려주었다...